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모든 인생이 엉망진창이 됐습니다”

11년 전 제주 보육교사 살인사건으로 구속기소 돼 무죄를 선고 받은 피고인이 항소심에서 재판부를 향해 연신 억울함을 호소했다.

검찰은 한겨울 20대 젊은 나이에 배수로에 버려져 쓸쓸히 생을 마감한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야 한다며 사실상의 법정최고형인 무기징역을 재판부에 거듭 요청했다.  

광주고등법원 제주제1형사부(왕정옥 부장판사)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강간등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씨를 상대로 10일 결심공판을 진행했다.

정장 차림에 법정에 들어선 박씨는 공교롭게도 자신을 기소한 이환우 검사와 같은 방청석 의자에 앉아 순서를 기다렸다. 5인석 의자 양 끝에 위치한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도 없었다.

재판이 시작되자 재판부는 증거조사를 마무리하고 곧바로 양측의 최후 의견을 들었다. 검찰과 변호인 모두 추가 증거를 제출하지 않아 재판은 신속하게 진행됐다.

검찰은 공소유지 과정에서 핵심 간접증거로 제시한 미세섬유의 재감정 결과를 언급하며 박씨와 피해자인 이모(당시 27세)의 접촉 가능성을 부각시켰다. 

미세섬유 증거물은 피해자가 2009년 2월1일 새벽 택시기사였던 박씨의 차량에 탑승했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다. 당시 피해자의 시신에서는 박씨의 DNA가 나오지 않았다. 

검찰은 항소심 과정에서 11년 피해자가 입고 있었던 무스탕의 동물털을 추가로 확보해 박씨의 택시 트렁크에서 나온 동물섬유와의 유사성을 재차 분석했다.

이 검사는 “추가 분석을 통해 해당 동물털이 어떤 구조이고 유형을 보이고 있는지 상세하게 설명했다”며 “이는 범행 당일 두 사람의 접촉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어 “미세섬유 분석이 DNA와 같이 동일성이 인정되지는 않지만 여러 정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 달라”며 재판부를 설득했다.

변호인측은 미세섬유를 포함해 검찰이 제출한 폐쇄회로(CC)TV 영상물 분석 기록도 검찰의 추정에 불과하다며 증명력이 떨어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변호인은 “미세섬유 분석 결과는 동일성 자체를 논할 수 없고 증거의 가치도 떨어진다”며 “택시 속 동물털을 제3자의 무스탕과 분석해도 아마 같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가 최후 진술 기회를 부여하자, 박씨는 자리에서 일어나 미리 준비한 종이 한 장을 꺼내보였다. 이어 한숨을 쉬면서 말문이 막힌 듯 한동안 글을 읽어 내려가지 못했다.

박씨는 “지난 2년간 재판을 겪으면서 제가 살아온 인생이 엉망진창이 됐다. 너무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며 “기억이 온전하지 않아 의견을 다 피력하지 못해 답답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이 해결돼서 피해자 가족이나 제 마음 모두 상처가 아물길 바란다”며 “재판과정에서 나온 자료를 바탕으로 공정한 판단을 내려달라”고 호소했다.

재판부는 7월8일 오전 10시 선고 공판을 열어 유·무죄를 판단할 예정이다. 검찰은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자 사실오인을 이유로 항소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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