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영화제 후기- 어렵게 전주를 갔다...그리고...

▲ '영화의 거리' 풍경 ⓒ 이영윤
국제영화제를 소화하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필사적으로 ‘예매’를 향한 힘겨운 사투가 기다린다. 사실 둘 중 하나다. 보고 싶은 영화를 보거나 못 보거나.

새벽같이 일어나 다음날 새벽 6시까지 이어지는 ‘불면의 밤’의 강행군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당신은 보고 싶은 영화를 볼 수 없다.

 내 에너지의 원천은 ‘잠’과 ‘밥’이다

그렇다고 마냥 걱정할 건 아니다. 영화는 즐기기 나름이다. 굳이 자신이 ‘찜’했던 영화를 못보더라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대박’이 나오는 경우는 흔하다. 영화는 그야말로 개인적인 사유를 통해 빛을 발하기 때문에..

나는 후자다. 내 에너지의 원천은 ‘잠’과 ‘밥’이다.

‘잠’을 잘자야 영화도 제대로 사유되고, 내 안에 일용할 양식으로 저장할 수 있다. 강행군을 펼치며 원하는 영화를 챙겨봤든 관객석에서 피로를 못 이겨 자버리면 말짱 꽝이다.

남들이 버린 것들을 주워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을 즐긴다. 남들이 찍지 않는 영화를 내 것으로 만드는 기쁨은 쏠쏠하다. 영화와 맛있는 밥과, 여유에 젖은 거리풍경과 사람들의 바쁜 발걸음과 열기들.. 국제영화제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이자, 힘이다.

▲ 영화 상영시간을 알리는 자원활동가 ⓒ 이영윤
전주국제영화제를 다녀왔다. 정확히 말하면 4월27일 금요일 저녁 8시경에 도착해 일요일 오후 4시경까지 전주에 머물렀다.

부산과 부천은 몇 번씩 다녀간 여정이지만 전주는 처음이다. 전통문화의 도시라 불리는 전주. 디지털 영화의 흐름을 엿볼 수 있는 전주국제영화제. 전주는 전통과 첨단이 어우러진, 나에게는 활홀경의 도시였고, 공간이었다.

전주, 부산과 부천영화제와는 달라....

전주에서 예매와 영화관람은 ‘영화의 거리’에서 거의 해결할 수 있다. 영화의 거리를 벗어난 상영관이라 해봐야 버스로 10분 거리다. 영화 관람면에서는 나름 좋은 여건을 지녔다.

‘영화의 거리’는 제주 칠성로를 닮았다. 칠성로를 그대로 옮겨 놓았다고 봐도 된다. 칠성로를 영화의 거리로 만들면 어떨까?.. 흠..오히려 칠성로가 더 낫지 않을까? 란 생각이 잠시 스친다.

‘영화의 거리’에서는 각종 브랜드 멀티플렉스 극장과 예술영화전용관이 공존한다. 영화를 보며 쇼핑하고 밥 먹고, 숙박도 한번에 가능하다. 물론 국제영화제 기간은 영화의 거리에 있는 숙박업체는 금방 동이 난다.

택시 안에서는 라디오 뉴스앵커의 흐뭇한 음성이 들린다. “전주국제영화제에 찾은 국내외 방문객으로 인해 전주 시내 거의 모든 숙박업체가 만원을 기록했습니다...”

▲ 거리축제 사진 ⓒ 이영윤
다행히 처음 간 전주는 필사적인 '예매전쟁‘을 벌이지 않아도 좋은 곳이었다. 개인적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해서는 별로 좋은 감정이 없다.

‘부산국제영화제’는 거의 모든 작품이 순식간에 매진이라, 영화를 즐기기 보다는 관객들 사이에 경쟁심리가 도처에 깔렸다. ‘이 작품을 보지 못하면 죽는다’ 식의.. 나 같은 ‘경쟁 불감증’의 사람은 어쩔 도리가 없다. 남들이 외면한 작품을 봐야 한다. 영화를 제대로 즐기기가 힘들다.

전주는 예매에 있어 조금 예민한 감각만 지니면 웬만한 작품들은 볼 수가 있었다. 전주에서 체류하는 3일동안 여섯 작품을 봤다.

6편 모두 나에게는 소중한 경험이고 자산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틀어지는 프로그램이 ‘대중적인 성격’을 띈다면, 전주는 아시아 디지털 영화의 가능성과 국내 젊은 영화 인력을 적극적으로 발굴한다는 점에서 기존에 볼 수 없는 독특한 영화를 많이 만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국제영화제에서 누구보다 많은 작품을 봤다는 건 결코 자랑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국제영화제를 경험한 횟수가 늘면 늘수록 강해지는 것이다. 한 두 작품을 봤든 영화를 제대로 사유하고, 느꼈다면 어느 누구보다 큰 수확을 거뒀다 확신한다.

나 또한 전주에서 큰 성과를 얻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밥’과 ‘잠’이 제대로 충전됐기 때문이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짜릿함을 느낄만한 영화를 만났기 때문이다.

첨단의 도시와 전통의 문화가 교묘히 어울리는 전주의 고즈넉함을 발견한 것은 덤이다.

내 안에 저장된 수확물을 꺼내 놓을 시간이다. 전주에서 만난 영화를 소개할 생각이다. 뒤이어 이어질 글들은 영화에 대한 개인적인 사유에 의한 결과물이다.

아마 제주에서는 쉽게 만나지도, 평생 못만날 수도 있는 작품들이다. 그러기에 소개하는 일이 쉽지 않다. 영화에 대한 느낌이 나만의 것으로 갇혀지긴 싫으니까. 많은 분들이 글을 읽고 다양한 영화에 대한 매력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길 바란다.

좀더 다양한 영화를 제주에서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하며...

▲ '영화의 거리' 풍경 ⓒ 이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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