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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일화 할아버지가 11월26일 제주4.3재심사건에 대한 2차 공판을 앞두고 변호인측이 참고자료로 제출한 1950년 7월1일 미군 촬영 사진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수형인 18명 중 1948년 군법재판 10명 심문...재심서 진술 입증할 1950년 촬영 사진 공개
 
정부가 70년만에 처음으로 1948년 12월 군법회의를 거쳐 수감생활을 한 4.3생존 수형인들에게 내란죄 공소사실에 대한 공식적인 질문을 던졌다.
 
생존 수형인들의 억울한 옥살이를 뒷받침할 70년 전 현장 사진까지 법정에서 공개되면서 피고인 진술의 신빙성은 한층 더 높아졌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제갈창 부장판사)는 26일 오후 2시 양근방(86) 할아버지 등 4.3생존수형인 18명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재심 청구사건에 대한 두 번째 공판을 열었다.
 
검찰은 이날 피고인 18명 중 1948년 4~11월 사이 형법상 내란실행 혐의를 적용받아 그해 12월 제주도계엄지구 고등군법회의를 거친 10명을 출석시켜 피고인 심문을 진행했다.
 
법정에는 수사검사가 직접 참석해 피고인들에 대한 대략적 공소사실을 언급하고 각 피고인을 대상으로 공소사실을 특정짓기 위해 질문을 이어갔다.
 
생존 수형인들이 자신의 공소사실을 정부로 부터 직접 듣고 법정에서 피고인 신분으로 방어권을 보장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의 피고인 심문도 70년 전에는 전혀 없었다.
 
이날 피고인은 김평국(89.여), 현창용(87), 오희춘(86.여), 부원휴(90), 오계춘(94.여), 조병태(90), 양일화(90), 박내은(88), 임창의(98.여), 한신화(97.여)씨 등 모두 10명이다. 
 
▲ 임재성 변호사가 11월26일 제주4.3재심사건에 대한 2차 공판을 앞두고 법정에 참고자료로 제출한 1950년 7월1일 미군 촬영 사진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 1950년 7월1일 미군 71통신대 A중대 사진병인 핸콕(R. L. Hancock) 일병이 수원역 앞을 촬영한 모습. 4.3수형 생존인인 양일화 할아버지는 당시 본인도 이 곳에 있었다고 진술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이들은 4.3발발후 무장대를 도왔다는 등 각종 죄를 뒤집어쓰고 경찰서에 끌려갔다. 이곳에서 모진 고초를 겪고 자신의 죄명과 범죄사실도 모른채 전국 각지의 형무소로 흩어졌다.
 
양일화 할아버지의 경우 1948년 11월20일 한림 금악에서 제주읍 친척집으로 갔다가 당시 서문다리 인근에서 대한청년단에게 잡혀 느닷없이 빨갱이로 내몰렸다.
 
그해 12월27일 군법회의에서 형법 제77조 내란죄를 적용 받아 징역 5년을 선고 받았다. 이후 인천형무소로 향했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인민군에게 끌려 북으로 향했다.
 
이후 미군에게 다시 붙잡혀 부산수용소를 거쳐 거제포로수용소로 끌려갔다. 석방후인 1953년 6월에는 다시 나라의 부름을 받아 5년간 군생활을 하는 등 기구한 삶을 살았다.
 
양 할아버지는 당시 상황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한국전쟁 직후 양 할아버지가 경기도 수원역 앞에서 군부대에 잡혔던 이야기는 최근 발굴된 사진이 그 사실을 뒷받침했다.
 
변호인측이 법정에 제출한 사진은 1950년 7월1일 미군 71통신대 A중대 사진병인 핸콕(R. L. Hancock) 일병이 수원역 앞을 촬영한 모습이다.
 
양 할아버지는 “당시 넓은 광장에 꿇어앉은 자들은 우리 형무소 사람들”이라며 “이후 차에 올라 끌려갔는데 3일 동안 밥도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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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4.3수형 생존인인 부원휴 할아버지가 11월26일 제주4.3재심사건에 대한 2차 공판을 앞두고 법정에 출석해 준비를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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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4.3수형 생존인인 김평국 할머니가 11월26일 제주4.3재심사건에 대한 2차 공판을 앞두고 법정에 출석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생존 수형인들의 변호를 맡은 임재성 변호사는 해당 사진이 법정에서 밝힌 피고인들의 진술과 너무나 일치한다며 진술의 신빙성을 높일 수 있는 역사적인 자료라고 평가했다.
 
임 변호사는 “일반적으로 15~25세 기억은 마음 속 깊이 남아 있다”며 “이 사진은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 진술의 신빙성을 높이는 참고자료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재판부는 내일(27일) 3차 공판을 열어 재판을 이어간다. 내일은 18명 중 1949년 6~7월 사이 국방경비법을 위반한 혐의로 군사재판에 넘겨진 나머지 8명이 참석한다.
 
검찰은 피고인 각각의 범죄사실을 특정해 70년만에 공소사실을 재구성하게 된다. 이 경우 기존 재판 기록이 존재하지 않아 공소사실을 특정 짓기 위한 공소장 변경 가능성이 높다.
 
형사소송법 제254조(공소제기의 방식과 공소장)에는 ‘공소사실의 기재는 범죄의 시일, 장소와 방법을 명시해 사실을 특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재판부는 검찰이 공소장을 변경하면 12월17일 결심 공판을 열어 검찰측 구형과 피고인들의 최후 진술을 듣기로 했다. 이 경우 재심 선고는 연내에 이뤄 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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