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이 주인이다-제주 마을이야기](1)귀덕1리 - 폐교위기 학교 구출에서 시작된 마을의 ‘작은 기적’

마을의 자원과 가치를 주민들이 발견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공동체를 조성하기 위한 마을만들기 사업. 시행착오와 현실적 어려움을 넘어 제주 마을 곳곳에서는 ‘작지만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제주의소리]는 제주특별자치도마을만들기종합지원센터와 함께 주민 주도의 마을만들기를 통해 희망의 증거를 발견한 제주의 마을들을 살펴보는 연중기획을 통해 더 나은 제주의 미래를 향한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 편집자
제주 한림읍 귀덕1리가 27일 설명절을 앞두고 마을 어르신들에게 쌀을 전달했다. 이날 쌀을 받은 주민은 총 165명. 자체복지기금이 있었기에 가능한 연례 행사다. ⓒ제주의소리
제주 한림읍 귀덕1리가 27일 설명절을 앞두고 마을 어르신들에게 쌀을 전달했다. 이날 쌀을 받은 주민은 총 165명. 자체복지기금이 있었기에 가능한 연례 행사다. ⓒ제주의소리

기적은 뭐 그리 거창하거나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제주 한림읍 귀덕1리 ‘만원의 행복기금’은 작은 기적이었다. 기적이 시작된 것은 2017년이다. ‘많은 주민들이 한 달에 최소 1만원씩 돈을 모으면 마을 살림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시작됐다. 마을의 변화와 주민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귀덕1리 ‘만원의 행복기금’이다. 

다소 낯선 시도였지만 조금씩 조금씩 참여자들이 늘어나 200명이 넘는 사람이 기금 마련에 동참했다. 모인 돈은 어르신이나 저소득층을 위한 명절 선물부터 마을 밖 나들이, 반찬 나눔 등 마을 공동체를 위해 요긴하게 쓰였다. 

주민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자발적으로 힘을 모은 이 자체복지기금은 마을만들기 선진 사례로 꼽히며 2019년 8월에는 농림축산식품부의 행복마을만들기 콘테스트에서 장관상을 받았다.

앞서 위기의 학교를 구하기 위한 협력의 경험이 이 기금 조성 운동의 바탕이 됐다. 귀덕초등학교가 학생 수 감소로 위기를 겪자 학교살리기 일환으로 행복주택을 짓기로 한 것. 마을의 자부담이 필요했는데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힘을 모았다. 전국 마을만들기 전문가들이 귀덕1리를 성지(聖地)로 꼽게된 것은 결국 '주민'들의 힘이다. 

김충용 귀덕1리 이장은 “귀덕초가 폐교위기를 겪게 되자 전체 졸업생들이 모여서 살릴 방법이 뭔지 고민했다”며 “행복주택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토지 기탁, 기금 후원은 물론 포크레인을 갖고 있는 사람이 공사과정에 도움을 주는 일도 있었고 토목작업에 재능기부 하는 사람도 있었다. 주민들이 힘을 모아 폐교를 막았다”고 말했다.

2016년 63명까지 줄어들던 귀덕초 학생 수는 주민들이 만든 작은 기적으로 반등, 전교생 90명까지 늘어났다. 

한림읍 귀덕1리의 문화야시장 '귀덕밤마실'. 마을주민들을 위한 축제이자 선주민과 정착주민 간 소통의 장이 됐다. ⓒ제주의소리
한림읍 귀덕1리의 문화야시장 '귀덕밤마실'. 마을주민들을 위한 축제이자 선주민과 정착주민 간 소통의 장이 됐다. ⓒ제주의소리

선주민(원주민)과 정착주민(이주민)이 협업한 ‘귀덕 밤마실’도 귀덕1리 협력의 힘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과거 장날을 복원한다는 콘셉트로 이어진 문화야시장이다. 마을의 특산물과 지역상인들의 상품이 가판대에 내달렸고 작은음악회와 함께 마을 주민들이 주인공으로 나서는 토크콘서트가 열렸다. 수익금은 전액 노인복지기금으로 기탁됐다. 

선주민과 정착주민 간의 갈등이 한창 이슈로 떠올랐을 때도 ‘적어도 우리 동네는 그런 불협화음이 없다’고 자부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특히 지속적인 간담회를 통해 아이디어를 모으고 축제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주민들 간의 유대감이 굳건해졌다.

이밖에도 수눌음육아센터, 작은도서관, 지역 초등학교 졸업생을 위한 해외수학여행과 장학사업, 어르신들을 위한 노후주택 개선사업 등 사업들은 ‘마을의 주민들이 절실한 부분을 무엇일까’ 고민을 모으는 과정을 거쳐 실현됐다. 한창 자발적인 움직임들이 빛을 보던 시기에 찾아온 코로나 팬데믹이 야속할 뿐이다.

김충용 귀덕1리 이장. ⓒ제주의소리
김충용 귀덕1리 이장. ⓒ제주의소리

마을이 도움이 되는 방법들을 찾아 다니며 구슬땀을 흘리며 끝까지 사심없이 추진한 마을의 일꾼들과, 적극적으로 동참한 주민들의 시너지는 작은 마을에 큰 변화의 바람이 됐다. 김 이장은 이남근 직전 이장 등 마을리더들의 역할이 컸다고 강조했다.

모범사례로 소문이 나면서 제주는 물론 전국 각 마을에서 견학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김충용 이장은 “마을만들기가 개발 쪽으로만 가면 문제가 된다”며 “제주마을만들기종합지원센터에 준 아이디어를 주민들이 잘 받아들이고 논의한 것이 효과가 컸다. 중요한 것은 소통이 잘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주신화 속 바람의 신인 '영등할망'이 들어오는 곳으로 유명한 마을, 귀덕1리의 기적은 계속된다. 

귀덕1리는?

제주시 서쪽으로 25km에 위치한 마을(한림읍 귀덕1리)로 총 287.3ha 규모다. 507세대에 1204명이 살고 있다. 양배추와 브로콜리가 생산되며 쪽파가 대표 농산물이다. 1920년대 초등교육기관을 했던 귀덕향사, 용천수로 유명한 궤물수덕, 밭담길 등의 문화자원이 유명하다.

귀덕1리의 옛 이름은 '돌여' 혹은 '돌덕'이다. 썰물때면 귀덕1리의 북쪽 바다에 '큰여'와 '작은여'라는 두개의 여(돌섬)가 드러나는데 여기서 붙여진 이름이다. 고려 충렬왕 26년(1300년) 제주도에 14현을 설치할 때 이 지역에서 학자와 무인들이 많이 배출되었다해서 귀덕현이 됐다. 훗날 행정구역 통폐합이 되면서 귀덕리가 되었고 1963년에 귀덕1리로 분리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귀덕1리는 제주문화의 특징인 '반농반어(半農半漁)의 생활문화가 오늘날까지 뚜렷이 남아있는 곳으로, 제주신화 속 바람의 신인 '영등할망'이 들어오는 곳으로 유명하다. 마을 영등할망신화공원에서는 열리는 영등신맞이환영제는 열리는데, 매년 2월 초하루 귀덕 복덕개를 통해 들어오는 신화를 지닌 영등할망의 신화를 환영제를 통해 구현하며 마을의 무사안녕을 기원한다.

그리고 제주의 대표적인 밭담 유형 중 하나인 '잣담'이 지난 2014년 세계중요농업유산에 등재되면서 잣담이 많아 '잣질동네'로 불릴 만큼 제주농업 문화의 다양한 가치도 품고 있는 마을이다. 

제주 한림읍 귀덕1리 전경. /제공=제주마을만들기종합지원센터ⓒ제주의소리
제주 한림읍 귀덕1리 전경. /제공=제주마을만들기종합지원센터ⓒ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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