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이 주인이다-제주 마을이야기] (5) 신흥리 - 아이들이 뛰어노는 마을을 꿈꾸며

마을의 자원과 가치를 주민들이 발견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공동체를 조성하기 위한 마을만들기 사업. 시행착오와 현실적 어려움을 넘어 제주 마을 곳곳에서는 ‘작지만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제주의소리]는 제주특별자치도마을만들기종합지원센터와 함께 주민 주도의 마을만들기를 통해 희망의 증거를 발견한 제주의 마을들을 살펴보는 연중기획을 마련했다. 이를 계기로 더 나은 제주의 미래를 향한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 편집자
제주 조천읍 신흥리의 이팝나무 자생지 앞 다리에 무지개색 방호벽이 펼쳐져있다. 특히 4~6월 꽃을 피울 때 아름다운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제주의소리
제주 조천읍 신흥리의 이팝나무 자생지 앞 다리에 무지개색 방호벽이 펼쳐져있다. 특히 4~6월 꽃을 피울 때 아름다운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제주의소리

제주 조천읍 해안이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신흥리는 천천히 걸어다니면서 음미할 때 그 매력을 온전히 알 수 있다.

봄이 되면 이팝나무 자생지에는 큰 나무에 흐드러지게 꽃이 피고, 바다로 흐르는 맑은 용천수에는 숭어들이 떼를 지어 헤엄친다. 제주에서 육지와 가장 가까운 관곶은 해돋이를 보기에도 해넘이를 보기에도 근사한 곳이다. 늦가을 해안을 따라 걷다 보면 돌담 사이 황금빛 억새가 흔들거린다. 큰 나무를 배경으로 자리잡은 무지개 다리에는 사진을 찍는 방문객들을 볼 수 있다.

신흥리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닌 마을이지만 청년들이 빠져나가면서 2000년대 이후 어려움을 겪어왔다. 양쪽으로 큰 마을을 끼고 있는 입지는 아늑한 분위기를 느끼게 해줬지만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여느 마을과 달리 관문이 되는 도로의 폭도 좁았다. 인구가 적고 마을자산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는 어려움도 있었다.

이를 두고 볼 수 없었던 주민들은 작년부터 꿈틀대기 시작했다. 지속적인 워크숍과 논의를 통해 마을을 재발견하는 법을 익혔고 ‘느리게 즐기는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테마를 정했다. ‘어떻게 하면 마을을 더 살기좋은 곳으로 만들지’ 고민을 다듬기 시작했다.

신흥리는 들어오는 액을 막기 위해 바다 위에 방사탑들을 세웠다. 이중 마을 바로 앞에 있는 생이탑과 큰개탑은 민속문화재로 지정됐다. ⓒ제주의소리
신흥리는 들어오는 액을 막기 위해 바다 위에 방사탑들을 세웠다. 이중 마을 바로 앞에 있는 생이탑과 큰개탑은 민속문화재로 지정됐다. ⓒ제주의소리
설문대할망이 다리를 놓다 중단했다는 전설이 깃든 제주 조천읍 신흥리의 엉장메코지. ⓒ제주의소리
설문대할망이 다리를 놓다 중단했다는 전설이 깃든 제주 조천읍 신흥리의 엉장메코지. ⓒ제주의소리

손유철 신흥리장은 “2000년대 이후 청년들이 많이 빠져나가면서 마을이 어려운 상황에 있었다”며 “제주마을만들기종합지원센터가 세심한 관심을 가져줬고, 젊은 사람들이 많지는 않지만 우리가 다 모여서 ‘우리 한 번 해보자’고 의지를 다졌다”고 말했다. 

손 이장은 “자그마한 마을이지만 용천수와 각종 문화재가 포진돼 있고, 이들을 관리하면서 탐방할 수 있게 하면 깨끗한 마을의 이미지를 잘 알릴 수 있을 것”이라며 “신흥리는 고즈넉하게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방문객들이 ‘제주에 이런 아담한 마을이 있구나!’하고 느낄 수 있는 마을을 만들려 한다”고 강조했다.

마을의 청년과 리더들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마을 고유의 자산을 지키면서도 지역을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들을 찾았다. 제주형 연안 식생 조림사업이 성사되면서 해안의 생태가 복원되고, 파래가 과다하게 밀려와 경관을 해치고 악취를 풍기는 일도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마을의 경관을 지키면서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노력의 결실이다.

한 신흥리 주민이 큰물에서 빨래를 하고 있다. 큰물은 신흥리 마을 어귀의 암반 틈에서 솟는 용천수다. 사각 형태의 통에 모아져 중요한 식수원이자 야채 씻는 물, 빨래하는 물 등으로 활용됐다. ⓒ제주의소리
한 신흥리 주민이 큰물에서 빨래를 하고 있다. 큰물은 신흥리 마을 어귀의 암반 틈에서 솟는 용천수다. 사각 형태의 통에 모아져 중요한 식수원이자 야채 씻는 물, 빨래하는 물 등으로 활용됐다. ⓒ제주의소리

주민들은 아름다운 경관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할 방법들을 구체화하고 있다.

독특한 멋을 지닌 옛 비료창고를 어떻게 활용할지, 고요한 분위기와 독특한 구조를 지닌 신흥해수욕장을 어떻게 세상에 알릴지 머리를 맞대고 있다. 바다에 잠기는 방사탑과 잘 보존된 환해장성, 억새와 어우러지는 맑은 용천수 등을 이어 ‘마을 전체를 가족들이 천천히 머물러가는 곳’으로 만들기로 한 것 구상은 주민들의 논의를 통해 나온 결과다. ‘발길이 머무는 방사탑이 품은 마을’이 또다른 마을의 비전이다.

지금 신흥리가 가장 절실하게 바라는 풍경은 어린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이다. 2010년 신흥초등학교가 인근 조천초와 통폐합되면서 사라진 것은 마을에 안타까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학교가 사라진다는 것은 지역의 공동체성을 엮는 가장 강한 끈이 사라진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손유철 신흥리장. ⓒ제주의소리
손유철 신흥리장. ⓒ제주의소리

마을은 느리지만 정직한 길을 택하기로 했다. 살기 좋은 마을의 가치를 사람들이 알아보고 자연스럽게 젊은 사람들이 터전을 옮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다.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은 마을의 자연을 잘 지키면서, 여기에 주민들이 소통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문화적 요소를 얹는 일을 구체화하고 있다.

손유철 이장은 “최근 관심이 높아지면서 마을 차원에서 무언가를 한다고 하면 다 같이 자기일처럼 동참하고 있다”며 “어린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이 가장 바라는 풍경이다. 마을 공동체 의식에 중요한 학교가 다시 생겼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신흥리는?

제주국제공항에서 동쪽으로 약 14km에 위치한 조천읍 신흥리는 118ha에 274세대, 603명이 살고 있는 해안마을이다. 마늘과 같은 밭작물과 톳, 소라 등 해산물이 난다.

옛 이름은 왯개마을이며 조선 중기 ‘왜구들이 와서 주둔을 했다’는데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왜포촌(倭浦村), 고포(古浦)로도 표기됐다. 1914년 조천리와 함덕리에 나눠져있던 마을이 하나로 병합돼 하나의 리 단위로 독립하면서 새로 일어난다는 뜻의 신흥리로 이름 붙어졌다.

해남 땅끝마을과 직선거리가 83km로 제주와에서 육지와 가장 가까운 곳으로 조선시대 봉화대와 옛 초소의 흔적, 등대, 전망대가 있는 관곶에서는 일출과 일몰을 모두 즐길 수 있다. 설문대할망이 다리를 놓다 말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바위언덕 엉장메코지, 암석으로 둘러싸인 주머니 모양의 물웅덩이 새배개 등 독특한 지형을 지녔다. 바다 위에 세운 5개의 방사탑은 에메랄드빛 바다와 어우러져 독특한 풍경을 선보이는데 이중 마을 바로 앞에 있는 생이탑과 큰개탑은 민속문화재로 지정됐다. 제주도기념물인 왜포연대, 해안을 따라 세워진 환해장성과 같은 방어유적이 잘 보존돼 있다.

4~6월이면 20m에 되는 큰 나무가 풍성한 꽃에 뒤덮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이팝나무 자생지는 바로 앞 무지개색 방호벽과 어우러져 포토존으로 서서히 이름을 알리고 있다. 용천수인 큰물과 새물깍도 들려봐야할 곳이다.

푸른빛으로 펼쳐진 신흥리 해안. ⓒ제주의소리
푸른빛으로 펼쳐진 신흥리 해안.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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