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재심, 역사의 기록] (93) 희생자 미신고 부산 거주 생존자 오모(96)씨 무죄

6일 부산 동아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열린 제주4.3 피해 생존자 오모(96)씨에 대한 4.3 직권재심 현장.
6일 부산 동아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열린 제주4.3 피해 생존자 오모(96)씨에 대한 4.3 직권재심 현장.

제주 중산간에 위치한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던 20대 청년은 4.3 광풍에 휘말리면서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했다.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수감생활을 한 그는 70년 넘는 세월동안 제주를 단 한 번도 찾지 않았다. 

스스로 고향을 ‘제주’라고 밝히지도 않고, 4.3희생자 신고조차 하지 않은 채 70년 넘게 제주와는 담을 쌓고 살았다. 그러던 지난해 직권재심 대상자 확인 과정에서 생존 사실이 확인되면서 75년만에 명예회복이 이뤄졌다. 

제주지방법원 형사제4-2부(부장 강건)는 6일 부산 소재 동아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모의대법정에서 ‘제주4.3사건 직권재심 합동수행단’이 청구한 희생자 미신고 생존자 오모(96)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고령인 오씨는 시각·청각 능력이 떨어지고, 거동도 불편한 상황. 이에 따라 법원과 합동수행단, 국선변호인 등은 오씨의 거주지와 가까운 동아대에서 공판을 열었다. 오후 3시에 시작될 예정인 이날 재심은 오씨 측이 다소 일찍 도착하면서 15분 앞당겨져 오후 2시45분에 시작됐다. 

법정에서 확인된 오씨의 삶은 한편의 ‘영화’보다도 더 기구했다. 

1927년 4월생인 오씨는 호적에 1928년 2월생으로 올라 있다.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에 위치한 국민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던 오씨는 1949년 7월 2차 군법회의(군사재판)에 회부돼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은 4.3피해자다.  

추후 확인된 오씨의 공소사실은 4.3때 성명불상의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원의 활동을 도왔다는 혐의(국방경비법 위반)다. 

4.3 당시 제주 해안가에서 5km 이상 떨어진 중산간 일대에 계엄령이 선포되자 토벌대는 의귀리 일대 주민들에게 총을 겨눴다. 주민들이 총살당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고 토벌대에 의해 거주지마저 불에 타자 오씨는 바위틈에 숨어있다 붙잡혔다. 

6일 부산 동아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열린 제주4.3 피해 생존자 오모(96)씨에 대한 재심 현장.
6일 부산 동아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열린 제주4.3 피해 생존자 오모(96)씨에 대한 재심 현장.

제주시로 끌려온 오씨는 토벌대로부터 모진 고문을 당했고,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형무소에 끌려 갔다. 

대구형무소에서 부산형무소, 마산형무소를 거쳐 다시 부산형무소로 이감된 오씨는 1952년 3월 징역 7년6월로 감형돼 1956년 부산형무소에서 만기출소했다. 

22세에 끌려가 30대가 되어버린 오씨는 그 뒤로 다시는 고향 제주를 돌아보지 않았다. 75년의 세월동안 제주를 찾은 적도 없고, 자신의 고향을 ‘제주’라고 밝히지도 않았다. 

우리나라에 군위 오씨가 가장 많다는 생각에 오씨는 자신의 고향을 경북 군위라고 밝히면서 부산에 터를 잡아 현재까지 살고 있다. 슬하의 자녀는 1남2녀로, 4.3 때 교사로 일했을 만큼 영특한 오씨는 글쓰기 등을 통해 생계를 꾸렸다. 

그는 가족들에게 피해가 될까 4.3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했는데, 직권재심 대상자 확인 과정에서 오씨가 부산에 생존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오씨는 최근까지도 재심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미 제주를 잊고 살고 있는데, 당시의 아픈 기억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다는 취지다. 

계속된 설득으로 오씨가 재심을 결심했고, 그 후에야 자식들도 아버지가 4.3피해자라는 사실을 인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씨 측은 지난해에 4.3희생자로 결정해달라고 신고했고, 오씨에 대한 재심 개시 결정(2024년 1월30일)과 무죄 판결(2024년 2월6일)이 일사천리로 이어졌다. 

합동수행단 소속 왕선주·이인원 검사는 오씨가 4.3 때 고문당한 것으로 확인되고, 공소사실과 같은 행위를 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구했다. 

국선변호인 반희성 변호사는 “오씨가 부산에 정착한 이유는 그리운 고향 제주에서 이웃들이 아무런 죄없이 죽어간 비극적인 기억 때문”이라며 “무죄 판결을 통해 오씨의 70여년 세월의 한을 풀어달라”고 변호했다. 

무죄 구형과 무죄 변론이 이어지면서 재판부는 이날 오씨에게 무죄 판결을 했다. 

재판장인 강건 부장판사는 “재심 기록을 보면 오씨는 ‘내 운명이 왜 이렇게 됐나’며 자주 생각했던 것 같다. (무죄 판결이) 아픔을 겪은 피고인에게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위로했다. 

6일 부산 동아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열린 제주4.3 피해 생존자 오모(96)씨가 말하고 있다. 
6일 부산 동아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열린 제주4.3 피해 생존자 오모(96)씨가 말하고 있다. 

70여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은 오씨는 “감사하다”고 말했다. 

오씨는 “눈도 잘 안보여서 사람들과 마주해 대화를 잘 못해 불편한 상황인데, (부산까지 온)다른 분들에게 미안하다. 제가 나이가 많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 사회에 이바지하고 헌신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씨는 자신의 이름 등 신상공개를 끝까지 거부했다. 이유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4.3 광풍에 휘말린 피해자임에도 4.3과 연관됐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빨간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추정된다.

아직 4.3희생자로 결정되지 않은 오씨의 경우, 4.3특별법에 따른 ‘특별재심’ 대상자가 아니라서 더 까다로운 형사소송법에 따른 재심 절차를 밟았다. 생존자인 오씨가 4.3 당시를 온전히 기억하면서 진술의 신빙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한 합동수행단은 이번 재심을 청구했다. 

이로써 직권재심으로 명예가 회복된 제주4.3 군사재판 피해자는 총 1302명으로 늘었다. 1~5차 일반재판을 포함하면 직권재심으로만 총 1352명의 4.3 피해자가 명예를 회복했다. 

무죄 판결 직후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환영 메시지’를 내고 “깊은 트라우마에도 진실을 위해 용기를 내어주신 어르신께 감사와 응원의 말씀을 드리며, 이번 판결이 어르신과 가족분들께 큰 위로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밝혔다.

또 “어르신의 무죄 판결이 더 뜻깊은 이유는 희생자 결정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제주4.3사건직권재심합동수행단의 직권으로 일반재심을 청구했기 때문”이라며 고령을 고려해 빠른 진상규명과 명예 회복에 최선을 다해준 합동수행단과 변호인단에도 감사를 전했다.


다음은 직권재심 명예회복 명단(최근 10개 사건)

1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3년 10월17일)
채희관, 김태병, 김태효, 김시범, 고찬일, 조창호, 고태휴, 김동하, 김원겸, 김사영

40차 군사재판 직권재심(2023년 10월17일)
김태문, 김영구, 고용순, 김영찬, 김형진, 김영균, 김두행, 양희수, 한태복, 한창섭, 부영주, 고봉훈, 송병옥, 정기환, 김성하, 이보원, 고병률, 현서권, 소찬택, 정인식, 이성희, 김삼현, 강성수, 송대경, 김민종, 박남해, 홍천표, 양보하, 현재보, 고석구

4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3년 10월31일)
강상두, 고을송, 김인수, 강문택, 장한성, 현봉하, 김덕용, 서종권, 손경현, 장춘자

41차 군사재판 직권재심(2023년 10월31일)
고용전, 임달부, 송공삼, 오창순, 문종각, 김성천, 김치민, 김성길, 김기규, 김형주, 고재찬, 양만학, 김순택, 양지순, 김혁조, 김두인, 이대성, 조두규, 현상시, 진경만, 오영백, 양태후, 홍용표, 김창해, 김봉수, 강군화, 강조정, 부윤호, 안최빈, 김윤석

42차 군사재판 직권재심(2023년 11월28일)
김안국, 고두석, 정두영, 백우형, 김희만, 김병호, 김봉수, 장성학, 김태경, 이근우, 현귀보, 김수호, 오국보, 박두환, 부성우, 채평호, 강용생, 이완진, 현완일, 문두홍, 고의학, 강위경, 천두팔, 양승후, 김기풍, 김병용, 좌구형, 강여규, 양재섭, 김대길

43차 군사재판 직권재심(2023년 11월28일)
현두생, 강한규, 고태호, 김기남, 김봉흡, 김재생, 이요심, 한일봉, 양근오, 고태규, 한칭목, 양의호, 송갑생, 송신생, 김동안, 부영호, 허달희, 양재희, 강원효, 김윤명, 홍남기, 강태평, 김자학, 박성찬, 김창영, 오순보, 김봉호, 허남홍, 허남섭, 허남익

5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3년 12월12일)
이상지, 김오봉, 김병봉, 강병칠, 오흥수, 홍유아, 김만규, 임재옥, 고인성, 황덕칠

44차 군사재판 직권재심(2024년 1월16일)
고익중, 김경완, 고기형, 문창하, 김봉집, 김병임, 고재남, 홍민삼, 양경택, 오영홍, 하용현, 양대원, 김철호, 이은선, 오의창, 부원옥, 안두선, 오봉두, 오민선, 김원오, 김양기, 강덕용, 고자은, 김병욱, 오성도, 윤영주, 안응빈, 이무형, 이근생, 오재두

45차 군사재판 직권재심(2024년 1월16일)
김성탁, 양중빈, 김병주, 강오규, 홍일봉, 김원방, 양응휴, 박병규, 강성봉, 신형택, 김은권, 박상책, 김안등, 부치량, 신방수, 최봉규, 안길수, 문원봉, 양태교, 이영종, 김봉삼, 고승주, 최봉우, 윤상희, 현영호, 이성옥, 고인경, 박종호, 이맹사, 김공남

희생자 미신고 생존자 직권재심(2024년 2월6일)
오모씨(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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