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폭력 피해자 지원 시민단체 ‘지금여기에’...22일 기억 공간 ‘수상한 집’ 개관

22일 문을 여는 간첩조작을 비롯한 국가 폭력 기억 공간 수상한 집. 제공=지금여기에. ⓒ제주의소리
22일 문을 여는 간첩조작을 비롯한 국가 폭력 기억 공간 수상한 집. 제공=지금여기에. ⓒ제주의소리

군사 독재 정권의 간첩 조작 사건을 잊지 않고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기억 공간’이 전국에서 처음으로 제주에 들어선다. 실제 간첩 조작 피해자의 집을 개조해 만든 ‘수상한 집’이다.

시민단체 ‘지금여기에’는 22일 오후 5시 제주시 도련3길 14-4에서 수상한 집 개관식을 연다. 수상한 집의 다른 이름은 ‘제주4.3 이후 조작 간첩으로 수상한 세월을 보낸 내 이웃의 집’이다. 

원래 이 장소는 제주도민 강광보 씨가 살던 집이다. 강 씨는 4.3 당시 일본으로 피신한 아버지를 만나러 1960년대 초 일본으로 밀항했다. 제주 여자를 만나 아이도 낳았지만 1979년 당국에 적발돼 제주로 강제 추방됐다. 그런데 도착한 지 몇 달 지나지 않아 난데없이 경찰에 의해 붙잡혀 모진 고문을 받았다. 간첩이라는 이유에서다.

“들어와서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제주경찰서에서 날 붙잡아 갔어요. 그게 아마 79년도 8월인가 됐을 거예요. 숙부가 조총련이니 간첩지시를 받지 않았느냐는 거예요. 북한에 가서 김일성도 만났다는 걸 인정하라고 고문을 엄청 당했어요. 정확히 65일을 갇혀서 맞았네요.”

지난 2017년 변상철 지금여기에 사무국장과 가진 인터뷰에서 강 씨는 당시 순간을 이렇게 기억했다.

고통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 사망 시점에서 무혐의로 풀려났지만, 7년이 지난 1986년 다시 붙잡혀 같은 내용으로 고초를 당했다. 결국 가족까지 위협하는 수사관들의 협박과 고문에 허위 자백을 했고, 간첩 혐의로 징역 7년에 자격정지 7년형을 선고 받았다. 그리고 2017년 재심 청구로 ‘무죄 판결’을 받아내면서 31년 만에 억울한 누명을 벗었다.

2017년 간첩 혐의를 벗은 강광보 씨(맨 왼쪽). 제공=지금여기에. ⓒ제주의소리
2017년 간첩 혐의를 벗은 강광보 씨(맨 왼쪽). 제공=지금여기에. ⓒ제주의소리

수상한 집 사업을 추진한 지금여기에는 ‘국가폭력으로 희생당한 피해자와 가족, 혹은 인권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모여 구성한 모임’이다. 피해자들이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사회에서 시민으로써 당당히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을 전개하는 목표로 지난 2015년 창립했다.

수상한 집은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당한 터무니 없는 일을 기록하고 기억하고 위로할 수 있는 공간을 표방한다. 수상한 집은 강 씨의 자택 위로 추가 시설을 더하는 공법으로 만들었다. 최초 계획이 무산되는 어려움을 겪고, 수억 원에 달하는 비용을 들여 비로소 완성됐다. 강 씨가 국가로부터 받은 배상금, 시민 215명의 후원금 등을 건축비로 썼다.

강광보 씨 자택 위에 지어지는 수상한 집. 제공=지금여기에. ⓒ제주의소리
강광보 씨 자택 위에 지어지는 수상한 집. 제공=지금여기에. ⓒ제주의소리
강광보 씨가 수상한 집 건설 현장에 서 있다. 제공=지금여기에. ⓒ제주의소리
강광보 씨가 수상한 집 건설 현장에 서 있다. 제공=지금여기에. ⓒ제주의소리

이곳은 강 씨의 지난 아픈 역사를 소개하고, 제주에 있는 다른 간첩 조작 피해자들의 사례, 국가폭력의 위험성과 나아가야 할 방향 등을 각종 자료로 보여줄 예정이다. 살아있는 인권 교육의 장으로 탈바꿈하는 셈이다. 더불어 편하게 쉴 수 있는 카페와 게스트하우스로도 운영한다. 

변상철 사무국장은 “제주 수상한 집은 우리에게 출발이다. 전국에 퍼져 있는 간첩 조작 피해자는 수백 명에 달한다. 제주를 시작으로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 등 각 지역마다 수상한 집을 만들어 국가폭력을 기억할 것”이라고 밝혔다.

제주 수상한 집 개막식은 22일 오후 5시에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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