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배의 도백열전(31)] 제9대 양제박 도지사④

  선거는 날로 과열돼 갔다. 그 해 7월15일에 실시된 조천면의 5대 국회의원선거 합동유세에서는 상대방 선거운동원으로부터 마이크를 빼앗긴 김두진 후보(3․4대 국회의원)가 육성으로 연설하는 소동이 벌어지는 등 선거는 극도의 혼탁 속에 치러졌다.
 
  그런가 하면 양 지사의 발언을 둘러싼 설전도 벌어졌다.
도내 유일한 여성 후보자로서 남제주군에서 출마한 강인숙(姜寅淑)은 대정초등학교 합동유세에서 “혁신당은 사회주의이며 사회주의는 그 원조가 유물론에 입각한 공산주의 사상에서 비롯된 것일 뿐만 아니라 4.3 사건도 사회주의자들이 일으킨 폭동이다”고 주장해 다시 혁신당인 한국사회당을 자극했다. 한국사회당 후보인 김성숙(金成淑)은 즉각 강 후보의 발언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한편 강 후보를 검찰에 고소했다.

  선거는 민주당과 혁신당의 싸움으로 이어졌다. 결국 과열된 선거는 유혈사태로 번졌고 관덕정과 제주신보, 제주경찰서 앞에서는 연일 연좌시위가 벌어졌으며 경찰서 유리창이 부서지는 일도 다반사였다.

참의원 선거 강재량, 강경옥 당선…최장수 도지사 길성운 후보 5위로 낙선

  이런 가운데 7월29일에 치러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고담용, 홍문중, 김성숙이 당선됐다. 특히 혁신당으로 주목을 받았던 한국사회당 후보 김성숙(남제주군 가파도 출신)이 1만3114표의 최다득표로 당선, 파란을 일으켰다. 김성숙의 당선은 양제박 지사의 「중문발언」에도 불구하고 남제주군의 막강한 실력자이자 현역의원인 현오봉을 낙선시켜 세간을 더욱 놀라게 했다.


  국회의원 선거와 함께 실시된 참의원 선거에는 강재량, 강경옥이 당선됐으나 제7대 제주도지사로서 최장수 재임 기록을 가진 길성운은 후보 7명 가운데 5위에 그쳐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총선이 끝나자 시중의 관심은 양제박 지사의 거취에 쏠렸다. 7.29 총선으로 구성된 참의원과 민의원 등 양원(兩院)은 새로운 정부탄생을 착착 진행함에 따라 양 지사도 과도정부와 함께 퇴진할 것이라는 게 지배적이었다. 양원은 8월12일 합동회의를 열고 제4대 대통령에 민주당의 윤보선(尹潽善), 국무총리에 장면(張勉)을 선출했다.

  양제박 지사는 총선 엿새 후인 8월4일 전국지방장관회의 참석차 상경했다. 제주도내 관가는 양 지사의 상경을 사실상의 경질로 받아들인 분위기 속에 후임 지사에 대한 하마평이 무성하기 시작했다.

총선 직후 양제박 지사 경질설 파다…양 지사 “밀어준다면 열심히 일하겠다”

  그러나 양 지사는 8월13일 제주도청으로 보낸 전문을 통해 『당분간 귀임이 늦어지겠다』는 짤막한 소식만 전해옴으로써 새 정부가 구성될 때까지 서울에 머물러 있으려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불러 일으켰다.

  시중에는 고담용 의원이 후임 도지사 추천에 대한 절대권을 쥐고 있으며 7.29 총선 당시 자신의 사무장을 지낸 前제주도산업국장 양남전을 지사로 추천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지사 경질문제가 초미 관심사로 술렁이고 있을 때 서울출장에서 무려 보름만인 8월18일 귀임한 양 지사는 과도정부의 퇴진과 함께 전국 시∙도지사의 경질도 단행될 것으로 안다고 솔직히 시인하면서 국회에서 심의중인 지방자치법 개정이 끝나면 인사이동이 있을 것이라고 출입기자들에게 밝혔다.

  그러나 양 지사는 “현재 임명제로 돼 있는 지사는 직선제로 바뀔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차기 지사에 자신을 밀어준다면 더욱 열심히 지사직을 수행하겠다”며 주위에 의미있는 말을 던져보이는 것이었다.

  그런가 하면 양 지사는 “지난번 출장이 내 연명운동을 위한 것이었다는 얘기도 있으나 시시각각 변하는 중앙정치로 인해 정책 책임자들에게 내 신분문제를 자세히 얘기할 시간조차 없었다. 도정의 모든 기강을 바로 잡기 위해 유임할 생각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고 말해 유임 희망을 강력히 시사했다.

  양 지사는 이후에도 직선 출마를 피력하는 등 마침 제주지역을 강타한 태풍 칼멘호의 피해지역을 돌아보는 과정에서도 “내가 유임되기만 한다면 역대 지사들이 못다한 일을 과감히 추진해나갈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도민들이 적극 지지해줄 것을 바랐다.
 
 당시 양 지사는 1960년 5월에 부임한 이후 4개월 동안 도정업적이라고는 고작 도청 공무원들에 대한 인사결재뿐이었다. 또한 과도기 정부에서 새 사업을 추진하기도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총선관리로 정신이 없었던 때라서 양 지사는 새로운 사업에 대한 구상은커녕 기존의 사업에도 거의 손을 대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 민주당 제주도당지부에서는 양남전을 지사로 추천하기 위한 연판장을 돌렸다. 민주당도당지부는 이미 2000명의 도민이 서명했다고 발표하면서 최소한 5000명이 서명할 것으로 본다면서 양제박 지사의 퇴임을 노골적으로 기정사실로 만들어나갔다.

그러나 양 지사의 경질설은 그해 9월15일 국회 본회의에 참석한 이상철(李相喆) 내무부장관이 “전국지방장관에 대한 경질범위는 결원중에 있거나 이미 사표를 제출한 시․도지사 등 부득이한 사정에 있는 시․도지사의 자리를 메꾸는 정도에 그치겠다”고 말함으로써 양 지사의 유임설로 급전돼 양남전씨를 지사로 추대하고 있던 민주당도당지부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그때 공석중인 시∙도지사가 서울시장, 강원도지사, 경북도지사, 전남도지사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전남 무안 출신 주도윤 의원, 민의회 본회의에서 ‘제주도 폐지론’ 제기

  제주지방 전체가 양 지사 퇴임문제를 놓고 온통 술렁이고 있을 때 「제주도제 폐지」문제의 망령이 되살아나 도민들의 허를 다시 찌르고 들어왔다.

  이 「도제폐지」망령은 9월14일 전라남도 무안군 출신의 朱도윤 의원(민한당)이 민의원 11차 본회의 지방자치법 기초위원회의 중에 제기하면서 비롯됐다. 주 의원은 도세가 약한 제주도에 대한 정부의 과다한 예산지원문제를 집중적으로 지적하고 “육지의 일개 읍면보다 작은 특정도를 유지하기 위해 수 십억원의 국비를 지출할 필요가 있느냐”고 질의하고 “이 같은 폐단을 없애기 위해 전라남도와 제주도의 통폐합에 관한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묘하게 주 의원이 몸 담고 있는 지방자치법기초위원장은 제주출신 高湛龍 의원이었다.

고 의원은 “도제 폐지는 지방자치법 기초위원회에서 다룰 문제가 아니다”고 답변, 일축했으나 주 의원은 “제주도는 우리 무안군보다 인구가 작은데도 道를 두어 수 십억원의 국비를 낭비하고 있는데 세금을 내는 국민의 부담도 생각해야 될 것이 아니냐”고 자신의 주장을 조금도 굽히려 들지 않았다.

양제박 지사 “제주도 폐지는 제주상권을 장악하기 위한 전남도 의원들의 음모”

  이같은 사실이 전해지자 양 지사는 “주 의원의 발언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 설사 통합안이 정식 제의된다 하더라도 국회 본회의에서 묵살될 것이 분명하며, 주 의원의 망언을 도민들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면서 “도제폐지는 전체 지방의원의 3분의 2이상 찬성을 얻도록 돼있어 개정되기 어려울 것이다”고 낙관하면서 부산 상권(商圈)에 속해 있는 제주도의 상권을 목포 상권에 두기 위한 전라남도 의원들의 의도적인 음모라고 비난했다.

  다시 양 지사의 경질문제가 대두된 것은 9월 하순이었다. 중앙 소식통은 양 지사의 경질이 내무부와 총리실에서 재검토되고 있으나 민주당의 신파(新派)에서는 양 지사가 한민당의 골수분자임을 들어 사퇴를 계속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후임 지사로는 양남전, 고인도, 김옥천, 이홍림, 홍순재, 홍순영, 김익중, 김시곤 등을 비롯해 前지사인 길성운 등이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럴 즈음 민의원은 9월27일 본회의에서 자치단체장에 대한 직선제를 전격적으로 의결함으로써 후임 지사는 불가피하게 선거로 지사를 뽑을 수 밖에 없게 됐다.

  즉시 양남전과 김영진 적십자사지사장, 고승호 민주당도당부위원장이 출마의사를 표명한 가운데 양제박 지사 역시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현재 지방자치법 개정안이 민의원을 거쳐 참의원에 상정 중이기 때문에 경솔하게 밝힐 수 없으나 통과된 뒤에는 출마의사를 분명히 밝히겠다”고 말해 도지사 선거전에 뛰어들 각오임을 직접 시사했다.

민선지사 선출 2개월 앞둬 양 지사 경질…민선 출마했으나  최하위로 낙선

  양 지사의 경질이 돌연 발표된 것은 1960년 10월27일이었다. 그것은 임명제인 지방자치단체장에 대한 직선제 실시가 거의 확실시되고 있는 상태에서 갑자기 이뤄진 것이어서 도민들의 놀라움은 매우 컸다. 민선(民選) 지사 선출을 불과 2개월 남겨두고 경질이 단행된 것이었다.

  후임 지사에는 김선옥(金善玉) 道총무국장이 기용됐다.
  김 국장은 그때까지 지사 물망에 거론조차 되지 않았던 의외의 인물이었다. 김선옥 국장의 임명은 다가오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려는 민주당의 신파(新派)가 구파(舊派) 출신의 양 지사를 경질한 것으로 알려져 재임 불과 5개월만에 퇴임하는 양 지사에 대해 동정이 쏟아졌다.

해임 소식을 전해들은 양 지사는 “각오했던 일이지만 이렇게 갑자기 바꾸는 것은 뜻밖이다. 제주발전의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추진하려고 했는데 중단할 수 밖에 없게 됐으며 내년 봄에는 포경(捕鯨) 사업을 일본전문가들과 함께 추진할 계획이었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양 지사는 그해 12월29일에 실시된 도지사 선거에 출마했으나 5명의 후보 가운데 3166표를 얻는 데에 그쳐 최하위를 기록, 낙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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