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홍의 교육春秋] (15) 만5세 입학과 특별한 제주교육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지난달 29일 교육부장관이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하면서 불거진 만 5세 입학 논란이 열흘 만에 교육부장관 사퇴로 정리되는 모양새다.

지난 열흘 동안 한국사회 뉴스의 중심에 ‘만 5세 입학’ 논란이 있었다. 논란은 전문가들의 분석과는 별개로 뿔난 민심으로 정리되었다. 만 5세 입학 정책을 저지시킨 것은 뿔난 민심을 주도한 부모들의 힘이 결정적이었다. 만 5세 입학 정책에 대해 과감하고 단호하게 대응하는 부모들의 모습을 보면 그간 눌려온 교육정책에 대한 불만이 이번 사안을 계기로 폭발한 모양새다. 성난 부모들의 절박한 마음을 갓 취임한 막강한 권력의 대통령도 넘지 못했다. 

최근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만 5세 입학’ 논란은 교육이 무엇인지 묻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대선과정에서 공정이라는 가치를 내세워 내신보다는 시험을 강화하는 방향을 내세웠고 국민적 지지를 받았다. 국민들의 지지는 초중등교육을 입시를 위한 도구로 활용하라는 동의가 아니라 대학 입학 시험에서 우리 아이들이 불이익을 받지않도록 조치를 취해달라는 바람이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차별과 특혜가 없는 공정이라는 가치를 효율성이라는 경쟁 논리와 등치 시키며 국민을 우롱하기 시작했다. 효율성을 기반으로 한 경제 지상주의 정책은 고등교육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국가 경제를 명분으로 반도체 관련 수도권 대학들의 정원을 확대하겠다며 대학을 복합 학문 공간에서 단순한 취업 학원으로 전락시키겠다고 천명했다. 정책의 실효성 여부와 별개로 지방대학의 반발을 비롯해 대학원의 경우 정원 채우기 힘들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윤석열 정부는 거침없이 유·초·중등학교에 갈 예산을 빼 고등교육에 지원하겠다는 예산계획까지 발표했다. 예산을 빼앗긴 전국 교육감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고등교육을 취업 학원으로 전환하겠다는 정책은 흔들림 없었다.

힘을 받은 정부는 한발 더 나아가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만 5세로 낮추겠다고 발표했다. 여기에서 아이들은 미래의 '산업인력'으로 표현되었다.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인구감소에 발맞춰 안정적인 양질의 산업인력을 공급하기 위해 조기교육을 시키겠다는 것이다. 교육을 기업을 위한 도구로 만드는 전략의 완성을 위해 만 5세 입학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시도교육감의 반발이 아니라 전국민적 저항에 대해 예상하지 못했다. 이 반발에는 올바른 교육에 대한 열망이 담겨있기도 했다.

지난 7월 29일 윤석열 대통령은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으로부터 교육부 업무보고를 받았다. ⓒ제20대 대통령실
지난 7월 29일 윤석열 대통령은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으로부터 교육부 업무보고를 받았다. ⓒ제20대 대통령실

교육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다. 학교에서는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교육을 지향한다. 양질의 산업인력이 되지 못하는 아이들을 효율성의 논리로 학교에서 배제할 수 없다. 발달이 늦은 아이든 학업에 뒤처진 아이든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학교에 다닐 권리를 지닌다. 그렇게 누구나 행복하게 자랄 수 있도록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국가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이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아이들이 행복하게 차별받지 않고 자랄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달라는 것이었다. 화제가 되고 있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가치는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소외받지 않는 사회를 구체적 이야기로 풀어냈기 때문이리라. 지금 우리의 획일적 가치로 사람을 재단할 수도 미래를 예단할 수도 없다. 다양성과 존중이 가지는 가치는 더 설명이 필요없다. 

지난 주말 종합경기장 실내수영장에서 제주도 수영대회가 열렸다. 대회에서 가장 빠른 선수들이 박수를 받았지만 가장 늦게 뒤처진 선수들은 더 뜨거운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1등이 아니라 결실을 맺는 개개인의 노력에 대한 찬사였다. 세계기록에 근접하지 못하더라도 노력하는 모습만으로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모두가 1등을 할 수는 없다. 

교육과 관련한 논란은 늘 제자리걸음이다. 기초학문에 투자해야 세계적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거나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로 키우기 위해선 기업 맞춤형 학과를 만들어야 한다는 식의 상반된 논리가 늘 상존한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진보교육감이 강조하는 창의성 교육과 보수교육감이 강조하는 학력 강화는 진보와 보수의 가치에 적합한 것인가? 보수는 창의성을 도외시하고 진보는 학력을 천시하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진보와 보수로 재단할 수 없는 ‘교육’은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존재한다.

제주도는 제주특별법 제216조 학교 및 교육과정 운영의 특례에 따라 별도의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다. 초등부터 고등학교까지 총 수업시간의 절반까지를 제주의 상황에 맞게 재구성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동법 시행령 제46조) 대학 입시라는 장벽 앞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넓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도민사회의 지혜를 모은다면 제주도만의 특별한 교육과정을 구성하고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를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교육에 대한 도민적 관심이 교육부 장관의 사퇴로 사라지지 않고 제주교육의 방향 마련을 위한 논의로 이어지기를 바라본다. 국가 교육정책에도 흔들림 없는 제주만의 특별한 교육정책을 함께 만들어가길 바란다. 


# 안재홍

안재홍은 간디학교를 비롯한 대안교육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왔다. 제주에서 탈학교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잠시 운영하기도 했다. 대안교육에 대한 관심을 학교 밖에서 학교 내로 옮겨와 다양성이 존중받고 자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의 교육이 자리잡길 바라고 있다. 필자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라도 시작해보자는 고민으로 2016년 10월 애월교육협동조합 이음을 설립해 애월지역 마을교육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 기후위기가 두 딸의 삶을 앗아가지 않게 하려면 뭘 해야 하나 고민하며 환경과 평화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2020년부터 애월중학교에서 기후위기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다 지금은 귤 농사지으며 휴학 중이다. 제주의소리 '교육春秋' 칼럼을 통해 독자들과 격주로 만난다. KBS제주 TV 시사프로 '집중진단' 진행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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