한국, 중국, 일본의 각 도시가 문화로 교류하는 ‘동아시아 문화도시’ 사업이 올 한 해 제주에서 진행됐다. 중국 닝보시, 일본 나라시와 함께 2016년 동아시아 문화도시로 선정된 제주에서는 4월 7일 개막식부터 12월 16일 폐막식까지 약 8개월 동안 10여개 행사가 개최됐다. 중국과 일본의 문화를 각종 공연, 전시, 인문학, 청소년 교류로 접할 수 있었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공동 주최 기관인 화동문화재단(WCO)을 둘러싼 논란, 일정에 쫓긴 사업 진행, 지속적인 교류 활동을 기대하기 어려운 여건 등 부정적인 평가도 공존한다. <제주의소리>는 올 한 해를 되돌아보면서 동아시아 문화도시가 제주에 무엇을 남겼는지 두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송년특집=동아시아 문화도시 제주, 뭘 남겼나] (1) 국제 교류의 경험? 반쪽짜리 교류

지난 2014년 시작된 동아시아 문화도시(이하 문화도시)는 동아시아 의식, 문화교류와 융합, 상대 문화의 이해 등을 목적으로 한국, 중국, 일본에서 각각 한 개 도시를 선정하고 문화교류 행사를 개최하는 사업으로 문화체육관광부가 도시를 선정한다. 한국의 경우 2014년은 광주광역시(중국 취안저우·일본 요코하마), 2015년은 청주(칭다오·니가타), 2016년은 제주(닝보·나라), 2017년은 대구(창사·교토)가 선정됐다. 

# 다양하게 만나는 동아시아 문화도시

제주 사업에는 21억 5000만원이 투입됐는데 개·폐막식에 7억 3000만원이 사용됐고, 여러 문화 행사를 치르는 데 14억 2000만원이 소요됐다. 전체 사업비 중 3억원만 국가가 지원해줬고 나머지는 제주도 살림으로 치렀다. 제주도 문화정책과 안에 있는 사무국이 사업 진행을 맡았고 공모 절차를 거쳐 선정된 화동문화재단 제주지부(WCO, 월드컬쳐오픈)가 문화 행사를 대행하는 역할로 참여했다.

제주도는 <제주의소리>에 제공한 '문화도시 제주' 추진 계획에서 2016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39개 문화도시 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중 제주에서 열린 사업은 19개, 닝보시가 12개, 나라시가 8개다. 주요 사업으로는 ▲청소년 문화캠프 ▲컬처디자이너 아시아페어 ▲제주월드뮤직 오름페스티벌 ▲인문학 콘서트 ▲도내 각종 문화 행사와의 연계 행사 등이 있다. 

청소년 문화캠프는 7월 26일부터 28일까지 세 도시의 고등학생 10명, 대학생 10명 씩 참여해 제주도 돌문화공원, 소암기념관, 추사기념관, 김영갑갤러리, 서재철 갤러리, 용눈이 오름 등을 둘러보는 내용으로 진행됐다. 고등학생의 경우 서예, 대학생은 사진 분야로 나눠 제주 출신 서예 작가 강창화, 사진 작가 강정효와의 만남도 마련했다.

컬처디자이너 아시아페어는 10월 1일부터 3일까지 제주시 원도심 일원에서 진행된 행사로 LED 조명을 관덕정에 비추는 미디어 파사드, 젊은 문화예술인·사회활동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눈 ‘C!Talk’, 제주의 옛 모습을 담은 흑백사진을 AR(증강현실)·VR(가상현실)로 관람하는 전시로 진행됐다.

제주월드뮤직 오름페스티벌은 10월 8일부터 9일까지 한라수목원과 광이오름에서 국내외 대중음악인을 초청해 진행한 색다른 야외 공연이며, 12월 15~16일 열린 인문학 콘서트는 박찬식(제주학연구센터장), 주강현(제주대 석좌교수), 쉬딩바오(닝보대 저둥문화연구센터 주임), 황원지에(닝보시 문화예술연구원 부주임), 와타나베 아키히로(나라문화재 연구소 도성발굴 조사부 부부장), 모리시타 케이스케(나라시 매장문화재 조사센터 소장) 씨가 참여해 각 나라의 문화를 심도 있게 논의하는 시간이 됐다.

연계 행사는 제주국제관악제(8월), 제주프린지페스티벌(10월) 탐라문화제(10월), 제주아트페어(10월), 제주영화제(11월) 안에 동아시아 문화도시 성격에 맞는 프로그램을 추가하는 방식이다. 전체 내용을 크게 놓고 보면 자체 행사와 연계 행사로 구분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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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아문화도시 사업으로 진행된 청소년 문화캠프 모습. 출처=제주도청 블로그. ⓒ제주의소리

제주도는 올해 동아시아 문화도시 사업을 통해 다른 나라 도시와 문화로 교류하는 유익한 경험을 쌓았다고 자평한다. 박영수 팀장(제주도 문화정책과 동아시아문화도시 추진위원회 사무국)은 “제주도가 국제적인 규모로 문화 교류를 경험했다는 점이 무엇보다 가장 큰 성과로 꼽을 수 있다. 민간 영역을 포함해 앞으로 닝보시, 나라시와 다양한 관계를 이어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사업 대행사인 화동문화재단 제주지부 역시 비슷한 의견이다. 하재희 화동문화재단 제주지부 대표는 “문화도시 사업을 진행하면서 사람이 문화의 섬을 만든다는 생각을 가장 중요하게 뒀다.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데 최대한 신경을 썼다”고 설명했다. 

문화도시 사업을 계기로 새로운 교류의 기회를 얻은 연계 행사 측도 국제적인 교류 경험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 특혜 시비, 촉박한 일정...빛바랜 문화도시

애초 문화도시는 올 한해 제주섬을 다채로운 문화 교류 행사로 물들이겠다는 기대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촉박한 일정에 쫓긴 진행, 사업 대행 기관인 화동문화재단 제주지부를 둘러싼 특혜 시비 등으로 빛이 바랬다. 

제주도의 문화도시 제주 추진 계획에는 사업 기간이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365일로 명시돼 있다. 그러나 제주에서 열린 ‘실질적인’ 행사는 7월이 돼서야 시작됐다. 4월 7일 단 하루 성대한 공연으로 개막식을 치르고 7월 26일이 돼서야 청소년 문화캠프가 열렸다. 그 사이 각 도시 실무협의(5월 26일), 문화도시 간 교류 활성화 방안 토론(5월 27일)이 제주에서 진행됐지만 행정 절차를 논의하기 위한 관료들의 모임에 불과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제주를 2016년 문화도시로 선정한 시점이 지난해 10월 1일인 점을 고려하면 반 년 이상이 공백인 셈이다.

이런 상황이 빚어진 것은 화동문화재단이 대행사로 선정되는 과정과 무관치 않다는 의구심이 제기된다.

제주도는 지난 2월 26일 문화도시 사업 대행사를 공모하고 3월 11일 마감했다. 화동문화재단 제주지부, 제주연극협회, 제주영상문화연구원이 신청해 3월 15일 화동문화재단 제주지부가 대행사로 선정됐다. 그런데 3월 23일 보조금심의위원회에서 문화도시 건이 일부 부결되고, 4월 14일에야 재심의가 마무리되면서 사업 예산이 지급됐다.

이 과정에서 4월 4일 화동문화재단 제주지부가 제주도에 ‘시간이 촉박해 보조금 지급이 계속 지연될 경우 사업의 성공적인 진행에 차질이 초래될 수 있다’는 식의 공문을 보낸 사실이 도의회 행정사무감사를 통해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2월에야 대행사를 공모하고 선정 과정에 다시 몇 개월을 소모한 셈이다.

1년 앞서 문화도시 사업을 진행한 청주시의 경우 2014년 11월 30일 문화도시로 선정된 이후 이어령 명예위원장 위촉(2014년 12월 30일), 공자학원·한국문화연구소 MOU(2015년 1월 12일), 시의회 간담회 및 기자회견(2월 23~24일) 같은 발 빠른 행보를 보였다. 제주와는 사뭇 다른 모양새다.

제주 문화도시 사업에 참여한 A씨는 “만약 문화도시 사업을 내년에도 한다면 올해처럼 하면 안된다. 큰 행사를 코앞에 두고 구체적인 가닥이 잡히면서 홍보는 물론이고 내용을 준비하는데 잠잘 시간까지 쪼개야 했다”고 혀를 내둘렀다. 문화도시 연계 행사 관계자 B씨 역시 “주최 측과 소통이 힘들었다. 준비 과정에서 계약 같은 절차가 행사 목전에 두고 이뤄지면서 여러모로 준비하는데 애를 먹었다”고 털어놨다. 

또다른 연계 행사 관계자 C씨는 “주최 측과 일찍 소통이 되지 않았는지 우리가 요구한 성격이 아닌 다른 외국 팀이 오면서 그 팀도 우리도 곤혹스러운 상황이 연출됐다. 외국 팀이 오해 없도록 배려를 하면서 간신히 넘어갈 수 있었다”며 준비 과정에서의 아쉬움을 덧붙였다. 수 억원의 비용이 투입된 미디어 파사드 행사는 비 날씨 때문에 기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주최 측 관계자들이 따로 모인 자리에서 한 번 더 재연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문화도시 사업 대행사인 화동문화재단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화동문화재단 제주지부가 올해 2월 17일 재단의 제주사무소 격으로 법원에 등기되고 3월 3일 사업자로 등록되면서 제주도가 대행사 선정 기준으로 내건 ‘제주도내 사무소(제주지부 포함)가 등록된 문화·예술 관련 비영리법인 및 단체’와 ‘국내·외 관련분야 1년 이상 활동 실적’과 상충된다는 지적이 지난 10월 도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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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동문화재단(월드컬쳐오픈)이 소개한 활동 내용. 출처=월드컬쳐오픈 홈페이지. ⓒ제주의소리

이와 관련해 제주도는 신청 자격을 ‘제주에 사무소를 두고 나서 1년 이상 활동’이 아니라 ‘제주에 사무소를 두되 별도로 1년 이상 활동’이라며 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 같은 해명에 ‘1년 이상 활동 경력을 가진 전국 어느 단체라도 신청 마감 직전에 급하게 제주사무소를 등록하면 신청이 가능하다는 얘기냐. 다른 공모와 비교하면 너무나 허술한 조건’이라는 반박이 나오면서 의구심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항간에는 화동문화재단 이사장이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라는 점에서 대권을 꿈꾸려면 그의 도움이 절실(?)한 원희룡 지사의 의중과 무관치 않다는 소설 같은 이야기도 떠돈다. 

문화도시 사업에 참여한 D씨는 “화동문화재단은 문화도시 사업을 추진하면서 제주가 아닌 자신들의 입지를 높이는데 목표를 둔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화동문화재단 제주지부는 제주성지 인근에 새로운 사무실 겸 문화 공간을 곧 마련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문제 제기에 대해 하재희 대표는 “WCO가 문화도시 사업을 우리를 위해 진행했다는 지적은 결코 사실과 맞지 않다.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우리가 가진 노하우로 사업 성공을 위해 노력했다. 앞으로도 제주가 세계적인 문화예술의 섬이 되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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