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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호남 2박3일 순례 마지막 일정으로 전주를 찾은 제주4.3유족회 행불인유족협의회. 옛 전주형무소 터에서 희생자들의 넋을 추모했다.

[4.3행불인유족회 영·호남 순례] 전주형무소 터·황방산 끝으로 순례일정  마무리

[전주 = 이동건 기자] 외로이 세워진 작은 표지판 뿐이었다. 혹시 우리가 밟고 있는 땅을 파내면 제주4.3사건으로 행방불명된 희생자들의 유골이 나올 것 같아 발을 딛는 것도 마음이 무거웠다. 
 
지난 23일부터 2박3일간 영호남 순례를 진행하고 있는 제주4.3희생자유족회 행불인유족협의회가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옛 전주형무소 터와 황방산 기슭.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즈음 전주형무소에는 약 1900명이 수감돼 있었다. 형무소의 정원은 900명. 좁은 공간에 다닥다닥 서로 살을 맞대야 겨우 새우잠을 잘 수 있었으리라. 
 
1950년 6월부터 7월까지 약 4차례에 걸쳐 수감자 중 약 1400명이 ‘정치범’이라는 이유로 학살됐다. 학살 장소는 황방산과 건지산, 솔개재 등이다. 학살 피해자 상당수는 당시 억울하게 ‘빨갱이’로 몰린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행불인유족협의회는 25일 옛 전주형무소 터를 찾았다. 현재 형무소 터에는 큰 교회가 자리하고 있었다. 유족협의회는 제사를 지내기 위한 자리를 찾아 헤맸다. 혹여, 제사를 지내지 않는 교회 신자들의 항의를 받을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다. 
 
좁은 골목에 자리 잡은 유족들은 잔에 술을 따르고, 희생 영령들의 넋을 기렸다. 제사를 부랴부랴 마치고, 유족협의회는 다시 황방산으로 자리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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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호남 2박3일 순례 마지막 일정으로 전주를 찾은 4.3유족회 행불인유족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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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호남 2박3일 순례 마지막 일정으로 전주를 찾은 4.3유족회 행불인유족협의회. 옛 전주형무소 터에서 학살 사건 희생자들의 영혼을 달래는 간단한 제사를 올리고 있다. 
전주형무소 학살 사건은 1950년 ‘민주신문’에서 보도했고, 2003년 전북 소재 언론사가 다시 학살에 대해 다루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황방산 기슭에는 아직도 수많은 유골이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제대로 수습된 유골은 거의 없는 상태다. 
 
묻혀 있는 유골 중에는 불법 재판으로 형무소로 끌려간 제주4.3 피해자들도 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황방산 한 쪽에 전주시장 명의의 ‘전주형무소사건 희생지’ 표지판에는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국가차원의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함부로 훼손하면 안된다"는 내용이 적혀 있을 뿐이었다. 
 
누가, 어떻게, 왜 죽었는지 확인되지 않았고, 4.3으로 불법 감금된 제주도민 피해자가 몇 명인지도 파악되지 않았다. 
 
유족들은 사무친 눈빛으로 황방산을 바라봤다. 행방불명된 희생자들 중에 아버지, 오빠, 동생 등 가족들이 묻혀있을까. 가득 채운 술잔이 황방산 곳곳에 뿌려졌다. 
 
그렇게 행불인유족협의회는 2박3일간의 영호남 순례 일정을 황방산에서 마무리했다. 
 
유족들 대부분은 70세를 넘긴 고령임에도 대구 가창댐, 경산 코발트광산, 마산형무소 터, 김해 봉하마을, 목포형무소 터, 광주형무소 터, 5.18 망월동 묘지, 전주형무소터, 황방산 학살터 등을 2박3일간 쉼없이 강행군 했다. 
 
동행 취재한 젊은 기자의 체력도 한계에 달할 정도였지만, 유족들 누구도 불평·불만의 소리는 없었다. 
 
이동 중 전세버스에선 다소 지쳐보이던 유족들도 희생자들이 잠들어 있는 역사의 현장에서 추모 제사를 올릴 때면 어느 누구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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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형무소 사건 희생지' 임을 알리는 표지판. 

이번 순례 일정에 동행한 제주도 4.3지원과 윤영유 계장은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제대로 보존되지 않은 곳이 많아 안타까웠다"며 "어린 아이들, 후손들이 현장에서 제주4.3의 진실을 공부할 수 있도록 제주도내 4.3 유적지 만큼은 철저히 관리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4.3평화재단 기념사업팀 조정희씨는 “4.3 피해자들과 유족들의 명예회복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며 "또 4.3 피해자들과 유족들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에도 더욱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각오를 다지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이중흥 제주4.3희생자유족회 행불인유족협의회 회장은 “4.3당시 생사 조차 알 수 없는 행불인들에 대한 진상조사를 서둘러야 한다. 희생영령과 후손들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며 “행불인에 대한 진상조사와 명예회복을 위해 제주도, 재단 등과 함께 새로운 정부에 적극 요구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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