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시 창작오페라 ‘이중섭’

지난 1일 오페라 '이중섭'의 무대 인사 장면.

2016년 첫 선을 보인 서귀포시 창작 공연 ‘이중섭’이 올해로 6년째를 맞았다. 비록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해 한 해 쉬어갔지만 이번에는 끊이지 않고 명맥을 이어갔다.

‘이중섭’이 나름 호평을 받으면서 제주시 창작뮤지컬 ‘만덕’, 제주시 창작오페라 ‘순이삼촌’처럼 공공 영역에서 창작 공연 시도가 이어졌다는 흐름에서 ‘이중섭’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중섭’을 평가하는 다른 부분 가운데 하나는 꾸준한 수정을 통해 방향을 찾아갔다는 점이다. 2016년 오페레타로 시작해 2018년까지 계속 변화를 주며 완성도를 높여갔다. 특히 김숙영 연출이 투입된 2018년 공연은 확실한 분기점으로 ‘이중섭’ 공연 전체를 볼 때 일종의 기준을 세웠다고 볼 수 있을 정도다. ‘이중섭’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2019년 오페레타에서 오페라로 장르 변환을 시도한다. 연극적 요소가 비중을 제법 차지하는 오페레타와 달리 오페라는 음악 비중이 높아진다. 대사하듯 노래하는 레치타티보(recitativo)가 대표적인 특징이다. 2021년 10월 1일부터 2일 서귀포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 오페라 ‘이중섭’은 오페레타를 기반으로 하되, 체감 상 많은 차이를 보이며 충실한 오페라 작품으로 관객들과 만났다.

일단 오페라 ‘이중섭’은 이중섭 가족의 서귀포 생활부터 시작한다. 기존 오페레타에서 보였던 일본 유학 당시 이중섭과 마사코의 만남, 결혼, 피난길은 모두 사라졌다. 물론 마사코 어머니와의 만남 정도를 떼서 중간에 배치했지만 크지 않다.

네 가족이 함께하기에 행복하지만 피난길에 헤어진 어머니 생각이 깊은 중섭은 중섭 대로, 일본에 계신 아버지가 돌아가신 마사코는 마사코 대로 제주 생활에 고심이 깊다. 작품은 2막 들어 가족과 헤어진 뒤 서울에서 홀로 작품 활동에 매진하는 이중섭을 그린다. 구상, 광림, 고석, 태응 등 소중한 벗들의 응원 속에 기운을 내고 3막에서 기다리던 미도파 개인전을 연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은지화를 춘화로 규정하는 경찰의 등장과 세간의 오해는 중섭을 끝내 좌절하게 만들고, 마지막 4장에서 어머니와 아내 마사코의 환영 속에 고통 없는 세상으로 향한다. 소중한 친구의 빈자리를 느끼는 친구들의 합창으로 오페라 ‘이중섭’은 막을 내린다.

어머니는 꿈속 아들 이중섭에게 '사랑하며 살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병상에 홀로 누운 이중섭에게 아내는 '사랑하고 싶다'는 비통한 마음을 전한다. 이중섭을 움직이는 것은 민족을 대표하는 화공으로서의 열정도 있었지만, 가장 큰 요인은 무엇보다 사랑, 가족과의 사랑이었다. 그것을 지키지 못한 자책감은 너무나 크게 돌아와 스스로를 갉아먹었다. 오페라 ‘이중섭’은 혼란의 시기, 고독한 화가의 운명을 통해 ‘사랑하며 살라’는 조언을 관객들에게 전한다.

앞서 말했듯 이번 ‘이중섭’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오페라로 탈바꿈했다. 이전 오페레타에서 등장했던 요소들, 예컨대 무용은 초반 해녀 장면에서 잠깐 등장하는 정도에 그친다. 영상은 작업실과 미도파 개인전, 그리고 피날레에서 집중 있게 사용됐다. 이중섭이 서귀포에서 살았던 초가집을 새롭게 등장시키며 보다 몰입감을 높였다.

이런 변화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역시 대사다. 일반 대사는 모두 음악 대사로 바뀌었다. 단순히 기존 대사에 음만 붙이는 정도가 아니라 말을 늘리고 음까지 새로 추가하면서, 체감 상 일면 비슷하면서도 확연히 다르게 느껴졌다. 공연 전 기자와 만난 현석주 작곡가가 "거의 새로운 곡으로 채웠다"고 밝힌 소감이 이해가 됐다.

오페라로 집중한 변화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다만, 대중적인 친밀도를 고려했을 때는 물음표도 들기 마련이다. 2018년 오페레타를 떠올려보면, 수록곡들은 유려한 선율과 또렷한 기승전결로 지극히 보통 관객의 기준에서 ‘귀에 쏙쏙 들어오는’ 인상이었다. 개인적으로 수년이 지났어도 공연의 멜로디를 기억하며 흥얼거릴 만큼 '이중섭'은 매력적인 곡을 간직하고 있다. 오페라로 바뀌면서 이런 선명한 인상은 다소 희석된 면이 없지 않다. 물론 현석주 작곡가가 작곡 노트에서 밝힌 대로 “레치타티보와 아리아의 구분을 줄인 아리아조로 극적밀도를 높이”면서 오페라의 매력보다 낯섦이 앞선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그러나 정통 오페라에 가까워진 만큼, 다양한 관객과 친밀해지는 과정도 필요하다고 느꼈다. 오페레타 ‘이중섭’이 시행착오를 거치며 완성도를 쌓아 올렸듯이, 오페라 ‘이중섭’은 아마도 이제부터 시작이지 않을까 싶다. 오페라 '이중섭'과 오페레타 '이중섭'은 다른 작품성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이동호 서귀포관악단 상임지휘자의 평가에 공감한다.

오페라 ‘이중섭’을 통해 하나의 새로운 계기도 마련할 수 있다는 생각도 스친다. 바로 ‘이중섭예술제’의 대중적 확장이다.

서귀포시가 1998년부터 시작한 이중섭예술제는 그동안 주로 학생그림그리기 대회, 버스킹 공연, 영화 상영 정도로 열려왔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거나 이중섭과 그의 예술을 알리는 역할은 냉정히 말해 충분치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있는 콘텐츠 ‘이중섭’ 공연이 만들어졌다. 여기에 지난 9월 서귀포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 뮤지컬 ‘이중섭의 메모리’ 역시 빠질 수 없다. ‘이중섭’과 ‘이중섭의 메모리’를 함께 언급하는 이유는 내용적으로 상호보완적인 구조를 띄고 있기 때문이다.

오페라 작품은 서귀포 생활, 이중섭과 동고동락한 동료들 간의 우정 등에 힘이 실려 있다면, 뮤지컬은 일본 유학 시절 마사코와의 만남부터 마지막까지 서로를 기억하는 두 사람의 사랑에 상당부분 공을 기울인다. 각자가 자랑해도 좋을 장르적 차이는 말할 것도 없다. 더욱이 ‘이중섭의 메모리’는 제주 출신으로 대구에서 활동하는 뮤지컬 제작자 윤정인 맥 시어터 대표가 만든 작품이다. 그는 지난 9월 서귀포 공연 당시 [제주의소리]와 만난 인터뷰에서 ‘서귀포 상설 공연’의 가치를 언급한 바 있다. 

오페라, 뮤지컬에 이중섭 소재 연극 작품을 한 두 개 추가한다면 이중섭예술제에 대한 관심과 위상은 확연하게 달라지지 않을까. 1일 오페라 공연이 끝나고 공연장을 빠져나가는 관객 사이에서 '이중섭의 메모리'와 '이중섭'을 비교하는 소감을 여럿 들을 수 있었다.

삼성가의 원화 기증으로 새로운 미술관 건립도 목전에 두고, 이중섭과 서귀포에 대한 관심은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황이다. '이중섭'은 행정이 정책적인 관심을 놓지 않으며 중요한 문화 콘텐츠로서 변화와 발전을 이어가는 모범 사례로 충분히 평가할 만 하다. 서귀포시는 지난 날 이중섭거리라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향후 발전의 발판을 삼았다. 이번에는 완성도를 갖춘 공연을 한 축으로 삼아 '이중섭을 알고 싶다면 서귀포를 가보라'는 인식을 확고하게 굳히는 또 다른 기회를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보다 많은 관객들과 만날 2022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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