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훈 칼럼] 후보들에게 묻는다.

도법스님을 단장으로 한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이, 한달 여 동안의 짧지 않은 순례를 마치고 돌아갔다.

도법스님은 순례 마지막날 '제주조직위'와 가진 간담회에서, 제주가 '생명평화의 섬'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고 돌아간다고 밝혔다. 스님은 어디에서 그 가능성을 본 것일까?

스님은 말한다.

첫째는, 제주가 자연과 생태환경이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좋은 곳이기 때문이란다. 즉 생명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조건을 제주가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공간적 격리성으로 인해 형성된 공동체적 문화와 토양이 아직 살아 숨쉬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대안사회의 꿈'을 꿀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본 것이다.

셋째는, '젊은 농촌', '건강한 농촌'을 들고 있다. 노인들만 남아 어렵게 농촌을 지키고 있는 지리산 권역과 비교, 아직 제주는 비교적 젊은 층들이, 건강한 농촌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 큰 점수를 주고 있다.

넷째로, 생태적 삶의 시도와 고민이 치열한 곳이라는 점이다. 다른 지역에 비해 친환경농업으로 변화하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으며, 생태자립의 삶을 꿈꾸는 농민들의 노력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농업을 '생명살림의 거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에서, 이를 매우 중요하게 보신 듯하다.

다섯째로, 풍력발전 등 대안에너지의 실험이 구체화되고 있는 지역이라는 점을 드셨으며,

마지막 여섯째로, 4·3의 아픔과 상처를 넘어 승화시키고자 하는 고민과 노력을 하고 있는 지역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여섯 가지 이유 때문에, 스님께서는 제주가 생명평화의 섬이라는 대안적 사회의 가능성을 가장 높게 가지고 있는 지역이라고 후한 점수를 주셨다.

물론 스님의 이런 긍정적 평가가, 수십개에 달하는 골프장 개발 등으로 제주생태계의 허파가 파괴되고 있는 현실, 전국 최고 수준에 육박하는 고소고발, 이혼률 등으로 공동체 사회 운운하기 낯부끄러운 상황이라는 점, 겉은 화려할지 모르지만 전국최고의 부채율로 신음하는 제주농촌사회의 감추어진 아픔을 모르는 피상적 판단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지만, 그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타 지역과 비교해 분명 그러한 강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판단에 기초해 스님께서는 제주의 바람직한 미래상으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기본방향'을 제안하셨다.

첫째는 4·3을 생태와 생명의 문제의식으로 조명하고 승화시킬 것. 둘째, 제주가 주창하는 '자유'와 '평화'의 개념 또한 생명의 문제의식으로 발전 승화시킬 것. 셋째, 지역과 주민이 주체가 되는 발전 모델을 찾되 생태자립의 관점에서 고민할 것. 넷째, 시설 중심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중심의 지속적인 프로그램 운영 등을 제시했다.

도법스님 일행이 3년여에 걸친 탁발순례의 사실상 첫 기착지로 제주를 찾은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한반도 최남단'이라는 상징성을 고려하고, 4·3의 아픔과 치유에 동참하기 위해서, 제주가 '평화의 섬'을 미래비전으로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점에서 도법스님이 던지고 간 화두는 우리에게 매우 소중하게 받아들여진다.

그동안 제주가 평화의 섬을 외치면서도, 밀레니엄관 같은 국제주의적 평화사업의 상징시설이나, 인권주의적 접근인 4·3평화공원 등의 시설 위주의 사업 이상을 고민해 오지 못해왔기 때문이다.

"평화의 섬 제주에, 골프장 40여 개가 왠 말이냐"는 수경스님의 일갈은 이런 점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순례단의 방문을 계기로, 이제 우리는 평화의 개념을 '생태주의적 방향의 평화'로 확장시켜야 함을 자각해야 한다.

이에 답하여 고호성 교수는 말한다. "인간과 자연, 생명과 환경의 생태학적 조화라는 관점에서 제주발전의 방향을 재정립하고, 제주가 생태학적 평화의 세계적 모델로 우뚝서야 한다"고.

공교롭게도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이 제주를 찾은 시기는 총선이 끝나고 지방선거 재보궐선거 바람이 제주전역을 감싸고 있던 시기여서, 그들이 던진 화두는 제주사회에 그다지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이 뿌린 생명평화의 불씨는 조만간 제주전역에 잔잔하게 피어오르리라고 확신한다.

며칠 후면 도지사 및 제주시장을 뽑는 선거가 실시된다. 너나 없이 자신이 적임자임을 자부하고 있으나, 지속가능한 제주발전을 위한 정책 제시는 부족하고, 거론되는 후보들이 정작 평화의 섬 제주를 이끌어야 할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청산되어야 할 토호세력들의 부산한 줄서기만이 눈을 어지럽히고 있으며, 당선을 위해서는 누구라도 손잡는다는 구태가 눈을 찌푸리게 한다. '새 술은 새부대'라는 슬로건이 무색할 지경이다.

누가 당선되든 그는 제주의 지도자로서, 생명평화순례단이 던지고 간 제주의 미래상을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할 과제가 주어져 있다. 이런 점에서 도지사나 시장후보들은 스스로 이 화두에 자신있게 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물어 보고 싶다.

"당신은 '생명평화 제주호'의 선장이 될 자신이 있는가?"

더불어 누가 이런 과제를 수행할 적격자인지 선택해야할 막중한 과제 또한 유권자인 도민들에게도 주어져 있다. 자신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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