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재심, 역사의 기록] (87) 유족 청구 재심 4명 전원 무죄

60여 년 동안 원망했던 아버지에게 사과의 말을 전하며 회한의 눈물을 흘린 딸부터 아직까지  아버지의 사망신고를 하지 못한 딸까지…. 저마다 한평생 가슴 한편에 켜켜이 묵혀둔 사연을 꺼내자 법정은 눈물바다가 됐다.

14일 제주지방법원 형사제4-1부(부장 강건)는 4.3 희생자 유족 김모씨 등 4명이 청구한 재심 대상자 고(故) 김남일, 윤인규, 강태휴, 김정수 등 4명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故 김남일은 4.3 당시 제주농업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포고제2호위반(국권문란)’ 누명을 쓴 김남일은 형과 함께 경찰에 연행됐다. 형은 석방됐지만 김남일은 징역 단기 1년, 장기 2년의 형을 선고받고 인천소년형무소에 수감돼 1948년 9월 출소했다.

하지만 그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이미 형은 사망한 후였다. 형이 전기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김남일은 크게 분노했고, 그의 집 밖 거리에서 세 들어 살던 이가 이를 보고는 경찰에 신고하면서 또다시 연행됐다.

이후 김남일은 군사재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인천형무소에서 수형 생활을 하다 행방불명됐다.

김남일의 아버지는 첫째를 고문 후유증으로 잃고, 둘째는 행방불명되자 아무것도 소용없다는 생각에 남은 김남일의 형제들은 공부시키지 않았다. 이 또한 남은 자녀들이 겪은 4.3의 고통이었다.

故 윤인규는 1947년 4월10일 북제주군 종달리의 한 들판에서 경찰 당국의 허가 없이 열린 청년 집회에 참여했다가 일명 ‘6.6사건’에 연루돼 경찰에 연행됐다.

1947년 7월31일 제주지방법원에서 벌금 1000원형을 선고받고 당일 석방됐지만,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행방불명됐다.

故 강태휴는 4.3 당시 58세의 나이였다. 애월읍 장전리에서 태어나 가족들과 농사를 짓다가 수산리로 내려갔는데, 조사할 것이 있다며 경찰이 연행해 갔다. 이후 약식 명령을 받은 그는 풀려난 뒤 생사의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故 김정수는 4.3 사건에 휘말리며 불과 20세의 나이에 자신의 죄명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끌려가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김남일의 동생 김모씨는 “4.3 사건 당시 태어나진 않았지만, 그 당시에는 무슨 잘못을 했다고 경찰이 꽂아버리면 바로 사건화돼 잡아갔다. 큰형님이 억울하게 잡혀가 3일 동안 모진 고문을 당하고 나와 3일 만에 숨을 거뒀다. 그걸 들은 작은 형이 너무나도 억울해서 나쁜 놈들이라고 난리를 치니 밖 거리에서 살던 사람이 경찰에 그대로 일러바쳤다. 너무나 억울하다는 말밖엔 할 말이 없다”고 말끝을 흐렸다.

김정수의 가족은 아들, 딸, 사위, 손녀를 비롯해 유모차에 탄 증손녀까지 재심 현장에 함께했다.

그 중에서도 딸 김모씨는 아버지에게 그간 전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표현했다.

그는 “아버지를 보지 못하고 태어나 성인이 된 후에야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게 됐다. 이번 재심을 하며 친척, 어르신들의 아버지에 대한 증언을 들으며 아버지가 어떻게 살아왔고, 어머니의 삶이 어땠는지를 이해하게 됐다. 남편을 여읜 어머니는 저희 삼 남매를 키우다 돌아가셨는데, ‘아버지의 트라우마가 너희를 잡았다’는 말씀을 살아생전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그래도 어머니보단 제가 낫지 않았나 싶다. 배 속 아이와 2살, 7살 난 아이들이 있었다면 전 견디지 못했을 것 같다”고 말하며 눈물을 쏟아냈다.

또 김씨는 “아버지를 원망했던 막내딸이 이제 사과드리고 싶고, 그동안 삼 남매를 키우느라 고생하신, 지금은 아버지 곁에 계신 어머니에게 감사드리고 싶다. 오늘 이 자리가 저희 집안안의 한이 풀리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찬찬히 말했다.

다음은 제주4.3특별법 전면 개정 이후 유족 청구재심 명예회복 명단. 

2022년 3월29일
김정유, 고태명, 이경천, 정양추, 오성창, 홍만선, 강석주, 강병주, 강익수, 김경욱, 양치선, 김경종, 현태집, 김재은, 문성보, 문성언, 박남섭, 양계운, 양운종, 장진봉, 한신화, 양규석, 강상호, 강병식, 강동구, 고명옥, 고윤섭, 변병출, 박원길, 박갑돈, 이재인, 장임생, 한순재

2022년 5월31일
강승하, 김두창, 한창석, 이경원

2022년 6월14일
고창옥

2022년 6월21일
현봉집, 홍숙, 문재옥, 박경생, 양서학, 강상문, 이남구, 양석구, 김천종, 고우삼, 고한수, 강상휴, 김영문

2022년 6월21일 
현상순

2022년 8월30일
박원길(2022년 3월29일 명예회복 박원길과 동일인)

2022년 9월6일
김병두, 강일범

2022년 9월13일
오창운, 양부연, 김희중

2022년 9월13일
안의길, 배두봉(호적상 배창아), 김정윤 

2022년 10월4일
이보연, 양완택, 양완후, 문종수, 현춘화, 문성환, 오군정, 오동정, 오자신, 현기방, 현기운, 박중화, 김승종, 장문빈, 오임길, 양성준, 김윤일, 김계진, 오두길, 현달평, 현영수, 오인호, 오한생, 김영수, 김봉현, 한형용, 오병규, 오인표, 오문옥, 오두찬, 오두진, 송두림, 문석도, 문옥주, 강병선, 강창온, 현태화, 현창제, 임세봉, 임원전, 이대성, 오자춘, 김익현, 김경두, 고문택, 문종우, 강용수, 강창협, 고종민, 김민학, 김상효, 김영주, 김영창, 김찬배, 김덕문, 박세림, 박필휴, 부성찬, 이양도, 이창효, 현우방, 강도원, 이맹복, 부을생, 송종수, 한탁섭

2023년 1월31일
김희두, 양치수, 양경칠, 고을선, 부한영, 임효봉, 임방혁, 김근일, 이근효

2023년 4월4일
윤인관, 김일현, 박정생, 강기옥

2023년 5월30일 
부오경, 임태혁, 오문정, 김태언, 강윤화, 김두옥, 김규훈, 김신훈, 문성주, 이유환, 김용택

2023년 8월29일
김한홍, 황계봉, 고행문, 양종호, 강태진, 김정화, 한충남

2023년 11월14일
김남일, 윤인규, 강태휴, 김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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