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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일 서귀포예술의전당 대극장에서 공연한 서귀포시 창작 오페레타 <이중섭>. ⓒ제주의소리
[리뷰] 서귀포시 창작오페레타 <이중섭>

서귀포시 창작오페레라 <이중섭>이 기대와 부담을 동시에 짊어지고 1년 만에 돌아왔다. 지난해 초연 당시 무난한 내용·구성으로, 서귀포예술의전당 대극장 802석을 매진시키며 큰 호응을 얻었다. <이중섭>이 성황리에 막을 내린 뒤, 제주에서는 제주도 창작 뮤지컬 <호오이 스토리>가 등장했고, 제주시도 김만덕을 소재로 한 창작 뮤지컬 제작에 착수했다. <이중섭>이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잠잠하던 지역 창작 공연의 물꼬를 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에 여러모로 기대와 부담이 가지고 지난 5일 막이 올랐다.

2017년 버전(version) <이중섭>은 초연과 큰 틀에서는 동일한 모양새를 유지했지만, 여러 면에서 수정·보완됐다.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여신’으로 추앙받던 이중섭 부인(마사코)의 어머니는 딸의 적극적인 사랑을 응원하는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도쿄 대공습으로 아내를 무척 걱정하던 이중섭이 곧바로 어머니로부터 결혼 허락을 받고 기뻐하며 펄쩍 뛰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구성은, 보다 자연스럽게 감정이 흐르도록 바로 잡았다. 추모보다는 이중섭을 영웅화하는데 가깝던 피날레는 비교적 차분한 느낌으로 수정했다. 이중섭과 어머니가 피난으로 생이별을 앞둔 장면에선 무대 뒤편에 어린 이중섭, 젊은 어머니를 연상케 하는 아이와 무용수를 투입해 애잔함을 높였다. 서귀포에서 이중섭의 두 아들이 잡던 게는 보다 정교한 모양과 복장을 갖춰 연기했다. 피날레에서는 쓰러진 이중섭 역 출연자를 커다란 흰색 천으로 덮는 장면이 새로 추가됐다. 모두 긍정적인 변화라 여겨진다.

그러나 선뜻 공감하기 어렵거나 아쉬운 점도 여럿 기억에 남는다. 

무대 뒤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은 공연 내내 극의 배경이나 이중섭 작품을 보여줬는데, 어떤 장면에서는 빼어난 수준의 영상이나 사진을 보여줬다면 정반대인 경우도 있었다. 가장 대비되는 것이 이중섭의 서귀포 생활을 그린 ‘서귀포의 환상’과 피난 전 이중섭이 작품 활동에 대한 열의를 불태우는 ‘이제 나는 알았네’ 장면.

뒤에서 더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서귀포의 환상’에서는 영상과 사진을 접목시킨 사진부터, 서귀포 시내 항공사진, 오름, 옛 전통 가옥 등 여러 자료를 사용한다. 이에 반해 ‘이제 나는 알았네’ 장면은 이중섭 작품 달랑 한 장을 화면에 띄우는데 그쳤다. 그마저도 후반부에 빼버려, 아무 것도 없는 검은 화면으로 장면을 마무리하는 이해할 수 없는 연출을 선보였다. 서귀포의 환상에 쏟을 공력을 절반이라도 투입해 이중섭의 작품들을 보여줬다면, 마사코와의 결혼 이후 미술 작가로서 마음을 다잡는 주인공의 심정을 더욱 잘 표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은 ‘미도파 개인전’ 장면을 비롯해 여러 장면에서 떠올랐다. 이중섭이 ‘친북인사(빨갱이)’로 오해받는 장면에선 대표작 <황소>에 불꽃 영상을 삽입하는 아이디어도 새로 추가했는데, 오히려 과유불급이란 느낌을 줬다. 이중섭 작품을 저작권 같은 문제로 쓸 수 없는 게 아니라면, 화가라는 정체성을 잘 드러내고자 작품 이미지를 더욱 적극적으로 사용하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이중섭을 다룬 또 다른 작품인 연극 <길 떠나는 가족>에서는 이중섭을 연기하는 출연자가 극 중에 직접 그림까지 그린다. 

변화를 가져온 무대도 마찬가지. 지난해는 무대 가운데 앞 쪽에 정사각형 모양의 주 공간을 두고 양쪽은 트인 구조였다. 올해는 주 공간을 넓히면서 관객이 보기에 오른쪽엔 계단, 왼쪽에는 또 다른 공간을 설치했다. 자연스레 출연자 동선은 좌우로 길게 됐다. 그래서인지 지난해 무대 양쪽에서 등장한 책장, 좌판 같은 소품이 올해는 사라졌다. 그렇다면 새로 설치한 공간을 연출에 녹여내야 했지만 왼쪽에 무용수들이 등장하는 정도 뿐, 눈에 띄는 사용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굳이 동선을 길게 가져가야 하는 인상적인 표현도 많지 않았는데, 소품도 사용할 수 없게 공간을 만들어야 했는지 의아하다. 다만, 무대 가장 뒤편에 경사진 공간은 어린 이중섭-어머니 등장이나 피날레에서 적절히 사용되면서 대비를 이뤘다. 

무대 위쪽에서 꽃모형, 기다란 천, 빈 액자 같은 여러 소품을 내려 보냈다 올리는 시도 역시 효율적으로 사용됐다고 보기 힘들다. 결혼식 장면에서의 붉은 꽃, 피날레의 흰 꽃은 상황에도 어울리고 주목을 끌기 충분했지만, 기다란 천은 객석에서 보기엔 그저 검은 천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특별한 의미를 찾기도 어려웠다. 빈 액자는 그림자가 화면을 가리면서 도리어 역효과를 줬다.

공연 장치로 사용한 ‘무용’은 아직까지 확실히 자리 잡지 못한 모양새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검은 까마귀로 분장한 건장한 남성 무용수 정도만 기억에 남을 뿐, 나머지는 ‘저기서 꼭 나와야 하나’라는 기초적인 의구심을 지우지 못했다. 오히려 무대 앞쪽 고정 마이크를 무용수가 넘어뜨리는 실수까지 일어나면서, 보다 기본적인 공연 구성에 집중해야 한다는 인상을 줬다. 

올해 <이중섭>을 보면서 내내 떠오른 키워드가 바로 ‘기본’이다. <이중섭>이 정통 오페라가 아닌 연기나 무용이 삽입되는 오페레타로 제작됐어도 분명 ‘오페라’의 틀은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주요 출연자들이 마이크를 사용한 것은 두고두고 아쉬움을 준다. 교향악단이 아닌 관악단이 연주하는 특수성을 감안했다 하더라도, 주연 이중섭의 마이크 출력이 확연하게 차이 나면서 가져다 준 이질감과 마이크 위치를 신경 쓰는 모습은 공연 내내 적응하기 어려웠다. 

오페라 <나비부인>의 주인공 나비부인이 15세여서 10대 성악가를 캐스팅할 순 없는 것처럼, 항상 등장인물 나이에 딱 맞는 연기자를 찾을 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특정인을 섭외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관객을 배려해 등장인물과 출연자의 이미지를 어느정도 맞추는 노력은 필요하다고 본다. 

선량한 품성에 때로는 소심했어도 가족과 동료, 미술을 누구보다 사랑하면서 궁핍한 생활을 면치 못한 채 생을 마감한 실제 이중섭의 이미지와 이번 오페레타 <이중섭>의 ‘이중섭’은 (각자 지닌 음악적 역량과는 별도로) 과연 어울린다고 볼 수 있을까. 더욱이 5일 첫 공연 주인공은 “컨디션 난조”(서귀포시 관계자 설명)까지 겹치며 더더욱 아쉬움을 남겼다. 주요 출연진 캐스팅은 서귀포예술단이 맡았다고 알려졌다. 예술단은 다음 공연에서는 이 부분을 반드시 고려해주길 바란다. 

이중섭이 서귀포시에 살던 1년여를 그린 장면은 강하게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지난해는 ‘섬이’라는 가상의 서귀포 주민을 등장시켜 ‘하늘이 내린 보석 같은 아름다운 낙원, 언제든 옵서예, 언제든 맘편히 옵서예, 혼저옵서예’ 같은 노래를 불렀다. 제작자가 서귀포시인 만큼 어느 정도의 홍보는 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올해는 극 전체 흐름을 깨는 수준까지 한층 더 끌어올렸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중섭 작품 사진은 제대로 띄우지 않으면서, 서귀포시를 알리는 영상과 사진은 여러 개를 가져다 붙였다. 이중섭은 가본 적도 없을 산방산, 세연교가 등장하는 서귀포항 전경, 전통 가옥, 오름 등의 사진들이 나열되면서 마무리로 ‘혼저옵서예’라는 문구까지 등장한다. 누가 봐도 극 중 어느 장면보다 공을 들였다. 여기에 주요 출연자는 모두 빠지고 서귀포합창단 여성 단원들이 무대 앞쪽으로 나와 단체 율동까지 하면서 노래 부른다. 이쯤 되자 내가 오페레타 <이중섭>을 보고 있는지, 시정 홍보 공연을 보고 있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앞서 서귀포시는 <이중섭>을 올해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에 출품하려 했지만 심사에서 떨어져 무산됐다. 이 장면을 곱씹어보니 떨어진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결코 지나치지 않는다. 서귀포 거주 당시, 온 가족이 함께 했지만 열악한 생활을 면치 못하며 1년만에 부산으로 떠난 이중섭에게 ‘지금 난 꿈을 꾸고 있다’라는 대사까지 시켰으면 서귀포시 홍보는 충분하다고 본다. 서귀포시는 <이중섭>을 '시'가 만드는 공연이 아닌 시가 만드는 '공연'으로 여겨야 한다.

노래에 집중해야 할 합창단이 망치·곡괭이질 퍼포먼스를 하는 연출 역시 기본에 어울리지 않는다. 개구리 뛰는 모양새처럼 다리를 살짝 굽혔다 일어서는 합창단의 율동도 사족(蛇足) 다름 아니다.

기대만큼 아쉬움이 큰 건 지난해 첫 공연에서 받은 좋은 인상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일까. 여러 말을 남겼지만 오페레타 <이중섭>은 분명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부족한 점이 남아있었지만 긍정적인 보완도 이뤄지면서, 화가 이중섭을 향한 서귀포시의 특별한 애정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1년, 5년, 10년 이상 무대에 오르는 공연은 그만의 생명력을 가진다. 지금은 <이중섭>이 제 모습을 갖추기 위한 과정이라고 본다.

서귀포시는 지난해 초연 이후 평가보고회를 열어 무엇을 개선해야 할지 논의했다. 그 노력 자체는 높이 평가 받아야 하나, 1년에 단 며칠 공연하는 일정을 고려하면 제대로 된 개선을 기대하긴 부족하다. 오페레타 <이중섭>은 국내 지자체 창작 공연의 흐름을 고려할 때 분명 후발주자에 속한다. 후발주자인 만큼 보다 도전적인 자세로 <이중섭>을 대하는 건 어떨까 생각해본다. 

예를 들어 주·조연 배역을 꼭 중견 성악가로 채우기 보다는 아예 서귀포합창단원들이 전담해 만들거나, 제주도립 제주합창단이나 제주교향악단과 함께 만들어보고, 제주시로 넘어와 제주아트센터나 제주도문예회관에서 공연하는 발상이다.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겠으나 예산 부담도 덜고, 도민들로부터 보다 많은 피드백(Feedback)을 받을 것이다. <이중섭>은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이전에 제주도에서부터 인정받는 공연이 돼야 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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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페레타 <이중섭> 제작진, 출연자들이 함께 나와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지난해 무료로 진행한 <이중섭>은 올해 전 좌석 1만원으로 변화를 줬다. 이날은 비록 빈자리가 제법 있었지만 적지 않은 시민들이 기꺼이 좌석을 채우며 시민을 대표한 창작 공연에 애정을 보냈다. 지난 해 리뷰에서 기자는 “지역 대표 문화콘텐츠를 개발했다는 가능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지금도 이 표현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중섭>이 시민들이 자랑스러워 할 공연으로 자리 잡길 진심으로 바란다. 

오페레타 <이중섭>은 5일부터 8일까지 서귀포예술의전당 대극장에서 공연한다. 5~7일은 오후 7시 30분, 8일은 오후 5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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