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만 신병 배출로 나라 구해낸 ‘살아있는 6.25박물관’ 제주 모슬포 땅
50만 신병 배출로 나라 구해낸 ‘살아있는 6.25박물관’ 제주 모슬포 땅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70주년, 한국전쟁과 제주] (2) 제1훈련소부터 포로수용소까지...대한민국 지킨 6.25 ‘후방 전략기지’
한반도가 한국전쟁 폐허로부터 다시 일어선지 70년이 흘렀습니다. 물론 제주는 한반도 최남단이라는 지리적 환경으로 6.25의 직접 피해지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 같은 환경은 6.25 전란 기간 동안 한국전쟁과 연관된 시설·기관들은 물론, 육지부의 피난민과 전쟁 포로들까지 대거 제주로 집중하게 하는 요인이 됐습니다. 4.3이라는 현대사의 비극을 치르고 있던 당시의 제주사회는 한국전쟁으로 유사 이래 정치·군사·외교뿐만 아니라 가장 큰 지역사회 격변까지 경험하게 됩니다. [제주의소리]가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전쟁기 육지에서 제주로 피난이 이뤄지는 과정과, 정부와 군에서 제주도를 적극 활용하면서 남긴 ‘사람과 장소’들을 재조명해보는 [70주년, 한국전쟁과 제주] 기획을 연재합니다. 전쟁의 실상과 전후의 변화상을 살펴보는 이번 기획을 통해 한국전쟁기의 제주역사는 물론 제주인들의 삶을 되돌아봄으로서 ‘항구적 평화’의 중요성을 미래세대에게 전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글]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옛 육군 제1훈련소 지휘소의 과거 모습(위쪽)과 현재 모습. 옛 사진 입구 상단에 '필승' 문구와 함께 왼쪽에 세로로 '실전적 교육 훈련'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현재 입구 왼쪽에는 '육군제일훈련소', 오른쪽에는 '제주도지구위수사령부'라고 적혀있다. 6.25 당시 제1훈련소는 50만명이 넘는 신병을 양성했다. 현재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해병대 제9여단 91대대 안에 위치해있다. /사진 제공=김웅철 대정현역사문예포럼 이사장. ⓒ제주의소리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옛 육군 제1훈련소 지휘소의 과거 모습(위쪽)과 현재 모습. 옛 사진 입구 상단에 '필승' 문구와 함께 왼쪽에 세로로 '실전적 교육 훈련'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현재 입구 왼쪽에는 '육군제일훈련소', 오른쪽에는 '제주도지구위수사령부'라고 적혀있다. 6.25 당시 제1훈련소는 50만명이 넘는 신병을 양성했다. 현재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해병대 제9여단 91대대 안에 위치해있다. /사진 제공=김웅철 대정현역사문예포럼 이사장. ⓒ제주의소리

유월이다. 이 땅을 통째로 피로 물들이고, 동포끼리 총구를 겨누고 남북으로 나뉘어 삶의 뿌리가 송두리째 뽑혔던 70년 전 6.25전쟁은 한반도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제주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직접적인 전투가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제주, 특히 서귀포시 대정읍(모슬포) 일대는 당시 전시상황에서의 대한민국 핵심 군사적 요충지였다.

이 곳의 지정학적 중요성은 일제강점기 당시 모슬포 일대에 만들어진 알뜨르비행장이 잘 말해준다. 2차대전 말기 일본은 당시 넓게 펼쳐진 대정읍의 벌판에 비행기 격납고와 활주로, 동굴진지 등을 조성했다. 

이 곳은 6.25전쟁 때도 군사적 요충지였다.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1951년 1월 22일 대구에서 창설된 제25연대가 최후방인 대정 모슬포로 이동하면서 육군 제1훈련소가 설치됐다. 1956년 1월 1일 해체될 때까지 이곳은 전방에 배치할 신병을 교육하는 게 주 임무였다.

이 시기 배출한 신병 수는 50만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서울 재탈환을 비롯해 반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1953년에는 강병(强兵)을 육성하는 곳이라는 뜻으로 ‘강병대(强兵臺)’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반도 곳곳에서 전투가 진행되는 동안 군사력을 보충하는 후방 전략기지의 핵심이었던 셈이다.

현 해병대 제9여단 91대대 안에는 당시 육군 제1훈련소 지휘소 건물이 남아있다. 2008년 등록문화재 제409호로 지정된 이 건물은 중앙에 출입구가 있는 1층짜리 좌우 대칭형 건물로 외관은 제주 현무암으로 구성돼있다. 

이 곳을 중심으로 대정읍 곳곳에는 당시 시대상을 느낄 수 있는 흔적들이 남아있다. 일주도로에서 상모대서로로 들어가는 지점에서 도로 양 쪽에 우뚝 선 기둥을 만날 수 있는데, 이게 1951년 당시 지어진 육군 제1훈련소 정문이다.

옛 육군 제1훈련소 정문으로 쓰이던 기둥은 현재 일주도로에서 상모대서로로 들어가는 지점에 도로 양 쪽에 그대로 보존돼 있다. 위쪽 사진은 제1훈련소가 운영되던 당시 정문 앞에 서 있는 장병들. 왼쪽 기둥에는 '강병대'라는 훈련소 명칭이, 오른쪽 기둥에는 '교도연대'라는 이름이 적혀있다. /사진 제공=김웅철 대정현역사문예포럼 이사장 ⓒ제주의소리
옛 육군 제1훈련소 정문으로 쓰이던 기둥은 현재 일주도로에서 상모대서로로 들어가는 지점에 도로 양 쪽에 그대로 보존돼 있다. 위쪽 사진은 제1훈련소가 운영되던 당시 정문 앞에 서 있는 장병들. 왼쪽 기둥에는 '강병대'라는 훈련소 명칭이, 오른쪽 기둥에는 '교도연대'라는 이름이 적혀있다. /사진 제공=김웅철 대정현역사문예포럼 이사장 ⓒ제주의소리
강병대교회는 육군 제1훈련소 장병들의 신앙생활을 위해 대정읍에 1952년 9월 지어졌다. 지금도 당시 모습 그대로 잘 보존돼있다. /사진 제공=김웅철 대정현역사문예포럼 이사장 ⓒ제주의소리
강병대교회는 육군 제1훈련소 장병들의 신앙생활을 위해 대정읍에 1952년 9월 지어졌다. 지금도 당시 모습 그대로 잘 보존돼있다. /사진 제공=김웅철 대정현역사문예포럼 이사장 ⓒ제주의소리

이 곳에서 불과 300m 거리에는 장병들의 종교생활을 위해 1952년 세워진 강병대교회가 자리하고 있다.

지금의 대정초등학교는 6.25 당시 공군사관학교 임시기지로 활용됐는데, 학교 한 켠에 남은 상징탑에 그 이야기가 깃들어있다.

당시 제98육군병원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공간이다. 이 병원은 의무대와 후송 병원의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 제1훈련소 관할 아래 건립됐지만 당시 제주도민과 피난민을 치료하는 도내 유일한 3차 의료기관의 기능도 수행했다. 1964년 3월 이 자리에 대정여고가 생기면서 50여개의 병동 건물이 차례대로 철거됐고, 현재는 학교 안에 1개의 건물이 남아있다.

학교 동쪽으로 약 100여미터에는 당시 이 병원에서 격무로 순직한 의료진들을 기리는 충혼비가 세워져있다.

이 밖에도 소위 주먹탑으로 불리는 제29사단 창설기념탑, 현재 마늘밭 한 가운데 자리 잡은 중공군포로수용소터, 해병대 3기생들이 훈련을 받았던 구 해병훈련시설 등 한국전쟁의 대표적인 상징물들이 자리잡고 있다.

현재 대정여고 일대에 있던 육군 98병원은 육군 제1훈련소 장병 뿐 아니라 도민들의 3차 의료기관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했다. 50여개의 병동들은 차례대로 철거돼 현재 건물 한 채만 남아있다. 이 건물은 대정여고의 교실이자 실습실로 사용되기도 했다. 2017년 국가등록문화재 제680호 지정됐다. /사진 제공=김웅철 대정현역사문예포럼 이사장 ⓒ제주의소리
현재 대정여고 일대에 있던 육군 98병원은 육군 제1훈련소 장병 뿐 아니라 도민들의 3차 의료기관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했다. 50여개의 병동들은 차례대로 철거돼 현재 건물 한 채만 남아있다. 이 건물은 대정여고의 교실이자 실습실로 사용되기도 했다. 2017년 국가등록문화재 제680호 지정됐다. /사진 제공=김웅철 대정현역사문예포럼 이사장 ⓒ제주의소리
6.25 당시 공군사관학교는 대정국민학교로 임시 이동했다. 당시 사진(위쪽)에는 군용 지프차와 장병들의 모습이 잘 나타나있다. 이때 대정국민학교 학생들은 인근 마을 건물이나 나무 밑에서 수업을 들어야 했다. 현재 학교 화단에는 공군사관학교 훈적비가 남아있다. /사진 제공=김웅철 대정현역사문예포럼 이사장 ⓒ제주의소리
6.25 당시 공군사관학교는 대정국민학교로 임시 이동했다. 당시 사진(위쪽)에는 군용 지프차와 장병들의 모습이 잘 나타나있다. 이때 대정국민학교 학생들은 인근 마을 건물이나 나무 밑에서 수업을 들어야 했다. 현재 학교 화단에는 공군사관학교 훈적비가 남아있다. /사진 제공=김웅철 대정현역사문예포럼 이사장 ⓒ제주의소리
제98육군병원의 순직충혼비. 도민들을 위한 3차 의료기관 역할을 병행했던 병원에서는 3명의 순직자가 나왔는데 이들을 기리기 위한 세워진 충혼비가 대정여고 동쪽 100여 m 부근에 남아있다. ⓒ제주의소리
제98육군병원의 순직충혼비. 도민들을 위한 3차 의료기관 역할을 병행했던 병원에서는 3명의 순직자가 나왔는데 이들을 기리기 위한 세워진 충혼비가 대정여고 동쪽 100여 m 부근에 남아있다. ⓒ제주의소리
향토사학자인 김웅철 대정현역사문예포럼 이사장이 대정현역사자료관에서 6.25 당시 대정 일대의 시대상을 설명하고 있다. 30여년 간 수집해온 방대한 자료들이 이 곳에 축적돼있다. ⓒ제주의소리
향토사학자인 김웅철 대정현역사문예포럼 이사장이 대정현역사자료관에서 6.25 당시 대정 일대의 시대상을 설명하고 있다. 30여년 간 수집해온 방대한 자료들이 이 곳에 축적돼있다. ⓒ제주의소리

대정에는 이처럼 많은 역사적 가치를 지닌 공간들이 산재해있지만 이를 하나로 엮어내 생활 속 교육 등 적극적인 움직임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980년대부터 미국의 대형 아카이브를 넘나들며 제주 관련 자료를 모아온 김웅철 대정현역사문예포럼 이사장은 “교육현장 등에서 생활과 연결이 안되면 모든 것이 단절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린다”며 “일회성으로 당장 발등의 불만 생각하고 소중한 역사적 자원들을 어떻게 유지시켜야 할지에는 관심이 많지 않은 현실이 아쉽다”고 말했다.

잊혀진 제98육군병원의 순직충혼비가 대표적인 예다. 이 충혼비는 당시 열악한 환경 속에서 격무에 시달리다 순직한 의료진들을 기리기 위해 육군병원 소속 장병들이 십시일반 힘을 모아 세워졌다. 병원 건물이 남아있는 대정여고에서 불과 동쪽으로 100여 미터에 위치한 이 충혼비는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채 안내판 하나 없이 사유지에 방치됐다는 지적이 이어져왔다.

김 이사장은 조선시대에는 유배지로, 일제강점기에는 대륙침략을 위한 병참기지의 아픔을 지녔던 대정에 살던 주민들이 6.25전쟁 당시 다양한 방식으로 나라를 지키는 일에 동참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으로 당시 대정읍 상모리 산이수동 주민들은 중공군포로수용소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어야 했다. 

그는 “그 당시 대정의 많은 땅이 징발돼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 나라를 위해 내놓았고 후에 복구하는 데도 손해를 많이 보고 많이 아팠다”며 “이 지역주민들은 그 당시 어려움을 오롯이 다 받아넘겼다”고 강조했다.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모슬포 일대 6.25 주요 유적. ⓒ제주의소리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모슬포 일대 6.25 주요 유적. ⓒ제주의소리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0 / 400
댓글 11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순 추천순 이 기사에 달린 댓글 11
그래 2020-06-29 21:12:20
아니 저분께서는 저 시대때 초등학교도 가지도 않았을텐데
뭘 아시고 저렇게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90세 어르신께세 말씀하셨다면 모를까
저 사무실에서 근무해서 그런가요?
인터뷰 좀 잘 선택 하세요
211.***.***.6

문대탄 2020-06-26 10:01:39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을 막으려고 4.3을 일으킨 남로당 무장폭도들은 수세로 몰리다가, 2년 후인 1950년 6.25가 터지자 활동을 강화, 총공세에 나섰다. 그들이 그렇게도 바라던 공산통일의 기회였으니까.
이석문 교육감, 강창일 등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그들이 통일정부를 위해 투쟁한 것으로 찬양한다. 민예총의 박경훈은 초대 폭도 사령관 김달삼의 월북에 이어 2대 사령관이 되었다가 체포되어 관덕정에서 시신이 나무에 걸렸던 이덕구의 기념관을 세워야 한다고 연설했다. 비통하다, 6.25 민족해방전쟁이 성공했더라면 얼마나 기뻐했으랴.
4.3과 6.25 교육은 이석문 전교조 교육감을 몰아낸 후 완전히 뒤집어야 한다.
61.***.***.60

문대탄 2020-06-26 09:00:00
앞으로가 걱정이다.
6.25 때, 중공군에 밀리면 정부(+30만 국군)를 제주도로 옮길 것을 검토했다는 기사가 났던데,
궁지에 몰린 김정은이 발작을 일으킨다면? ... 제주는 어떻게 될 것인가? ... 미사일도 미사일이지만, 본토 대도시들은 폐허가 될 텐데...
아무도 모른다 ... 180석? ... 희희낙락할 때?
... 이석문은 4.3에 코를 박고... 읍/면 초등학교 저학년들 읽기/쓰기/셈하기 기초학력 검사해야 한다.
... 학력평가 않고 讀書算 인권 기초교육 나몰라라 하는 이석문은 자폭하라.
... 학부모 지역주민 총궐기 해서 어린 아이들 읽기/쓰기/셈하기 기초학력 평가하고 보충수업 해야 한다.
... 모두가 행복한 평등사회 위해 ...이것이 가장 큰 일 ...어린이 기초교육 ... 도농격차 심
61.***.***.60

문대탄 2020-06-26 08:04:17
문재인의 평화 사기극은 들통났다.
문재인의 "평화경제"에 속았던 김정은이 화를 내는 건 당연하다.
하긴, 문재인 자신도 좌파의 '민족 평화' 백일몽에 속았지.
김정은은 두 가지 속았다: 하나, 핵이면 될 줄 알았다. 둘, 대북재제로 궁지에 몰리자 문재인의 평화 쇼에 속았다. 싱가포르까지 기차로 60시간이나 원거리 출장 했다. 비행기로 몇 시간이면 될 것을 ... 불쌍하게
문재인이 대권을 찬탈하자, 이석문 등 한 줌도 안 되는 좌파들은 4.3을 (적화)민족통일정부(김일성 치하)를 위한 의거로 찬양하는 교과서 편집지침을 냈다. ... 역사의 우스갯거리 ... 그리고 재밋섬 100억...ㅋㅋ... 대권 원희룡 ... 김종인...ㅋㅋ ... 미통당 ... ㅋㅋ
61.***.***.60

문대탄 2020-06-26 07:51:52
이석문 교육감은 6.25 남침 교육은 않고, 4.3 교육만 열중한다. 대한민국을 태어나서는 안 될 나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4.3은 단선단정을 반대하고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하고) 적화통일을 위해 민중봉기한 무장대라고 하는 것이다. 4.3, 대구폭동 여수순천반란사건 등 민중폭동으로 이루지 못한 공산당의 꿈을 일거에 해결하려던 것이 6.25였다. 4.3은 6.25의 예고편, 전주곡이었다..... 이석문은 사퇴하라.
61.***.***.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