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돈 칼럼] 정부는 반전·평화의 의지를 천명해야 한다

독실한 신앙인으로 목사가 되고 싶다던 그. 대학원 학비를 벌기 위해 월 200만원이 안되는 박봉으로 이역만리 이라크에서 땀 흘려 일하던 35살의 청년 김선일이 고향으로 돌아왔다. 떠날 때의 건장한 모습이 아니었다. 지구를 반 바퀴나 돌아 관 속에 누운 싸늘한 주검이 되어 실려 왔다. 가슴이 무너진다. 분통이 터진다.

누가 그를 죽였나. 아무 죄 없는 그를, 죄가 있다면 미국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약소국’에 태어났다는 것 말고는 아무 죄 없는 그를 누가 죽음으로 몰고 갔나.

저항세력에게 납치된 그는 미국은 싫다고, 부시는 테러리스트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이라크 사람들을 좋아하고 친구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거짓이 아니었다. 실제 그는 같이 일하는 이라크 처녀와 결혼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끝내 죽임을 당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그는 대통령에게 나는 살고 싶다고,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고, 제발 이라크에 군인들을 보내지 말라고 애타게 절규했다.

파병 철회를 주장하며 목숨을 놓고 흥정을 벌이는 강경 테러리스트들에게 정부는 '그래 해 볼 테면 해 보라'는 똥배짱으로 파병 방침을 재확인시켰다. 김선일이 그들의 친 혈육이었더라도 그의 피 끓는 절규와 총칼을 든 납치범들의 위협을 그리 가볍게 넘길 수 있었을까. 파병 계획을 재고해 보겠다고 여운을 남기며, 그들을 진정시키고 시간을 벌 수는 없었을까.

비무장 민간인을 납치, 살해한 저항세력의 행동은 마땅히 지탄 받을 반인륜적 범죄이지만 명분도 도덕성도 논리도 없는 추악한 침략 전쟁을 도발한 미국도, 이런 미국에 동조하여 국익을 입에 올리며 미· 영 다음 세 번째로 많은 군대를 그 전장에 보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한 생명이 경각에 이른 마지막 순간까지도 어떠한 일이 있어도 파병 방침엔 변함이 없다고 입에 발린 소리만 되풀이하는 대한민국 정부도 모두 반인류적, 반인륜적 범죄자라고 나는 감히 말하련다.

납치에서 살해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 대응하는 우리 정부의 모습에서 국가가 과연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려는 의지가 있었는지 조차도 의심스럽다.

김선일의 죽음을 놓고 일부 보수 세력들과 보수 언론들은 무분별한 테러 응징론을 퍼뜨리고 있다. 호기라도 만난 듯 그의 피살을 파병 불가피론의 강력한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미국은 저항세력의 은신처로 추정되는 팔루자 지역에 연일 맹공을 퍼붓고 있다. 저항세력은 터키인 세 명을 또 납치해 인질로 삼고 있다.

보복은 또 다른 보복을 불러올 뿐이다. 보복의 악순환을 끊는 길은 추가파병을 철회하고, 이미 가 있는 군대도 조속히 철군하는 것밖엔 달리 있을 수 없다. 점령군 미국도 이라크에 주권을 넘기고 무조건 물러나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파병을 철회하고, 철군하는 것이 테러에 굴복하는 행위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애초에 아무런 정당성도 가질 수 없는 파병이었기 때문이다. 파병 철회와 철군에는 어떠한 조건도 붙일 수 없다. ‘평화·재건’이라는 구호가 이라크 저항세력들에게 얼마나 큰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고 보는가. 그들에게 우리는 미국과 한 통속일 뿐이다.

 까닭 없이 자기의 땅을 유린당한 사람들이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사탕발림으로 '우린 너희들을 도우려 왔으니 미워하지 말라'고 유혹한들 넘어갈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조선을 침략한 왜군들이 반도를 노략질하고, 제 잇속을 다 챙긴 다음, 웃으면서 우린 조선을 ‘평화· 재건’하기 위해서 왔다고 한다면 어찌 했을 것 같은가.

이제 부질없는 국익 논쟁에 종지부를 찍자. 도대체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하여 얻을 수 있는 국익이란 게 뭐란 말인가. 미국의 국익을 한국의 국익으로 착각하지 말라. 왜 그들과 아무 이해관계도 없는 우리가 지금까지의 평화스런 선린 우호관계를 금 가게 하며, 적대적인 분노의 표적이 되어야 하는가. 이 전쟁에서 우리가 얻을 것은 침략 전쟁의 일원이었다는 국가의 불명예와 만신창이 자존심뿐이다.

한 젊은이의 푸른 꿈을 송두리째 짓밟은 것은 떳떳치 못한 자기 잇속을 노려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과 그 미국의 압력에 굴복한 대한민국 정부이다. 그 땅에서 고통 받고 죽어갈 제2, 제3의 김선일이 생기게 하지 않으려면 이제라도 파병 계획을 없던 일로 돌리고, 지금까지 우리가 공들여 쌓아온 반전·평화의 의지를 세계만방에 천명해야 할 것이다. 삼가 머리 숙여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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