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생명 앞에서 ‘겨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 김동현 제주민예총 이사장·문학평론가

누군가는 '겨우 나무 몇그루'를 베어냈을 뿐이라고 한다. 제주시가 제성마을 앞 도로확장공사 과정에서 40년생  이상의 벚나무들을 베어내 논란이 되고 있다. 기후위기가 당장 눈앞에 와있다. 이런 '겨우'의 행위가 무신경하게 반복된 결과다. / 사진=제주참여환경연대 
누군가는 '겨우 나무 몇그루'를 베어냈을 뿐이라고 한다. 제주시가 제성마을 앞 도로확장공사 과정에서 40년생  이상의 벚나무들을 베어내 논란이 되고 있다. 기후위기가 당장 눈앞에 와있다. 이런 '겨우'의 행위가 무신경하게 반복된 결과다. / 사진=제주참여환경연대 

나무 몇 그루 잘랐을 뿐이라고 한다. 길을 넓혀야 했고, 통장의 동의도 받았다고 한다. 행정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겨우 나무 몇 그루’ 베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은  ‘겨우 나무 몇 그루’가 아니다. ‘겨우 나무 몇 그루’였다면 주민들이 이렇게 분노하지 않았다. 제주국제공항 확장과장에서 쫓겨난 마을 사람들이 정착한 곳이 제성마을이었다. 일제 시대에는 정뜨르 비행장 공사로, 몰래물에서는 다시 공항 확장공사로, 그리고 일부는 하수종말처리장 공사 과정에서 삶의 터전을 잃고 제성마을로 이주했다. 세 번이나 쫓겨났지만 한 번도 그들의 이주에 대한 사과를 받아보지 못했다. 

소설가 오성찬이 쓴 《제주토속지명사전》에는 사라진 마을 몰래물의 지도와 이름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구린질, 서난질, 소낭목, 뜽돌거리, 당할망, 섯빌레.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이름들을 뒤로 하고 마을 사람들은 제성마을로 스며들었다. 제성마을 왕벚나무는 사라진 이름들의 묘비이자, 마을의 역사를 빼앗긴 사람들의 기억이었다. 

철학자 박동환은 《X의 존재론》에서 ‘영원의 기억’이라는 개념을 설명한다. 그것은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몸속 깊은 곳에 간직하고 있는 기억이자, 현재의 시간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영원의 재현이다. 그의 사유는 기억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과 함께 모든 생물이 우주 빅뱅의 순간부터 지금까지 지구 역사의 전 과정을 실체적 몸으로 기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적은 다른 데 있지 않다. 겨우내 죽어 있던 나무가 꽃을 피워내는 순간이야말로 자연의 순환이 주는 기적이자, 축복이다. 

봄이면 어김없이 피는 꽃을 보면서 쫓겨난 사람들은 이주의 아픔을 곱씹었다. 꽃이 피듯이  마을 사람들의 삶도 피어나기를 소망했다. 그것은 이제는 세상을 떠난 남편의 흔적이었고 잊힌 이름들의 기억이자, 고단한 삶의 위안이었다. 

지금은 제주국제공항이 들어서 사라져 버린 몰래물. 생명 앞에서 '겨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기억을 자를 권리는 없다. 사진 오성찬 제주토속지명사전 발췌.
지금은 제주국제공항이 들어서 사라져 버린 몰래물. 생명 앞에서 '겨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기억을 자를 권리는 없다. 사진 오성찬 제주토속지명사전 발췌. / 김동현

나무가 잘렸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도로를 넓힌다는 이유에서였다. 기억을 뽑아 아스팔트를 깔았다. 단 몇 분의 속도를 위해 수십 년, 수백 년의 기억이 사라져버렸다. 행정은 동의 과정을 거쳤기에 불법이 아니라고 했다. 사과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형식적 절차의 공정성이 실질적 공정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외면하고 있다. 

마침 제주시정을 책임지는 이가 안동우 시장이다. 농민운동가 출신으로 원희룡 도정에서 정무부지사를 거쳐 제주시장이 되었다. 안동우 시장은 ‘소통으로 여는 행복한 제주시’를 내세우고 있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책 결정과정에서 시민과의 소통을 최우선으로 하겠다’고 여러차례 밝힌 바 있다. 공허한 호언장담일뿐이다. 시장 면담도, 사과 요구도 안동우 시장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다 알다시피 안동우 시장은 농민운동가 출신이다. 농민운동은 자본과 개발의 논리가 땅을 위협하고 사람의 생존을 파괴한다는 자각에서 비롯됐다. 국가-자본의 개발논리에 소외되어온 농민의 삶을, 농민의 역사를 이 땅에 새겨 넣기 위한 선언에서 시작되었다. 시작을 기억한다면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겨우’라는 무신경은 안동우 시장 본인의 삶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문학평론가이자 생태운동가인 김종철 선생은 생전 “근원적인 아름다움의 복원”을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개발이라는 폭력 앞에서, 자본의 탐욕 앞에서 인간과 생명의 아름다움을 되찾기 위한 생태적 삶의 가능성은 ‘환경 근본주의자’들의 한가한 상상이 아니다. 기후 위기가 현실이 되고 있는 오늘, 우리가 던져야 할 필연적 질문이자, 운동이다. 
생명 앞에서 ‘겨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기억을 자를 권리는 없다.  
<사진 오성찬 제주토속지명사전 에서 발췌>

필자 김동현은?

문학평론가. 제주에서 태어났다. 제주대학교 국문과와 한신대 문예창작대학원, 국민대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지은 책으로는 《제주, 우리 안의 식민지》, 《제주, 화산도를 말하다》(공저), 《재일조선인 자기서사의 문화지리》(공저) 등이 있다. 한때 지역신문 기자로 일하기도 했다. 지금은 제주, 오키나와를 중심에 두고 지역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제주 MBC, 제주 CBS 등 지역 방송 프로그램에서 시사평론가로, 제주민예총에서 정책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고, 제주의소리 [평화예술칼럼] 필진을 맡고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