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로 다가온 제주의 꽃들(36)

꽃들 중에는 '애기' 자가 붙은 꽃들이 많습니다.

'애기'자가 붙은 꽃들은 우리의 '애기'들이 작고 예쁘듯이 아가들을 닮아서 예쁘고, 작고, 앙증스럽습니다.

제주에서 만난 아가를 닮은 꽃은 '애기나리', '애기달맞이', '애기풀꽃', '애기도라지'입니다.

그리고 덤으로 소개해 드리는 꽃 하나는 강원도 횡성에서 만난 '애기똥풀'입니다.

▲ 애기똥풀.
제주도에도 '애기똥풀'이 있는 지는 모르겠는데 강원도 지역에 지천인 애기똥풀을 제주에서는 만나 보질 못했습니다.

우리의 아기들이 왜 예쁜가요?

아가들이 한번 웃어주기만 해도 왜 그렇게 우리들은 행복한 것일까요?

그 웃음 한 번 보기 위해 우리들은 아이들보다 더 많은 재롱을 핍니다.

그리고 아이들 앞에서 재롱(?)을 피는 그 순간만큼은 우리들에게서 세상의 온갖 근심과 걱정이 사라집니다.

▲ 애기나리.

애기나리는 5월 초 한라산 영실기암으로 오르는 길에 만났습니다.

드문드문 피어있는 애기나리는 그 작은 꽃을 달고도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나리꽃을 중국에서는 '백합'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흔히 백합이라고 부르는 꽃도 '나리꽃'이죠.

그러니 애기나리의 꽃말은 백합의 꽃말을 따라 '순결'이라고 하면 될 것 같고, 거기에 '애기'자가 들어가니 '참 순결'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화사하지 않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애기나리지만 그 수수함이 순수함으로 다가오고, 저렇게 치장하지 않은 아름다움의 여운을 길게 남깁니다.

▲ 애기달맞이.

애기달맞이는 길섶, 해안가 여기저기에 흐드러지게 피어있습니다.

달맞이꽃은 해가 지면서부터 그 다음 날 해가 뜨기 전까지 활짝 피어있는 꽃입니다.

애기달맞이라는 이름이 붙은 내력에 대해서 저는 이렇게 우리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큰 달맞이꽃이 있었어. 달맞이꽃은 알다시피 밤에 달을 맞이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밤에만 피는 꽃이거든. 밤은 무섭잖아. 그런데 무서우니 혼자서 피어있기 보다는 짝을 지어 무리지어 피어있었고, 두런두런 달을 보면서 별을 보면서 사랑을 나누다가 달맞이꽃이 아기를 낳았지 뭐야. 그게 애기달맞이꽃이라나?'

제주의 들녘에 피어있는 꽃들을 보면 이렇게 재미있는 생각에서부터 그동안 삶을 살면서 받았던 상처들과 아픔들이 말끔히 씻어지는 경험을 합니다.

그래서 더욱 더 꽃에게로 다가갈 수밖에 없습니다.

▲ 애기도라지.

애기도라지꽃은 도라지꽃과 닮았는데 그 꽃이 아가들의 새끼손톱 정도 되는 크기입니다.

꽤나 작은 꽃이죠. 그러면 애기도라지도 달맞이꽃처럼 그렇게 태어났을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한적한 숲길에 자라는 것으로 보아 도라지밭(엄마, 아빠가 있는 곳)과는 먼 곳에 있으니 그런 개연성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파리와 뿌리도 다르고 단지 꽃과 열매만 비슷할 뿐입니다.

애기똥풀은 줄기를 잘라보면 노란진액이 나오는데 마치 아가들의 똥 같아서 그런 이름을 얻었습니다.

아가들이 노란 황금똥을 싸면 건강한 증거입니다.

그런데 애기똥풀의 줄기에는 꼭 그런 황금똥과 같은 진액이 나옵니다.

그러니 참 건강한 꽃인가 봅니다.

▲ 애기풀꽃.

애기풀꽃은 고사리를 꺾는 시기의 말미쯤에 피는 꽃입니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기 전에 오름과 억새풀 사이에서 아주 잠시 피는 작은 꽃이라서 많은 이들이 그냥 스쳐지나갈 수밖에 없는 꽃이기도 합니다.

작은데다가 흔하지 않아 보아주는 이가 많지 않지만 그래서 자신을 지켜갈 수 있는 것이겠지요.

'애기'자가 들어간 꽃들.

그들이 주는 아름다움 외에도 저는 거기에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화두를 얻습니다.

물신주의사회에서 작은 것의 소중함을 깨달아가는 일, 그리고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보려고 하는 일은 어쩌면 부질없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아가들이 품고 있는 꿈을 보세요.

부질없어 보이지만 얼마나 소중한 꿈이고, 그 꿈이 이루어졌을 때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이 되어질 지 상상해 보는 일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한 일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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