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김대중 정부에서 제정돼 같은 해 5월10일 시행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4.3특별법)’은 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윤석열 정권으로 이어진 24년간 무려 26차례에 걸쳐 개정 등 보완이 이뤄졌다. 76주년을 맞았지만, 아직도 4.3을 폄훼·왜곡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또 대통령령 등 후속조치가 이어지지 않으면서 개정된 4.3특별법이 희생자와 유족, 또 도민들의 아픔을 달래주지 못하고 있다. 4.3 76주년을 맞아 [제주의소리]는 4.3특별법 보완입법과 후속 과제를 짚어본다. [편
경찰영웅 故 문형순 서장의 제주도민 학살 명령 거부로 목숨을 부지한 강순주(94) 할아버지의 명예가 회복될 전망이다. 제주4.3사건 직권재심 합동수행단(합동수행단, 단장 강종헌)은 4.3때 일반재판 피해를 겪은 생존자 강순주 할아버지에 대한 직권재심을 27일 청구했다고 밝혔다.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에서 태어난 강 할아버지는 일본에서 살다 해방 직후 고향으로 돌아왔다. 4.3이 몰아친 1948년에 대대적인 토벌작전이 이뤄지자 강 할아버지는 산에 숨어있다 붙잡혔다. 1950년 5월22일 제주지방법원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금고
[기사수정 : 2024년 2월27일] 2022년 시작된 ‘제주4.3사건 직권재심 합동수행단(단장 강종헌, 합동수행단)’의 군사재판 직권재심 청구가 7부 능선을 넘었다. 갈수록 어려운 사건만 남게 돼 제주도민사회 안팎의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23일 합동수행단에 따르면 1948년부터 2년간 이어진 1~2차 군법회의(군사재판)에 휘말린 제주4.3 피해자 2530명 중 단 709명에 대한 재심 청구만 남았다. 2022년 2월10일 역사적인 첫 군사재판 직권재심 청구에 이어 올해 47차까지 총 1360명에 대한 재심 청구가 이뤄졌다. 또
제주4.3 피해자들의 조속한 명예회복을 위해 신설된 4.3 재심 전담 재판부 제3대 재판장에 방선옥 부장판사가 임명됐다. 19일자 전국 단위 법관 인사가 이뤄진 가운데, 제주지방법원은 형사제4-1부, 형사제4-2부 재판장에 방선옥 부장판사를 낙점했다. 사법연수원 33기인 방 부장판사는 전주지방법원에서 일을 시작했으며, 수원지방법원과 청주지방법원, 대전지방법원, 대전가정법원 등을 거쳤다.2019년 부장판사로 승진해 제주에 온 방 부장판사는 제1형사부(항소 재판부)와 제5민사부 겸 제3가사부 재판장 등을 역임했다. 제주에서 방 부장판사
동일체(同一體)를 원칙으로 삼는 검찰의 일관성이 제주4.3 피해자를 괴롭히고 있다. 제주에 이어 광주 검찰마저 아직 희생자로 결정되지 않은 4.3피해자 고(故) 한상용에 대한 재심을 반대하고 나섰다. 지난 7일 광주지방법원의 한상용 재심개시결정에 반발한 광주지방검찰청이 1주일만인 14일 즉시항고장을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항고는 법원 결정 등에 불복할 때 이뤄지는데, 즉시항고장 제출은 곧 검찰이 한상용에 대한 재심을 반대한다는 의미다.1년 전 제주를 떠올리면 기시감이 든다. 4.3 당시 성산읍 수산리에 살던 한상용은 신원불상의 남
검찰의 문제제기로 돌고 돌아 광주에서 진행되는 제주4.3 재심 사각지대 고(故) 한상용에 대한 재심개시가 결정됐다. 2022년 10월 재심 청구 이후 1년 4개월만이다. 광주지방법원 제12형사부는 설 연휴 직전인 지난 7일 한상용 재심개시결정이 이뤄졌다. 재심개시결정에 앞선 지난해 12월 광주지법은 한차례 심문기일을 열어 청구인(한상용 유족)과 검찰 측의 의견을 듣기도 했다. 이전의 사건을 다시 심리하는 재심 사건 특성상 과거사 관련 사건 재심개시결정은 8부능선을 넘은 것처럼 해석된다. 재심개시결정으로 법원은 별도의 공판기일 등을
제주 중산간에 위치한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던 20대 청년은 4.3 광풍에 휘말리면서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했다.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수감생활을 한 그는 70년 넘는 세월동안 제주를 단 한 번도 찾지 않았다. 스스로 고향을 ‘제주’라고 밝히지도 않고, 4.3희생자 신고조차 하지 않은 채 70년 넘게 제주와는 담을 쌓고 살았다. 그러던 지난해 직권재심 대상자 확인 과정에서 생존 사실이 확인되면서 75년만에 명예회복이 이뤄졌다. 제주지방법원 형사제4-2부(부장 강건)는 6일 부산 소재 동아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모의대법정에서 ‘제주4
생존중인 제주4.3 피해 당사자가 새롭게 확인됐다. ‘제주4.3사건 직권재심 합동수행단(단장 강종헌)’은 지난 25일 생존 수형인 A씨에 대한 직권재심을 제주지방법원에 청구했다고 밝혔다. 만 95세인 A씨는 1949년 7월2일 2차 군법회의(군사재판)에 회부돼 국방경비법 위반 누명을 뒤집어 써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4.3 피해자다. A씨는 4.3특별법에 따른 희생자가 아니라서 특별재심 대상자가 아니다. 당사자는 물론 주변인 그 누구도 A씨에 대한 4.3희생자 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 A씨가 4.3 당시 피해 사실을 가족에게조차
제주4.3때 오빠를 잃은 할머니가 치매를 앓으면서 한번씩 70여년 전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다. 할머니는 자신의 아들을 볼 때마다 “오라방(오빠) 왔구나”라고 말한다. 제주지방법원 형사제4-2부(부장 강건)는 ‘제주4.3사건 직권재심 합동수행단’이 청구한 제45차 군사재판 직권재심 대상자 전원(30명)에게 16일 무죄를 판결했다. 이날 직권재심 대상자 30명 중 3명은 내란죄(1948년 1차 군법회의), 27명은 국방경비법 위반(1949년 2차 군법회의) 혐의를 뒤집어썼다. 1명은 징역 7년, 12명은 무기징역, 17명은 사형이다.
4.3의 광풍이 제주를 뒤덮은 1948년. 당시 제주읍 오등리에 살던 남성은 딸이 경찰에 끌려갔다는 소식을 듣고 사위와 함께 길을 나섰다가 총살당했다. 남성에게는 4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첫째와 둘째는 형무소에 끌려간 뒤 행방불명됐다. 셋째는 군사재판에 휘말려 사형됐다. 막내 넷째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피신했지만, 그 뒤로 연락이 끊겨 행방불명 상태다. 한 집안의 성인 남성이 모두 4.3에 희생됐고, 간신히 살아남은 6살, 4살 사촌 형제가 고된 삶을 이겨내 집안의 대를 이었다. 70여년의 세월이 흘러 노인이 된 사촌형제의 한은
제주4.3 재심의 사각지대로 꼽히는 일반재판 피해자 고(故) 한상용에 대한 4.3희생자 결정에 앞서 재심개시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광주지방법원 제12형사부는 지난 13일 한상용의 명예를 회복시켜달라고 청구한 재심사건 심문기일을 진행했다. 이전 사건을 다시 심리하는 재심 특성상에 따라 재심 사유가 있는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위해 재판부가 심문기일을 열었다. 재심 사유가 있다고 판단되면 재판부는 재심개시결정을 통해 본격적인 심리를 시작하는데, 통상적으로 4.3과 비슷한 과거사 사건에 대한 재심개시가 결정되면 8부능선을 넘은
일제강점기를 벗어나 통일된 독립국가를 염원,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옥살이를 한 제주도민들의 명예가 70여년의 세월이 흘러서야 회복됐다. 유족들은 따로 할 말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12일 제주지방법원 형사제4-1부(강건 부장)는 ‘제주4.3사건 직권재심 합동수행단’이 청구한 제5차 일반재판 직권재심 대상자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5차 일반재판 직권재심 대상자는 총 10명으로, 이들 대부분은 4.3 당시 농민, 어부, 학생 신분이었다. 이날 직권재심 대상자 대부분에게 적용된 법률은 미군정
일제강점기를 벗어나자마자 제주에 몰아친 4.3의 광풍은 7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현재진행형’으로, 이웃과 친지 등에게 외면받은 후손들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은 한(恨)으로 남아 있다.28일 제주지방법원 형사제4-2부(강건 부장)는 ‘제주4.3사건 직권재심 합동수행단’이 청구한 43번째 군사재판 직권재심 대상자(30명) 전원에게 무죄를 판결했다. 제주4.3특별법 전면 개정으로 2021년 3월 특별재심·직권재심이 시행된 이후 군사재판 직권재심 명예 회복자는 누적 1241명이며, 일반재판(40명)을 포함하면 직권재심으로만 총 128
1950년 6.25 한국전쟁 참전용사의 아들이 “웃뜨르(윗동네)에 산 것이 죄가 되느냐”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의 큰 삼촌은 제주4.3 희생자다. 28일 제주지방법원 형사제4-2부(재판장 강건 부장판사)는 ‘제주4.3사건 직권재심 합동수행단’이 청구한 제42차 군사재판 직권재심 대상자 30명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날까지 직권재심으로 명예가 회복된 군사재판 피해자는 누적 1211명이며, 일반재판 직권재심으로 명예가 회복된 4.3피해자(총 40명)를 포함하면 총 1251명에 이른다. 42차 군사재판 직권재심 대상자 중 4명은
60여 년 동안 원망했던 아버지에게 사과의 말을 전하며 회한의 눈물을 흘린 딸부터 아직까지 아버지의 사망신고를 하지 못한 딸까지…. 저마다 한평생 가슴 한편에 켜켜이 묵혀둔 사연을 꺼내자 법정은 눈물바다가 됐다.14일 제주지방법원 형사제4-1부(부장 강건)는 4.3 희생자 유족 김모씨 등 4명이 청구한 재심 대상자 고(故) 김남일, 윤인규, 강태휴, 김정수 등 4명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故 김남일은 4.3 당시 제주농업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포고제2호위반(국권문란)’ 누명을 쓴 김남일은 형과 함께 경찰에 연행됐다. 형은
제주4.3 재심 사각지대의 첫 사례로, 돌고 돌아 광주에서 재심 절차를 밟는 사건을 검찰이 또 외면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2부는 오는 12월 고 한상용 유족들이 청구한 4.3 재심사건 심문기일을 예정했다. 심문기일 지정에 앞서 변호인 측은 재심의 정당성을 서면으로 제출했으나, 광주지검이 재심에 부정적인 의견을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광주지검은 제주지검과 거의 같은 내용으로 재심에 부정적인 의견서를 제출한 것으로 파악됐다. 한상용은 4.3 당시 서귀포시 성산읍에서 경찰에 끌려가 옥살이한 4.3 피해자다. 1950년 2월 국가보안법
제주4.3 때 태어난 만 75세의 노인이 아버지에 대한 명예회복을 위한 재심이 성사되자,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감사하다고 울먹였다. 31일 제주지방법원 형사제4-2부(부장 강건)는 ‘제주4.3사건 직권재심 합동수행단(단장 강종헌, 합동수행단)’이 청구한 제41차 군사재판 직권재심(30명) 대상자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로써 일반재판을 포함해 직권재심으로 명예가 회복된 4.3피해자는 1221명으로, 누적 1200명을 돌파했다. 41차 군사재판 직권재심 대상자 중 5명은 1948년 1차 군법회의(전원 내란죄)에, 나머지 2
11살에 나이로 참혹한 제주4.3을 마주한 80대 노인은 무자비한 공권력에 의해 희생된 죄 없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명예 회복을 호소했다. 31일 제주지방법원 형사제4-2부(부장 강건)는 ‘제주4.3사건 직권재심 합동수행단(단장 강종헌, 합동수행단)’이 청구한 일반재판 4차 직권재심 대상자 10명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군사재판 직권재심 사건처럼 일반재판 직권재심도 검찰의 무죄 구형, 변호인의 무죄 변론, 재판부의 무죄 선고까지 한꺼번에 이뤄졌다. 일반재판 직권재심으로 명예가 회복된 4.3 피해자는 총 40명이며, 군사재판을
아흔을 바라보는 노인이 70여년 전 제주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4.3 피해자들은 ‘폭도’가 아니라고 일갈했다. 17일 제주지방법원 형사제4-1부(부장 강건)는 ‘제주4.3사건 직권재심 합동수행단(단장 강종헌, 합동수행단)’이 청구한 제40차 군사재판 직권재심 대상자 30명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40차까지 직권재심으로 명예가 회복된 군사재판 피해자는 1151명에 이르며, 일반재판 직권재심을 포함하면 1181명에 달한다. 이날 재심 대상자 중 4명은 1948년 1차 군법회의에 회부돼 내란죄를, 26명은 1949년 2차 군법회의에 회
제주4.3의 기점이 된 이른바 ‘3.1사건’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다 총살된 고(故) 김시범 초대 조천면장 등의 명예가 76년만에 회복됐다. 17일 제주지방법원 형사제4-1부(강건 부장)는 제주지방검찰청이 청구한 1차 일반재판 직권재심 대상자 10명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심 대상자 10명 모두 포고 제2호 위반 등의 혐의를 받았다. 이들 중 9명은 각각 벌금 2000~5000원에, 1명은 징역 6월에 집행유예 3년에 처해진 4.3 희생자들이다. 모두 무허가 집회에 참가하거나 공중치안질서 교란, 민중 행복에 불리한 행위 등을 저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