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충석의 칼럼과 에세이사이] (10) 상식은 역사를 움직이게 한다 / 고충석 제주대학교 명예교수·전 총장

지난 1일 민선 8기 오영훈 도정이 출범했다. 그의 취임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향후 원활한 도정 운영에 대한 기대를 걸어 본다. 그간 민선 자치시대가 열리면서 제주도지사는 화려한 경력을 가진 사람들의 등용문이었다. 중앙정부에서 고위 공직에 있다가 지사로 금의환향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신구범, 우근민 지사가 그렇고 현 정부에서 국토부 장관으로 발탁된 원희룡 지사가 그렇다. 

이에 반해 김태환 지사는 9급 공무원으로 시작해 도백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오영훈 지사 또한 신화를 썼다고 할 수 있는 경력을 갖고 있다. 지방자치 의원에서 시작해 국회의원에 당선되더니, 여력을 모아 도지사 자리까지 거머쥐었으니 말이다. 지방의원 출신이 도지사까지 오른 경우는 매우 드문 경우이다. 

그의 출발은 미약했지만, 특유의 겸손한 자세로 성실성, 친화력이 시너지 효과를 내 오영훈을 도백이라는 영광의 자리로 안내했다고 생각한다. 그가 초심을 잃지 않고 그간의 현실정치 경험을 바탕으로 능력을 충분히 발휘해서 오영훈 도정이 반드시 성공하길 바라마지 않는다.

청년 시절부터 도의원을 거쳐 국회의원을 지낸 오 지사는 정치의 영역에서 활동해왔다. 아쉽게도 그의 행정 경험은 전무하다. 이는 행정의 수장인 제주특별자치도지사로서 상당한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가 이 약점을 어떻게 잘 극복해낼지는 걱정 반, 기대 반이다. 

정치와 행정은 어떻게 다른가? 독일의 사회사상가인 막스 베버(Max Weber)는 ‘정치는 열정(passion)이고, 행정은 합리성(rationality)’이라고 갈파했다. 정치는 합리성을 초월한 열정에 기초하는 행위이다. 열정은 일단 합리적 계산이 들어가면 대체로 약화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교수나 지식인 출신 정치인들이 대체로 정치의 장(fields)에서 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도태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치인은 1+1=2뿐 아니라 10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는 용기나 뻔뻔함이 있어야 한다. 망치로 국회 문도 부수고, 진영논리를 우선해서 소신이나 과학적 결론도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는 것이 정치판이다. 과거나 현재나 의원 발의로 제정된 법률이 부지기순데 그 법률에는 현실 적합성이 떨어져서 사문화된 경우가 많다. 

그 예를 탈원전 정책과 가덕도 신공항 문제에서 찾아보자. 전 세계 수많은 나라에서 원전을 가동한 지 60여 년이 지났지만, 원전에서 배출되는 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하는 기술은 아직 개발하지 못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체르노빌의 목소리에서』는 원전 사고로 발생하는 심각하고도 처절한 기록을 생생히 전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탈원전으로 가자는 데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탈원전 좋다. 지구촌이 함께 가야 할 길이다. 그러나 전기료 폭등 등 아무런 후속대책도 없이 덜컥 내놓은 것은 곤란하다. 탈원전은 원전의 선진국가라고 하는 독일이나 프랑스에서도 장기 과제지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단기 과제가 아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은 현실을 도외시한 정책이 아니었느냐고 생각한다.

가덕도 공항도 마찬가지이다. 국내 최초의 해상 공항이라는 목표 아래 공사 기간 9년 8개월 동안 총사업비 13조 7천억 원을 들여 2035년 개항 예정이다. 그러나 가덕도 공항은 접근성도 쉽지 않고 가용면적이 좁은 데다 해군기지 및 각종 터널과 교량으로 구성된 구조물의 존치 여부, 태풍의 길목이라는 위치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하지만 입지선정평가 절차가 무시된 채 엄청난 건설비용과 환경파괴가 명약관화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판단이 개입되어 국책과제로 선정되었다. 

이런 식으로 가다 보면 국회의원 지역구마다 공항이 하나씩 생길 지경이다. 부·울·경 동남권에서는 김해공항 하나로 하자고 박근혜 정부에서 이미 결정된 사항 아니었던가? ‘저 큰 산도 우리들의 맨손으로 옮길 수 있다’라는 자세로 설파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정치인이다. 표만 생각하는 정치인들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오도된 열정도 열정이다. 그러나 국민은 이 오도된 열정이 낳은 문제로 얼마나 고생해야 하나.

그러나 원론적으로 행정은 정치와는 속성이 다르다. 행정은 합리적 계산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아무리 좋은 정책추진도 선례나 근거 법률, 동원 가능한 재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과감히 접어야 한다. 정책목표를 추진하는데 비용 편익 분석을 상당히 중요시한다. 여러 가지 대안적 정책 중에서 수단 비용은 적게 들고 편익이 큰 정책 수단을 선택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도출된 합리성을 기능적 합리성이라고 한다. 그래서 기능적 합리성 제고가 행정의 제1 덕목이다. 그러나 현실의 공무원들이 행정의 이러한 본령대로 움직이고 있는가? 나는 그렇지 않은 공무원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기능적 합리성 제고는 고사하고 권력이나 이권의 노예로 전락한 공무원들도 많다. 

도지사는 지역의 최고 수장이다. 정치인 출신 지사는 정치영역에서 오래 있다 보면 행정의 속성을 우습게 보거나 무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도지사는 정치인으로서 숲을 보는 거시적 안목을 갖추고 숲을 구성하는 개별 나무의 특성도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숲을 보는 능력은 정책적 선도력을 말하는 것이고, 나무의 속성을 읽는 기술은 공무원 조직을 통제하고 장악할 수 있는 역량을 말한다. 정책적인 선도력이나 공무원 조직을 장악하지 못하면 관료들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고 관료들이 하자는 대로 끌려다니다가 임기 4년이 끝나버리고 만다. 빈 배로 왔다가 빈 배로 돌아가는 꼴이다. 

오영훈 지사 앞에 가로 놓여 있는 난바다 같은 정책적 딜레마가 한둘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시급한 문제는 제2공항 문제다. 나는 제2공항 문제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생각도 없고 그럴 수 있는 전문성도 없다. 단지 이 땅에 사는 제주도민의 관점에서 상식적인 얘기를 얘기해보고자 한다. 정책에서 상식은 하나 마나 한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상식처럼 역사를 움직이는 힘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첫째, 가장 근본적인 철학적 문제로 제주가 지향하는 가치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제주는 그동안 유네스코 3관왕이니 세계환경수도이니 하며 그쪽으로 개발의 방향을 추구해 왔다. 세계도 제주를 환경의 보물섬이라고 극찬해왔다. 제주의 자연은 그야말로 황금 덩어리다. 한라산과 오름, 바다가 어울려 펼쳐지는 교향곡이 제주다. 제주의 후대들은 이러한 제주의 자연이라는 원금을 잘 굴려서 그 이자로 살아가야 한다. 제주의 자연을 원천 삼아 경제적 소득을 창출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업에 있어 제1의 금과옥조는 원금을 까먹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제주의 자연 자원은 보존이든, 보전이든 잘 지키고 선용하는 지혜가 중요하다. 거기에 제주의 미래가 있다. 이른바 환경 이자론 이다. 나는 이를 자연 자본주의라고 명명하고 싶다. 어떻게 하면 제주 자연의 본태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관련 산업을 일으키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제주의 입도객이 하루에 수천 명씩 밀려오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더욱이 코로나 이후 일과 휴식을 병행하는 워케이션 (workation)이 새로운 근무 형태로 자리 잡은 문명사적 전환기를 맞아 제주의 가치는 더욱 빛날 것이다. 따라서 제주의 자연환경 등에 엄청난 충격을 줄 제2공항 문제는 아무리 신중하게 고려하고 접근해도 부족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제2공항은 총면적 545만㎡ 규모이고 주위에 들어서게 될 공항도시(air city)까지 고려하면 제2공항의 건설에 따른 제주의 자연과 문화 훼손 규모는 가늠하기조차 어려울 것이다.

둘째, 해군기지 추진 때로 돌아가 보자. 주민을 어떻게 설득하느냐의 문제도 난제였지만 이에 못지않게 장소를 어디로 할 것이냐도 중요한 문제였다. 화순항에는 이미 화력발전소가 들어서 있고 ‘군사작전 항’으로 지정된 바 있으며 또 ‘해양경찰 항’으로도 사용되고 있어 화순항을 선정했으면 강정보다는 훨씬 기지 추진이 수월했을 것이다. 화순항은 수심도 깊고 산방산으로 지형이 가려져 있어 자연적으로도 천연 요새화되어 있는 점이 군사 작전상으로 중요한 이점이다. 이러한 화순항을 제치고 1900여명이 사는 강정마을의 주민 87명만이 참석한 임시마을총회에서 만장일치 박수로 통과된 유치 결정을 근거로 강정항을 해군기지로 선정했다. 제주도민들이 ‘일(一 ) 강정’이라고 부르던 아름다운 강정천 유원지와 해군기지는 양립 불가능한 부조화다. 그럼에도 해군기지 추진은 국가안보라는 명분을 앞세워 강행돼 겉으로는 부조화가 수용된 것처럼 보이지만, 15년 넘게 지금도 마을 내부는 여전히 부조화와 갈등이 남아있다. 

최근 제주 제2공항 문제도 이와 비슷한 문제를 노정하고 있다. 제2공항을 추진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여러 차례 여론조사를 했다. 결과는 대체로 제2공항 반대 여론이 우세했다. 이제 더는 도민갈등을 일으키지 말고 방침을 선회해서 기존 제주공항을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고 도민들의 중지를 모아야 한다. 아무리 국책과제라도 해당 주민들이 강하게 반대하면 그 사업을 추진하기가 어렵다. 그것이 지방자치 시대의 정신이다. 

기존 공항 확장을 위한 다양한 방법론적인 어젠다를 발굴하여 일일이 시뮬레이션을 해보는 과학적 분석 노력이 요구된다. 바다를 매립하는 방법, 일부는 바다를 매립해서 매립한 바다와 육지를 연결해서 부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전적으로 육지 땅을 수용해서 공항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등 여러 가지 대안이 있을 수 있다. 각 대안에 따른 공간적 구간도 설정해서 구간에 따른 비용 등을 시뮬레이션 해보면 적절한 대안이 도출될 것이다. 

지금 거론되는 제2공항 부지건설에는 화폐적 비용보다 주민 간 갈등, 주민설득, 사업추진 기간, 자연 훼손 등의 비화폐적 비용이 엄청나게 소요될 것이다. 프랑스의 ‘파리공항관리공단 엔지니어링’(ADPi) 등 기존 공항 확장론자들의 논거도 모두 공개하고 검증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었다면 공항 확장 건설 문제쯤은 거뜬하게 해결했을 것이다. 한국공항공사나 한국 토목학회 등과도 잘 의논한다면 거기에 길이 있을 것이다. 정책당국자들은 선험적으로 현 공항 확장은 비용이 많이 들 것으로 예단할 그것이 아니라, 좀 더 고민하고 마음을 내려놓고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나 같은 문외한이 보기로는 기존 제주공항 확장 비용이 건설에 따른 정치적 비용, 환경훼손 등의 비물질적인 비용까지도 고려하면 제2공항 건립 비용보다 훨씬 적게 들 것으로 생각한다. 

끝으로 제주도의 경우 공항 하나로 그 원칙을 확실히 세워야 한다. 제주도의 환경용량(carrying capacity)을 고려해보면 그렇다. 제주도의 여건상 수용 가능한 인구를 몇 명으로 할 것인가를 설정해야 한다. 이제 제주도는 조건 없는 물량적 성장보다 자연을 보전, 그 가치를 활용하면서 성장하는 자연 자본주의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할 할 때이다.

관광객이 밀려올 때마다 공항을 지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지금은 공급관리보다 수요관리를 더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유명한 관광지인 베네치아, 벤쿠버 등도 밀려오는 관광객을 적절히 조절하기 위한 수요관리 정책에 고심하고 있다. 제주의 경우도 입도세 형태의 세금을 무겁게 관광객들에게 부과하고 항공편을 대체할 수 있는 교통수단도 고민할 필요성이 요구된다. 하와이는 연간 입도객이 800만명 안팎에 불과한데 주민 1인당 지역 소득은 6만 불이 더 된다. 제주의 경우는 입도객이 연간 1500만명을 훨씬 상회하고 있지만  도민 소득으로 보면 전국에서 최하위권이다. 그간 관광객이 홍수처럼 몰려왔지만, 도민들은 수입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지역은 번영했지만, 도민들의 주머니 사정은 정체 상태다. 제주도도 어쩌면 과잉 관광이 문제다. 이제 고민해야 한다. 양적 선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지역의 번영뿐만 아니고 주민의 번영도 같이 도모하는 쪽으로 제주개발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오영훈 도정은 앞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틀을 짜야 한다. 거기에 도지사로의 승부를 걸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도지사로서의 운명이기도 하고 제주의 운명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정진과 성취를 기대해본다.

고충석은? 

現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제7대 제주대학교 총장, 제주국제대학교 초대 총장, 제주발전연구원장 등을 역임했다. 제주를 대표하는 원로학자로서 칼럼과 에세이를 넘나드는 노마지지(老馬之智)의 조언을 격주로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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