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로 다가온 제주의 꽃들(32)

흔히 나팔꽃으로 알려진 우리 꽃이 있답니다. 꽃모양은 거반 비슷하지만 나팔꽃과는 색도 다르고, 이파리도 다릅니다. 'Morning glory'라는 이름으로 나팔꽃은 '아침의 영광'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팔꽃을 닮은 우리의 메꽃, 그 중에서도 오늘 소개해 드릴 척박한 해안가에서 자라는 '갯메꽃'에는 어떤 꽃말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갯메꽃을 보면서 그의 사촌격인 메꽃생각을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육지에서의 겨울은 상록의 나무를 제외하고는 푸른 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른 봄 들판이 푸릇해지면 봄이 오는가보다 합니다. 물론 제주는 사시사철 푸르니 실감이 안 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푸른 것이 귀하니 육지에서는 단오전에 나오는 모든 싹은 나물로 해 먹을 정도로 나물문화가 발달했답니다.

보릿고개로 상징되는 1950년대와 60년대 후반까지의 배고픔을 경험하셨던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 어린시절을 보내셨던 분들에게 있어서 군것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고, 산야에 나는 칡, 찔레순, 딸기, 까마중, 아카시아꽃, 싱아, 보리수열매나 밤이나 개암 등이 참으로 소중한 먹거리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메꽃의 뿌리는 하얀것이 국숫발같이 생겼고, 생으로 먹어도 아삭하지만 삶아서 허기를 달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논두렁으로 다니며 아직 녹지 않아 얼어붙은 논두렁에서 메꽃뿌리를 캐느라 곱은 손을 불어가던 기억이 아련합니다. 지금이야 추억처럼 스쳐지나가지만 그 시절은 참으로 배고프던 시절이었습니다. 메꽃의 작은 뿌리들이 실증나면 곡괭이와 톱을 들고 산으로 가서 칡뿌리를 캡니다. 하루종일 칡을 씹다보면 아구가 얼얼하고 입안에 텁텁해지는 데도 그렇게 뭔가 입에서 우물거리고 있으면 배고픔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외래종인 파랗고, 빨간 나팔꽃이 들판을 장식해 갈 때에 메꽃도 그냥 나팔꽃 중의 하나인줄만 알았습니다. 오히려 '메꽃'이라는 것이 어색해 졌죠.

제주의 해안가는 사철 꽃이 피어있었습니다.
양지바른 곳에서는 한 겨울에도 해국은 물론이고, 감국, 갯괴불주머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꽃들이 늘 있었습니다. 그것을 찾아 나서는 여행길도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갯메꽃의 이파리도 한 겨울에도 반짝반빡 빛나며 푸른 잎을 자랑합니다. 참 그 생명력이 뛰어난 꽃이죠.

그렇게 갯메꽃이 피길 기다렸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바닷가 해안가에 펼쳐진 환상같은 갯메꽃으로 만들어진 꽃밭을 보았습니다. 한 두 송이씩은 만났지만 수천 수 만송이가 피어 있는 모습을 본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확성기같이 생긴 꽃모양을 보니 재미있는 상상이 떠오릅니다.
아마도 파도소리를 좋아하시는 하나님이 하늘에서도 편안하게 파도소리를 듣고 싶어 갯메꽃이라는 확성기를 달아 놓은 것은 아닌지요.
이쯤 되면 '갯메꽃'의 전설쯤은 하나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화사하지 않은 꽃.
그러나 흔하지도 않은 꽃.
활짝 피었다가도 해가 뜨면 잠시 피었다가 연약한 꽃잎을 닫는 꽃.
비가 오면 그 얇디얇은 꽃잎이 전부 상해 버리는 꽃.
향기도 그다지 많이 품고 있지 못한 꽃.
그래서 손님들도 많이 찾아오지 않는 꽃.
그러나
어린시절 보릿고개까지 넉넉하게 우리와 동고동락했던 꽃.
그들은 이 땅 구석구석에서 아파히며 신음하는 모든 이들의 소리를 듣고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파도소리 뿐만 아니라 강자들의 횡포에 의해 죽어가며 신음하는 모든 이들의 소리들까지 하나님께 들려줄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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