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관의 덕목과 ‘돈먹는 하마’
목민관의 덕목과 ‘돈먹는 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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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시선] 잇단 혈세 낭비, 책임은 누가 지나
사진 설명. 사진 속 일러스트 출처는 오마이뉴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야심차게 출발했다가 막대한 혈세만 날리고 사업을 접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호접란 농장과 평택항 제주종합물류센터가 대표적이다. '밑빠진 독'을 표현한 사진 속 일러스트 출처는 오마이뉴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꽃의 생김새가 나비와 닮다는 호접란(胡蝶蘭)은, 일부 제주도민에겐 화사함 보다는 참담함을 안겨준 존재로 기억된다. 처참한 성적표를 내고 접은 호접란 수출 사업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어림잡아 160억원이 넘는 혈세가 증발했다. 

우근민 도정 때였다. 시작은 담대했다. 도내 화훼농가들의 소득을 높여주겠다는 명분은 당시만 해도 그럴 듯 했다. 뾰족한 활로가 없던 상황이었다. 

2000년, 16개 농가가 참여하는 수출단지가 제주에 조성됐다. 이어 2003년까지 주요 수출처인 미국의 LA 외곽에 4만2776㎡의 농장을 사들였다. 제주 모종을 미국 농장에서 키워 현지에 판매할 요량이었다. 일련의 과정에 농가 부담 9억원을 빼고도 110억원(국비 16억원, 도비 92억원, 시·군비 2억원)이 투입됐다. 

결과적으로 손을 대지 말아야 할 사업이었다. 시장의 흐름을 놓쳤고, 앞날을 너무 낙관했다. 초반이야 그렇다치고 갈수록 적자가 불어나더니 급기야 ‘돈먹는 하마’로 전락했다. 전문성의 문제인가 싶어 운영 업체를 바꿔보기도 했지만, 반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감사원 감사에서 공식적으로 드러난 재정 손실 규모만 2009년까지 74억원에 달했다. 

감사원은 물론 제주도 감사위원회, 제주도의회까지 농장 매각을 요구했으나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버티다가 2011년 5월 당시 행정자치부로부터 경영개선 명령(2012년 12월까지 매각)을 받기에 이르렀다. 사실상 손을 떼라는 요구였다. 더구나 2005년말부터는 모종도 제주산이 아니라 대만과 태국산을 쓰면서 이미 사업의 취지가 변질된 상태였다.  

매각 또한 여의치 않았다. 4차례 국내 매각 시도가 무산된 끝에 2015년말 대만계 업체와 200만달러(한화 23억3360만원)에 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처음 매각을 추진할 때만 해도 40억원대로 예상했으나 4년만에 거의 반토막이 났다. 

꿈에 부풀었던 농가의 허탈감은 말해 무엇하랴. 막대한 혈세가 날아갔는데도 제대로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감사원이 공무원 1명에 대한 징계 요구를 한 게 사실상 전부였다. 

이후 호접란은 공공분야에서 실패한 사업의 대명사로 각인됐다. 미래를 기약한 제주도정의 투자 프로젝트 가운데 대표적인 흑역사로 남았다. 

전철(前轍)은 그 자체가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라고 암시하는 경구일텐데도 꼭 따라하는 이들이 있다. 구성원으로 치면 극히 일부겠지만, 공직사회가 여기에 속한다. 과거의 잘못을 반면교사로 삼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번에는 평택항 제주종합물류센터다. 제주도가 3월 임시회에 맞춰 물류센터를 매각하는 내용의 공유재산관리계획안을 최근 도의회에 제출했다. 호접란 농장과 마찬가지로 물류센터도 감사원과 도의회가 “차라리 매각하라”는 입장이어서 곧 남의 손에 넘어갈 판이다. 문제는 물류센터 역시 사업의 취지는 온데간데 없고 수십억원의 혈세를 날리게 됐다는 점이다. 

2013년 건립된 물류센터에는 국비와 지방비 절반씩 총 48억3000만원이 들어갔다. 또 경기도에 부지 임차료로 매년 3억원을 지급해왔다. 이에반해 위탁운영업체로부터 받은 임대료는 연 3억원씩 3년동안 총 9억원에 불과했다. 나머지 기간은 희망업체가 없어 운영이 중단됐다. 중간에 제주도는 유지보수비로 1억원을 추가 지출하기도 했다. 

지난해 감사원이 매각 검토를 주문했기에 망정이지 그 전에는 국비를 지원한 농림축산식품부가 반대하는 바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매각 예상 금액은 13억원. 제주산 농수축산물의 물류비 절감을 위한 수도권 거점을 확보한다는 취지로 출발했으나, 엉뚱하게도 물류 대기업의 수도권 택배 센터로 한번 쓰이곤 낮잠을 자고 있다. 

혈세를 허투루 쓰고도 누구하나 책임지지 않은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다. 치적을 중시하는 민선시대 들어 이러한 현상은 두드러진다. 

지금의 지자체장에 빗댈 수 있는 목민관의 덕목으로 절용(節用)을 강조한 다산 정약용은 공적 재화를 개인 재산처럼 절약한다면 그는 곧 어진 목민관(視公如私 斯賢牧也)이라고 했다. 개인이 자신의 재산을 아껴 쓰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으나, 공공의 재화를 절약하는 이는 드물다고도 했다. 

200여년 전에도 절용이 부각된 걸 보면, 공적 재화를 ‘눈 먼 돈’ 쯤으로 여기는 풍토는 오래된 누습(陋習)이다. 모든 공직자들이 혈세가 제 호주머니에서 나왔다고 여기면 돈만 먹는 애물단지는 더이상 나오지 않을지 모른다. <논설주간 /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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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근 2020-03-13 11:05:52
이것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얼마나 많은 시설들이 지어놓고는 별로 쓰이지 않고 운영비로 도민의 혈세를 까먹고 있는지 전수조사하고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
220.***.***.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