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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블록체인 논란] ② 도민소통 빠진 하향식 제주 블록체인 특구 추진

바야흐로 ‘블록체인’이 뜨거운 화두다. 제주에서도 곳곳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여기저기서 온통 ‘블록체인 어쩌고저쩌고’ 하는 포럼과 컨퍼런스, 세미나들이 우후죽순 열리고 있다. 제주를 블록체인 허브도시로 만들어야 하느니, 블록체인 특구로 만들어야 한다고도 한다. 인터넷 등장 이래 가장 큰 혁명이 ‘블록체인’이라고들 한다. 블록체인 기술이 제주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그걸 끌고갈 동력이다. 도민사회의 공감대가 우선이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추석명절 기획으로 도민사회에 불쑥 던져진 블록체인 논란에 대해 세 차례에 걸쳐 점검해 본다. <편집자 글>

① 불쑥 찾아온 블록체인 바람…블록체인이 뭐야?  
② 도민소통 빠진 하향식 제주 블록체인특구 추진
③ 제주블록체인 허브도시, 블록체인 특구 실익 뭐?

속된 말로 요새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블록체인에 ‘필 꽂혔다’. 블록체인 특구 외길사랑에 빠진 원희룡 지사가 그야말로 나홀로 광폭행보다.

그런데 너무 낯설고, 어렵다.

블록체인은 신기술이다. 블록에 데이터를 담아 체인형태로 연결, 수많은 컴퓨터에 동시에 이를 복제해 저장하는 분산형 데이터 저장기술을 의미한다. 흔히 공공거래 장부라고도 하며, 가상화폐 또는 암호화폐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기반기술이기도 하다.

이게 도민들 귀에 쏙쏙 들어올까. 무식해서가 아니다. 전문영역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제주도가 발표한 자료들을 보면 죄다 낯선 용어들이다. 규제 완화라고 하면 될 걸 ‘규제 샌드박스’라고 한다.

그렇다면 원 지사는 언제, 왜 블록체인에 필이 꽂혔을까.

그의 언행에서 단서를 잡아보면 길어야 3개월 남짓이다. 블록체인에 대한 원 지사의 관심은 지난 6.13지방선거 때 처음 포착된다. 원 지사의 33번째 공약이 ‘블록체인 특구 지정과 제주코인 발행’이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블록체인에서 제주의 미래성장 동력을 찾겠다는 게 공약의 주요 내용이다.

발표자료 중에는 ‘규제 샌드박스’ 도입도 있었다. 과감한 규제 철폐를 통해 자유로운 기업환경을 만들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2000억원 규모의 제주 4차산업혁명 펀드도 조성하고 암호화폐 제주코인을 발행해 제주를 블록체인 특구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당시만 해도 별다른 관심을 얻지 못했다. 사실상 양강 구도로 치러진 선거전에서 정책이슈는 도덕성 공방에 철저히 묻혔다.

그런데 지방선거가 끝난 이후에 상황이 달라졌다. 공약실천위원회에서 논의되기 시작하더니 블렉체인 특구 도시가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원 지사 본인이 ‘블록체인 전도사’ 역할을 자임하며 관련 이슈를 선도해나갔다.

지난달 30일 원 지사는 청와대에서 열린 전국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제주를 블록체인 특구로 지정해달라고 공식 건의했다.

이달 들어서는 ‘블록체인’을 주제로 한 토론회나 강연회에서 직접 마이크를 들고 블록체인의 잠재력에 대해 역설하곤 한다.

관련 업계와의 접촉도 활발하다. 지난달 2~3일 서울에서 열린 글로벌 디지털 자산거래소 후오비 코리아가 개최한 후오비 카니발 행사에 참석했다. 후오비 카니발 코리아는 암호화폐 거래업체다.

원 지사는 지난달 30일 서울 삼성동에서 한국블록체인협회가 주최한 행사에도 참석해 ‘블록체인 허브도시를 향하여’란 주제로 강연도 했다. 항간에 원 지사 혼자 ‘원맨쇼’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블록체인 기술의 장점이 많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지난해 가상화폐(비트코인) 열풍에서 보듯 부작용도 만만찮다.

더 큰 문제는 도민사회와의 소통, 공론화 없이 진행되는 일방통행식 행정이다. 선거기간 내내 도민들과의 불통을 자책하고 용서를 구했던 원 지사지만, 최근 ‘블록체인’ 행보를 보면 민선 6기 때부터 지적되어온 ‘불통행정’이 재연되는 양상이다.

최근 열린 제주도의회 도정질문에서도 이 부분이 집중적으로 거론됐다. 더불어민주당 고용호, 양영식 의원이 저격수로 나섰다. 이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블록체인 기술은 아직 불완전하다. 암호화폐 거래 과정에서 사기, 투기, 돈세탁 등 부작용이 많다. 도민사회 공론화 없이 블록체인 특구 지정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

블록체인 기술이야 이미 수년 전에 개발돼 안정화됐다 치더라도, 실과 바늘처럼 따라붙는 가상화폐(암호화폐)는 인간의 탐욕과 얽혀 합법과 불법 사이에서 줄타기를 할 정도로 위태위태하다. 누군가는 가상화폐 거래를 ‘사이버 카지노’에 비유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가상화폐거래소는 불법이다. 쉽게 말해 이를 제주에 한해 풀어달라는 것이 원 지사가 주장하는 ‘블록체인 특구’인 셈이다.

남들이 하지 않는 ‘블록체인 특구’ 지정을 통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겠다는 원 지사의 신념(?)은 어찌보면 순수하다고 할 수 있다.

원 지사는 틈만 나면 “제주를 특구로 지정하고, 중앙정부와 협의해 제한적으로 가상화폐 발행과 거래를 인정한다면 국내외 우수기업을 유치할 수 있고 지역경제나 제주미래 먹거리에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역설한다.

그렇다고 제주의 미래를 검증되지 않은 ‘블록체인과 가상화폐’에 올인할 수는 없다. 자칫 행정의 모험주의는 모두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 실패하면 그야말로 모든 것을 잃고 만다.

원 지사의 말마따나 ‘블록체인 특구’ 실험이 성공하면 제주의 미래는 장밋빛이 될 수도 있다. 새로운 산업이 성장하면서 젊고 역동적인 일자리가 늘어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실험이 실패하면? 블록체인 기술에서 필수적인 가상화폐의 부작용으로 제주사회가 혼란을 겪는다면. 그 책임은 누구의 몫인가. 공론화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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