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수의 내게로 다가온 제주의 꽃(41)

   
꽃 이름 중에는 꽃의 생김새와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을 가진 꽃들이 있습니다. 이 경우는 대부분이 이파리의 모양이나 뿌리, 열매 또는 약효에 따라서 그 이름이 붙여진 경우가 많습니다. 이질풀의 경우는 약효에 따라서 지어진 이름인 셈이죠.

'이질(痢疾)'은 빈번한 설사와 발열, 복통을 유발하는 증상입니다. 그리고 전염병이기에 그렇게 달갑지 않는 병이죠. 이 병에 걸렸을 때 이질풀을 다려서 복용하면 병이 다스려 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우리 조상들은 사람들은 배탈로 인해 설사가 날 때, 여러 가지 주변의 식물을 이용해 응급 조치를 했습니다. 그 중에 '이질풀'은 설사의 특효약으로 사용되었던 것이죠.

이름은 못 생겼어도 우리네 삶에 꼭 필요한 꽃인 셈이죠.
이름을 붙여준 분들이 민간에 자주 퍼지는 이질병을 고칠 때 일반인들도 쉽게 찾아 사용하라고 붙여준 것이구나 생각하니 그 배려가 남달라 보이는 꽃입니다.

꽃말은 꽃의 예쁜 모양새를 담아 '새색시'랍니다.
   

가을 들판 여기저기 보랏빛으로 피어나는 꽃들을 보면 정말 새색시가 부끄러운 듯 풀숲에서 낭군을 바라보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보일 듯 말 듯 수줍게 들판 여기저기 피어서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꽃, 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꽃이니 자기 색시가 가장 예뻐 보이는 새신랑이 홀딱 반할 '새색시'라는 꽃말이 제법 잘 어울립니다.

이질풀에는 이런저런 꽃 이야기가 전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전해지고 있는데 알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 참에 꽃 이야기를 하나 만들어 주어야겠습니다.

아주 먼 옛날 깊은 산골에서 있었던 일이야.
어릴 적부터 한 동네에서 소꿉놀이를 하며 자랐던 돌이와 순이가 있었는데 어느 덧 순이가 어엿한 아가씨로 자라 시집갈 나이가 되었겠지. 깊은 산골이라 동네가 크지도 않아서 그렇게 돌이와 순이는 자라면 으레 결혼해서 한 가정을 꾸밀 것이라고 생각을 했단다.

그런데 돌이는 그 깊은 산골이 너무도 답답하고 싫었단다.
언젠가 아버지를 따라 오일장에 갔을 때 보았던 큰 마을, 그 곳을 늘 그리며 살았단다. 돌이는 어느 날 밤 순이에게 이렇게 말했단다.
"순이야, 네가 큰 마을에 가서 돈 많이 벌어 부자가 되어 큰집을 짓고 너를 데리러 올게."

   

그러나 맨 손으로 부자가 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늘 그 자리를 맴도니 돌이도 답답했단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는 동안 돌이는 어느 돈 많은 부잣집의 데릴사위로 들어가게 되었단다.

물론 순이는 이제나저제나 돌이를 기다리며 그 깊은 산골에 남아있었지.
그러나 돌이는 부자가 되고 싶어 데릴사위로 부잣집에 들어가긴 했지만 순이를 잊을 수가 없었어. 그러다 몹쓸 이질병이 돌았고 돌이도 그 전염병에 걸리게 되었지. 병에 걸리자 그는 쫓겨났고 결국 몇 년 동안 일만 죽어라 하고는 아무 것도 얻은 것 없이 병든 몸으로 고향에 돌아왔단다.

'그래, 아무리 깊은 산 속이라도 이만큼 일하면 순이하고 행복하게 살지 못할라구.'
그러나 이미 순이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으니 돌이를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죽어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났단다. 돌이가 병든 몸을 안고 고향에 돌아왔을 때 순이의 무덤에는 보라색꽃이 피어있었어. 슬피 울던 돌이는 무덤에 핀 꽃이 순이의 넋을 담은 꽃이라 생각하고는 '그래, 너를 평생 내 몸에 간직하고 살께.'하며 그 꽃을 따서 먹었지 뭐야.

그런데 그 순간 그렇게 아팠던 배가 거짓말같이 평온하게 가라앉는 거야. 순이의 넋이 묘약이 되어 돌이의 병을 고쳐주었던 것이지. 순이 무덤에 피었던 이 꽃이 바로 '이질풀'이라나?

이질꽃이 풀숲 여기저기에 피기 시작하면 완연한 가을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머지 않아 억새풀과 아직 피지 못한 가을꽃들이 들판 여기저기를 수놓을 것이고, 이질풀꽃을 그들에게 슬며시 자리를 내 주고는 또 피어날 가을을 고대할 것입니다.

이질풀.
이름은 못 생겼어도 그 못 생긴 이름에 실망하지 않고 늘 새색시처럼 수줍은 듯 아름답게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다가오는 꽃입니다.

   

※ 김민수님은 제주의 동쪽 끝마을에 있는 종달교회를 섬기는 목사입니다.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을 좋아하며, 일상에서 소중한 것을 찾는 것을 즐겨 합니다. 자연산문집 '달팽이는 느리고, 호박은 못생겼다?' '내게로 다가온 꽃들'의 저자이기도 한 그의 글은 '강바람의 글모음 '을 방문하면 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