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국, 일본의 각 도시가 문화로 교류하는 ‘동아시아 문화도시’ 사업이 올 한 해 제주에서 진행됐다. 중국 닝보시, 일본 나라시와 함께 2016년 동아시아 문화도시로 선정된 제주에서는 4월 7일 개막식부터 12월 16일 폐막식까지 약 8개월 동안 10여개 행사가 개최됐다. 중국과 일본의 문화를 각종 공연, 전시, 인문학, 청소년 교류로 접할 수 있었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공동 주최 기관인 화동문화재단(WCO)을 둘러싼 논란, 일정에 쫓긴 사업 진행, 지속적인 교류 활동을 기대하기 어려운 여건 등 부정적인 평가도 공존한다. <제주의소리>는 올 한 해를 되돌아보면서 동아시아 문화도시가 제주에 무엇을 남겼는지 두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송년특집=동아시아 문화도시 제주, 뭘 남겼나] (2) 물꼬 튼 국제 교류, 1년 행사로 끝?

각종 잡음과 촉박한 일정 속에 마무리된 제주 ‘동아시아 문화도시’(이하 문화도시) 사업은 성공일까? 실패일까? 전문가들은 문화도시가 일회성 행사로 끝난 '제2의 세계섬문화축제'가 되지 않기 위해, 미진했던 점을 솔직하고 투명하게 되짚어 의미있는 국제 교류 경험으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 대행사 도입...독이었나, 약이었나 

문화도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하고 사업 예산을 일부 지원해주지만 각 도시가 자체적으로 조직과 대부분의 예산을 마련해 추진하는 구조다. 제주는 도청 문화정책과에 사무국을 두고 세부적인 행사를 진행할 대행사를 별도로 공모했다.

사무국은 최초 5급·7급 공무원과 일본어, 중국어 통역 등 4명으로 시작해 6급 공무원이 추가되면서 5명으로 늘어났다. 대행사는 서울에 본사를 두고 있는 비영리법인 화동문화재단(이사장 홍석현)의 제주지부다. 

2014년 처음 시작된 문화도시에서 전체 사업에 대행사가 참여한 도시는 제주가 처음이다. 광주, 청주시 모두 규모와 내용의 차이는 있지만 추진위원회 내부 사무국이 사업을 총괄했다. 제주도는 보다 많은 경험을 지닌 조직과의 협업이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유로 대행사를 선정했다. 문화도시 사업에 관여한 지역 예술인 김모 씨는 “문화도시 사업 방식을 결정할 당시, 이전 도시들처럼 자체적으로 구성할지 외부 기관을 모집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제주도 여건상 후자가 낫다는 식으로 방향이 모아졌다”고 밝혔다.

사업 대행사 화동문화재단의 활동에 대한 평가는 상반된다. 재단은 영상기기 문제로 차질을 빚은 미디어 파사드 비용을 자비로 제주도에 반납하는 등 약 4억원에 달하는 비용을 문화도시 사업을 위해 감수하면서 ‘제주문화 발전’이라는 목표를 위해 나름 진정성 있게 활동했다고 자평한다.

그러나 문화도시 사업 과정에서 화동문화재단과 호흡을 맞춘 다수 인사들은 재단이 제주 문화를 위한다는 구호를 내세우지만, 제주의 정서나 여건을 이해하면서 오랫동안 제주를 지켜온 문화예술인과 진정성 있게 소통하려는 자세는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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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22일 열린 제주포럼 문화세션에서 원희룡 제주도지사(왼쪽)와 홍석현 월드컬쳐오픈 이사장(중앙일보 회장)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이날 제주도와 화동문화재단은 '제주포럼 문화선언'을 함께 발표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문화도시 사업 주최 측 인사 A씨는 “화동문화재단 직원들 경력을 보면 누가 봐도 쟁쟁하다. 해외 유명 대학을 나오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 활동했다. 그래서인지 지역 예술인들과 소통하려는 듯 보여도 자신들의 주장과 계획이 옳고 따라가야 한다는 인식이 묻어난다”고 밝혔다. 문화도시 연계 사업 관계자 B씨도 “문화도시 사업 과정을 보면 오히려 반대로, 화동문화재단을 위해서 우리가 도와준 격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비록 이런 생각이 오해일 수도 있지만, 재단은 이런 인식이 왜 제주 문화예술계에서 퍼지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 앞선 문화도시 청주와 광주 사례는?

더 큰 문제는 올해로 화동문화재단이 문화도시 사업에서 손을 떼면서, 앞으로의 할 일을 도청 내 사무국이 온전히 감당해야 할 처지가 됐다는 점이다. 내년 문화도시 사업이 올해와 비교할 때 대폭 축소될 예정이지만, 이 문제는 대행사를 선정하는 순간부터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제주도는 올해 말까지인 일본어, 중국어 통역 직원과의 계약을 연장하고 6급 공무원도 추가로 보강해 교류 사업을 차질 없이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제주도의 동아시아 추진 계획에 따르면 내년에도 문화도시 후속 사업은 이어진다.

문화도시 후속 사업용으로 확보한 2억원으로 청소년 문화교류 같은 행사를 계속 진행하고, 올해 열린 제주월드뮤직 오름페스티벌을 다시 개최하기 위해 국비를 요청한다. 내년 5월 제주에서 열리는 UCLG(세계지방자치단체연합) 문화정상회의에 지금까지 선정된 모든 동아시아 문화도시를 초청해 교류를 이어간다. 지난 16일 열린 폐막식에서는 닝보시, 나라시, 제주도가 문화교류 확대와 연대 강화를 적극적으로 협력하자는 내용의 ‘제주문화선언’이 나왔다.

문화도시 사업이 1년짜리 행사로 끝나지 않으려면 제주 보다 먼저 문화도시로 선정된 광주와 청주의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광주의 경우 교류에 초점을 맞춰 중국 취안저우, 일본 요코하마와 꾸준히 교류를 이어가고 있고, 청주는 문화도시 사업을 계기로 지역을 대표하는 콘텐츠 ‘젓가락페스티벌’을 개발했다.

2014년 문화도시로 선정된 광주는 그해 11월 취안저우, 요코하마와 우호도시 관계를 맺었다. 구속력 없는 선언보다는 더 높은 수준의 우호도시 협약을 바탕으로 세 도시는 2014년 이후에도 폭넓게 교류를 이어갔다. 

각국에서 열리는 축제, 문화행사에 서로 참석하는 교류는 기본적으로 하면서 광주시립미술관과 요코하마 문화예술 시설 뱅크아트1929가 손잡고 양 쪽에서 전시를 열었고, 교류 주제를 건축으로 확장해 문화도시들이 참여하는 건축포럼 ‘문화도시의 건축과 지역문화를 말하다’를 올해 6월 처음 개최했다.

청주는 짧은 문화도시 역사에서 가장 생산적인 성과를 만들어낸 사례로 평가 받는다. 제주로 따지면 제주문화예술재단 격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간부 직원을 사무국 책임자로 세우고 민간 문화예술 전문가도 채용하면서 조직 구성부터 공을 들였다. 민간 전문가 1명을 포함해 6명으로 시작한 광주 문화도시 사무국, 민간 전문가 없이 행정 공무원 포함 4명에 대행사와 손잡은 제주와 달리 청주는 민관이 합쳐진 8명을 운영했다. 사업을 마친 지금은 사무 조직을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에 옮겨 전문성과 연속성 모두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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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 동아시아 문화도시 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된 '젓가락 페스티벌'에 참가한 학생들의 모습. 출처=청주 동아시아 문화도시 홈페이지. ⓒ제주의소리

청주는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가 청주 소로리에서 발견된 역사적 사실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동아시아의 공통 분모인 젓가락의 모든 것을 한 자리에 선보이는 세계 최초의 ‘젓가락 페스티벌’을 만들었다. 젓가락 페스티벌은 그 취지와 성과를 인정받아 올해는 국비 지원으로 더욱 풍성한 내용을 갖췄다. 동아시아 문화도시를 계기로 지역을 대표하는 콘텐츠를 만들어낸 셈이다.

# 1년짜리 행사? 소중한 문화 행정 경험으로

문화도시 정식 사업을 모두 마무리 짓고 내년에 비교적 조촐한 후속 사업만 남겨둔 제주를 이제야 광주와 청주에 비교하는 것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유념해야 할 교훈은 분명히 존재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업 주체다. 지역 역량을 최대한 모아서 문화도시 사업을 치르고, 나아가 놀라운 성과까지 거둔 청주는 대행사 특혜 의혹으로 얼룩진 제주 입장에서 볼 때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어차피 1회성 이벤트로 끝낼 것 아니냐"며 문화도시 명예위원장직을 고사한 이어령 초대 문화부장관을 설득하기 위해 진정성 있는 비전을 세워 삼고초려가 아닌 오고초려까지 했다는 청주의 사례는 '지역 역량은 주어진 계기를 구성원들이 얼마나 발전적으로 활용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교훈을 던져준다.

제주는 앞으로 섬문화축제라는 또 다른 시도를 앞두고 있다. 2001년 열린 섬문화축제도 (주)대아기획이란 대행사를 선정해 진행했다. 그 결과는 대행사 선정 과정부터 불거진 특혜 논란, 혹평이 내려진 축제 내용, 주체 간의 법적 다툼까지 이어져 지역 사회에 큰 불신을 남겼다. 2001년 섬문화축제에 이어 2016년 동아시아 문화도시까지 치르며 얻은 교훈을 제주도 문화행정과 문화예술계는 되새겨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문화도시 사업을 정리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 겉만 화려한 백서가 아닌, 무엇이 부족했는지 냉철하게 반성하고 되돌아보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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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아 문화도시 제주 개막식 모습. 문화도시 사업이 1년짜리 행사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지난 과정을 되돌아보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 출처=동아시아 문화도시 제주 홈페이지. ⓒ제주의소리

그런 과정을 통해 문화도시 후속 사업으로 이어갈 행사는 무엇인지 옥석을 골라 교류를 이어가려는 노력 또한 필요할 것이다. 제주도가 검토 중인 청소년 문화교류를 비롯해, 전문가들의 심도 있는 논의로 좋은 평가를 얻은 인문학 콘서트의 후속 행사나 문화도시를 통해 교류의 물꼬를 튼 연계 행사를 지원하는 방안 등의 여러 구상을 모아야 한다.

박경훈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장은 “교류라는 것이 가시적인 성과를 금방 가져오기 어려운 분야다. 제주도 문화 행정은 문화도시 사업으로 소중한 국제 교류 경험을 쌓았다고 본다"며 "다만, 여러 문제점과 한계도 함께 드러났다. 다른 문화도시와도 비교하며 성과와 평가를 철저히 검증해야만 제2의 섬문화축제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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