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재심, 역사의 기록] (83) 제1차 일반재판 직권재심 10명 전원 무죄

제주4.3평화공원에 설치된 작품 ‘비설’. 비설은 초토화작전이 벌어지던 1949년 눈더미 속에서 두살짜리 아이를 껴안은 채 죽은 변병생(당시 25) 모녀를 형성화했다. ⓒ제주의소리
제주4.3평화공원에 설치된 작품 ‘비설’. 비설은 초토화작전이 벌어지던 1949년 눈더미 속에서 두살짜리 아이를 껴안은 채 죽은 변병생(당시 25) 모녀를 형성화했다. ⓒ제주의소리

제주4.3의 기점이 된 이른바 ‘3.1사건’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다 총살된 고(故) 김시범 초대 조천면장 등의 명예가 76년만에 회복됐다. 

17일 제주지방법원 형사제4-1부(강건 부장)는 제주지방검찰청이 청구한 1차 일반재판 직권재심 대상자 10명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심 대상자 10명 모두 포고 제2호 위반 등의 혐의를 받았다. 이들 중 9명은 각각 벌금 2000~5000원에, 1명은 징역 6월에 집행유예 3년에 처해진 4.3 희생자들이다. 

모두 무허가 집회에 참가하거나 공중치안질서 교란, 민중 행복에 불리한 행위 등을 저질렀다는 누명으로 불명예를 안았다. 

무허가 집회의 경우 1947년 당시 제주읍 관덕정 광장에서 벌어진 3.1절 기념식이며, 공중치안질서 교란은 3.1사건 진상규명 운동과 3.10 총파업이다.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일제에 저항했던 3.1절을 제주에서 되새기는 자리에는 약 3만명에 달하는 민중이 참가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는 당시 제주 전체 인구의 1/10에 이른다. 

수많은 민중들이 모인 기념식에서 어린아이가 경찰이 탄 말에 채였고, 기마경찰은 어린 아이를 무시한 채 그대로 지나쳤다. 

민중들의 거듭된 항의에도 사과하지 않자, 일부 군중들은 돌멩이를 던지기도 했다. 당시는 일제강점기 부역자 출신 친일경찰에 대한 불만이 컸을 때다.  

민중들 항의가 계속되는 가운데, 다른 지역에서 파견된 경찰이 경찰지서 습격으로 오인해 민중들을 향해 발포, 6명이 목숨을 잃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른바 ‘3.1사건’이다. 

미군정은 발포자와 발포 책임자를 처벌하지 않았고,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이에 도민들은 3.1사건 진상규명을 촉구하면서 1947년 3월10일 3.10 민·관 총파업에 동참했다. 공무원을 비롯해 금용·교통기관, 학교, 현직 경찰까지 참여한 대규모 총파업에는 당시 전체 도민의 70% 이상이 동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군정은 3.1사건 발포를 경찰관이 폭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발생한 정당한 집무로 규정해 3.1절 기념식 참가자들과 3.1사건 진상규명 운동, 3.10총파업 등을 모두 불법으로 치부했다.   

고 김시범 초대 조천면장 3.1절 기념식 참가를 주도하고, 3.1사건 진상규명과 함께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면민을 선동했다’는 혐의를 뒤집어 썼다. 벌금 3000원형 확정 판결을 받아 석방됐지만, 1948년 11월 토벌대에 연행돼 함덕 서우봉에서 총살됐다. 

고 김원겸 서귀면 부면장도 발포사건 진상규명을 요구하면서 총파업을 주도, 경찰 내 친일파를 몰아내야한다는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구속됐다가 1947년 4월 벌금 3000원형 처벌을 받았다. 석방된 고 김원겸은 무장대라는 누명으로 군인에 의해 1949년 논밭에서 총살당했다. 

애월금용조합에서 일하던 고 조창호도 3.10총파업 참가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벌금 3000원에 처해져 석방됐지만, 고문후유증으로 투병생활하다 1949년 10월 사망했다. 

농업에 종사하던 고 김태효, 고 김태병, 고 고태휴, 고 김동하, 고 김사영 등도 4.3 광풍에 휘말려 평생을 전과자로 살았다. 

재판부는 1차 일반재판 직권재심 대상자 10명이 4.3 때 범죄를 저질렀다고 볼 수 없다며, 17일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다음은 직권재심 명예회복 명단(최근 10개 사건).

33차 군사재판 직권재심(2023년 6월27일)
이한형, 김판동, 한수생, 강재옥, 이찬봉, 오달만, 강윤규, 고계봉, 이계봉, 김계문, 강계생, 홍표반, 전기련, 전석규, 김창련, 김봉련, 이응배, 고태원, 임숙자, 오창송, 고정하, 강문규, 김재순, 김평택, 이용민, 김주용, 진경호, 양완희, 김문순, 김용문

34차 군사재판 직권재심(2023년 6월27일)
김권잠, 김권신, 오창진, 오창규, 김학률, 김학립, 김학로, 이창수, 이태원, 이인현, 박재찬, 박재민, 안태석, 안태룡, 김창희, 김영진, 김재인, 김재훈, 변계화, 변인택, 안자선, 양세옥, 김평림, 김서, 박두신, 박두철, 김병인, 김병선, 고성룡, 고갑룡

35차 군사재판 직권재심(2023년 7월11일)
백상현, 백봉현, 고진웅, 고경웅, 김이봉, 김일봉, 현문평, 현문봉, 오두생, 오두길, 문정공, 문정화, 문규하, 문규우, 현태훈, 현태전, 김순정, 고한송, 고기송, 고대송, 강봉혁, 강봉흠, 강봉화, 강군천, 강군일, 홍순석, 홍순명, 이정생, 양상진, 양상민

36차 군사재판 직권재심(2023년 7월11일)
송원삼, 송윤삼, 송공삼, 양맹선, 양중선, 김재두, 김재구, 김성교, 김정교, 문두하, 강원기, 송갑정, 고태흥, 김두헌, 김태민, 안두병, 정근우, 김갑생, 고병석, 강병규, 이문추, 이원창, 김중하, 임인찬, 송언화, 김덕호, 현수희, 양석봉, 강재운, 이종석

37차 군사재판 직권재심(2023년 8월29일)
이사만, 이성순, 신재운, 김희찬, 김용주, 진명규, 황도길, 고치홍, 김칠규, 고계춘, 고문종, 김주현, 김승희, 오태권, 오기준, 강태운, 김시청, 김용생, 강중반, 강재현, 이일진, 오성수, 오남화, 오옥춘, 김양흠, 송인국, 강숙도, 한재철, 윤두원, 윤두현

38차 군사재판 직권재심(2023년 9월12일)
김윤택, 송자정, 부은진, 고점각, 현공인, 양신생, 양제호, 문재민, 김규성, 정원종, 진재남, 오남규, 고정선, 이용표, 송병원, 강두일, 양승현, 김기윤, 고병화, 강한열, 김영수, 김중건, 강영훈, 고정용, 유명언, 강두인, 강두삼, 김복림, 이윤성, 강병훈

2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3년 9월26일)
김두희, 김행수, 강철호, 김승교, 강공율, 현임범, 이태신, 김두규, 송인송, 고기평

3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3년 9월26일)
김병규, 김덕현, 강희순, 황후길, 고행칠, 홍상형, 강재삼, 조진생, 현행주, 문창현

39차 군사재판 직권재심(2023년 9월26일)
김언종, 김영주, 홍신우, 양맹숙, 김봉언, 김병혁, 김재철, 정제옥, 허평식, 김덕중, 김시각, 고일봉, 김대규, 김규희, 김근익, 양도준, 양성언, 오국양, 오영하, 이찬형, 이한성, 오태년, 정경룡, 임명화, 고한주, 조천석, 이정호, 원응석, 윤공효, 양영수

1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3년 10월17일)
채희관, 김태병, 김태효, 김시범, 고찬일, 조창호, 고태휴, 김동하, 김원겸, 김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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