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세들은 엄청난 국가적 자산...정책적 투자 절실

▲ 시카고 시내전경
시카고 도민회는 1987년 6월 창립됐다. 초대 회장은 김진구 씨, 부회장은 오성택 씨 , 강상배 씨가 총무로 회장단을 맡았다. 회장단의 임기는 2년. 초대 회장단은 2대까지 연임하여 91년 6월까지 도민회를 이끌었다. 3대 회장단으로 강명남 회장, 김정혁 부회장, 김종필 총무가, 4대 회장은 강성철 씨, 5대는 다시 김진구, 6대 문창욱, 7대 김정혁, 8대 박흥식, 9대 박성효, 10대 고근찬 회장 순으로 이어져 와 올해로 꼭 창립 20주년이 된다.

시카고 도민회의 정식 명칭은 ‘미중서부(美中西部) 제주도민회’다. 말 그대로 미국의 중서부 지역인 인디애나, 시카고, 캔사스, 오하이오 지역이 주요한 조직대상이나, 대부분은 시카고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교민들이 주로 활동하고 있다.

도민회 회칙에는 “교민 상호간의 친목과 ‘향토(대한민국, 제주도) 발전을 위해 공헌”하는 것을 도민회의 설립목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향토‘를 ’대한민국‘과 ’제주도‘로 병기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띤다. 회원은 정회원과 준회원으로 구성되는데, 정회원은 ‘제주도 출신자 및 그 배우자 또는 직계가족’, 준회원은 ‘제주도에 5년 이상 적을 두었던 자 또는 1년 이상의 자지만 지역발전 공헌에 도민의 귀감이 되었던 자’로 정하고 있다.

▲ 92년 시카고 도민회 주소록
▲ 92년도 시카고도민회 주소록 일부
92년 자료(위 사진 참조)에 나온 시카고도민회 주소록만 해도 52명의 명단이 주소와 연락처까지 명시되어 있었지만, 현재는 40여명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사망한 이도 있고 삶의 터전을 옮긴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연말에 정기적으로 회합을 가지고, 예전에는 여름 휴가철에 야유회 겸으로 모였는데 요즘은 가을 골프모임으로 대체하고 있단다. 시카고한인회 행사가 열릴 때는 도민회 이름으로 적극 참여한다. 
 
가족적 분위기, 시카고 도민회

▲ 시카고 도민회
지난 10월 21일 저녁 6시 시카고 소재 모 한국식당에 11명의 제주인이 모였다. 현 시카고 도민회 회장을 맡고 있는 고근찬씨 부부, 초대 및 2대 회장을 연임하셨던 도민회의 정신적 지주인 김진구씨 내외, 강위종 부회장 및 박흥식 사장 부부와 박정렬씨 부부, 유일하게 루즈벨트대 김병석 교수만 싱글로 참석했다.

김진구 초대 회장은 40년 생으로, 조천 출신이다. 조천초·중교-중동고-한양대를 나왔다. 대학 1년 때 해병대에 입대, 3년 동안 군생활하면서 중장비 기술을 배우고 왔다. 재대 후 문산에 있는 미군회사에서 2년 동안 일하다 65년 월남에 가서 ‘다낭’에서 미군공항 활주로 만들 때 기술자로 일하기도 했다. 70년도까지 있다가 한국에 돌아와 1년 동안 한국회사에서 일했는데 성격에 맞지 않았다고. 그래서 71년에 취업이민을 오게 됐다. 처음 미국에 온 다음날부터 캐딜락 딜러로 7년 일했다. 이후 77년도에 자동차 오토샵(Kim's Auto Service) 을 오픈하여 현재 30년 째 영업하고 있다.

▲ 김진구 초대회장
자동차와 연관된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주사람들과 만나게 됐다. 김진구 씨가 도민회 회장을 맡던 초창기 시절에는 50가구 150여명 넘게 모였다고. 또한 그 당시에는 어렵게 살면서도 기부도 많이 했다고 한다. 김회장은 “외로워서, 끈끈한 정이 있었던 것 같다”고 회고한다. 현재 아들은 뉴욕에 있는 모건 크릭(Morgan Creek)이라는 캐피탈 매니지먼트 회사에 다니고, 딸은 수의과 의사다. “미국의 좋은 점뿐 만 아니라 나쁜 점도 보아야 한다”는 김회장. “한국인 박사들도 많지만 미국을 실제로 알려면 상중하층의 생활을 다 경험해 보아야 하고 미국역사를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12년 전부터 영어로 된 미국 역사책을 공부하고 있다는 그. 얼마 남지 않은 생을 자신의 서재 두 벽을 미국책으로 쌓을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쪽 벽은 이미 채웠다.

▲ 고근찬 회장
고근찬 회장은 82년 도미했다. 구좌읍 월정 출신으로 세화고를 나왔다. 옆에 있던 사모님은 “82년 12월 23일 저녁 8시 30분!” 25년이 지났지만 똑똑히 미국에 온 그 날과 시간을 기억하고 있다. 형님이신 고근필 씨의 초청으로 왔다(고근필씨는 64년 도미, 워싱턴실업인협회를 조직하고 2대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또한 워싱턴 페닌슐라 한인회장을 역임하기도 했었는데 최근 제주로 귀향, 함덕에 거주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미국에서 많은 교민들이 운영하는 세탁소를 그 또한 경영하고 있다. 두 자녀를 두었는데 아들인 고 다니엘(24)씨는 노드롭 그루만사에 PC 소프트웨어 전문 엔지니어로 근무하고 있다. 노드롭사는 헬기, 항공모함들을 제작하는 일종의 방위산업체다. 딸인 고 린다(20)양은 일리노이 주립대 산업디자인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다.

▲ 강위종 사장
강위종 사장. 애월 고성리 출신으로 광령교-귀일중-제주농고를 다녔다. 제주에 모친과 사촌형이 살아계셔서 자주 제주를 다녀간다. 99년 체전에서는 미주축구 총감독으로 왔다갔다. 83년도에 형님 따라서 미국에 왔다. 시카고에서 택시운전을 15년 하다 2001년 택시 회사를 인수하여 운영한 지 6~7년 됐다. 당시 9·11 이후 미국 경제가 타격을 입어 문닫는 회사들이 많았었는데 그 중 하나를 인수한 것. 현재 택시는 250여대 된다. 미국의 택시정책에 대해 해박한 경험적 지식을 갖고 있다. 딸 셋에 아들 하나 자녀를 두었다. 큰딸은 약학대학 박사과정, 둘재딸은 간호대 4학년, 셋재딸은 의대 재학중이며 막내 아들은 고3이다.

▲ 박흥식 사장
8대 회장을 지낸 박흥식 사장은 91년도에 부모님 초청으로 도미했다. 그 이전에는 충무로에서 잔뼈가 굵은 20년 경력의 광고전문가(신문, 광고, 잡지 등)다. 미국 와서도 광고일을 하고 있다. 서귀포에서 출생했으나 부친이 군인이어서 강원도, 인천, 동두천, 의정부 등 전국을 돌아다니며 생활하였고, 실제 제주생활은 별로 경험이 없다. 부친(박효경)은 함흥 출신으로 6·25 때 사관학교 출신이다. 제주도에 와서 모친을 만나 결혼했고, 대전에서 경찰 생활도 했었다. 현재 두 아들을 두고 있는데 첫째는 사업을 이어받고 있고, 둘째는 대학 3학년이다.

박정렬(여)씨는 서문통 출신이다. 경주 출신인 남편과 함께 왔다(제주출신 아니지만 제주도민회 일이라면 남편은 적극 후원한다고). 탐라서적 윤사장이 형부란다. 오빠인 강용식 씨는 전문대 토목과 교수다. 마침 필자 앞에 박정렬씨와 고근찬 회장 사모님이 앉아 계셔서, 두 분과 얘기를 나누었다. 두 분의 얘기를 요약하면 이렇다.

▲ 오랜만에 만나 시카고 도민회 식구들의 회식장면. 맨 뒤 마주보고 있는 이가 김병석 교수
2세들에게 제주도민이란 정체성을 제공해 줄 수 있는 프로그램 절실

“점점 도민회에 참석하는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 이는 이민 1세대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나마 이어지는 도민회 행사에 다음 세대(2~3세대)들이 참여해야 하는데 이게 어렵다. 이들에게 ‘너희들은 한국 사람’이란 생각을 유지시켜 줄 수는 있지만, 이를 뛰어 넘어 ‘제주출신’이라고 자각시키기는 더 힘들다.”

중요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이 얘기는 시카고 만의 얘기가 아닌, 미주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교민사회의 공통된 문제가 아닌가 한다. 그렇다면 해법은 없는 것일까? 그들이 직접 해법을 내놓는다.

“이민 2세는 귀중한 자원이다. 이들을 제주인이라는 자각을 할 수 있게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한국 속에 제주를 알릴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달라. 이들을 오가나이즈 할 수 있는 능력이 제주도에 필요하다. 초청하여 강연하던지...여기 애들은 미국 애들과 똑같다. 엄청난 국가적 자산이다. 정책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많은 이들을 초청하는 것 필요하다. 1인당 2천불 비용이 든다 해도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다. 그 이상 쓰고 가기도 하고, 그들의 아이디어를 손쉽게 제공받을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들의 주장은 단지 2·3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향토학교’ 수준이 아니다. 이미 미 주류사회 각계로 진출한 제주출신 2세들을 대상으로 한 팸투어 형식의 프로그램을 얘기하는 것이다. 1세들은 미국에 와서 생존을 위해 낯선 이국땅에 뿌리 내리기 위해 죽어라고 일을 하면서도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2세들에 대한 교육에는 철저할 정도로 집착했다.

이 과실을 누가 공유할 수 있는가. 그들을 어렵게 키워준 부모인 1세들일까? 그렇지 않다. 이들이 한국인이며 제주인이란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미국인으로 생활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제주인이란 정체성을 심어줄 수만 있다면, 그들이 최소한 고향 제주를 위한 인적자산으로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런 점에서 앞의 시카고 교민들의 조언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더 늦기 전에...   

후기) 시카고도민회는 현재 ‘재외제주도민회총연합회’에 가입되어 있지 않다. 창립한지 20년이 되는 도민회 조직임에도 미가입 상태라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고회장에 따르면 가입비 문제와 재외도민회총연합회 측의 적극적 가입권유가 없었다는 이유를 든다. 아마도 총연합회 측과 연락상의 혼선이 있는 것 같으니, 총련 사무국에서는 적극적으로 권유하여 가입시키는 게 좋을 듯하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