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주민발의 ‘보전지역조례’ 처리 차일피일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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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絕對)는 비현실적이다. 실제로는 구현하기 거의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어찌 아무런 조건이나 제약이 붙지 아니할 수 있겠나. 종잡기 힘든 우리네 인생을 논할 때는 더 그렇다. 

개인적으로도 ‘절대’를 입에 담았다가 낭패를 본 적이 많다. 그 말을 쓰기에는 내 자신의 식견과 경험이 편협하기 이를데 없다. 모든 게 변화하는 세상의 이치와도 맞지 않다. 지금은 마음 속 일종의 경계어로 삼고 있다. 

인간은 자신이 겪은 바에 따라서 사물이나 대상을 평가하기 십상이다. 그 인식의 틀을 깨기가 쉽지 않다. 따지고 보면, 우주만물에서 인간 자체가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가. 절대자라는 극단의 반대 용어도 그래서 나왔는지 모른다.  

그 범접하기 어려운 수준의 ‘구호’를 현실에서 채택한, 개발과 보전의 자취가 31년 전 제주에 새겨졌다. 이름하여 ‘절대’보전지역이다. 1991년 12월31일 제정된 제주도개발특별법에 이 용어가 처음 등장했다. 

당시만 해도 절대보전지역은 절대로 개발해서는 안될, 원형 그대로 보전해야할 지역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일찍이 법적 용어로 ‘절대’가 들어간 경우가 거의 없기도 했다. ‘구호’라는 표현을 쓴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별법이 만들어진 것은 외지 자본의 엄습에 대한 두려움이 일던 시기였다. 토지 강제수용권 등의 도입으로 이러다간 제주도 땅이 남아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팽배해지기 시작했다. 도민적인 반대 투쟁이 벌어졌다. 양용찬 열사가 분신으로 항거한 것도 이 때였다. 

따라서 절대보전지역은 개발은 하되 지킬 곳은 지키겠다는, 특별법 반대 여론을 의식한 측면도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배경을 따지자면, 충돌하는 두 개의 가치, 다중의 의미가 서려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그동안 절대라는 구호는 어느정도 실현되었는가. 아니다. 다분히 구호에 그친 게 사실이다. 개발 광풍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보니,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다. 이제 누구도 절대보전지역을 과거처럼 신성시하지 않게 되었다. 

도민의 대의기관인 도의회의 책임이 크다. 예나 지금이나 절대보전지역을 지정하거나 변경(해제)할 때는 도의회 동의를 얻게 되어있다. 제주를 제주답게 가꿔가는데 있어서 도의회 식 자기결정권이라고 할까.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흑역사가 여러차례 있었다. 

오랜기간 지역 최대 현안이었던 해군기지 관련 절대보전지역 변경(해제) 동의안 처리가 대표적이다. 13년 전의 일이다. 결과적으로는 이 동의안 처리가 지난한 갈등의 씨앗으로 작용했다. 

급작스런 투표 방식 변경, 일사부재의(一事不再議) 원칙 위배 논란, ‘손바닥 개회’ 선언, 이의 제기 무시, 고성과 몸싸움 등 파행 끝에 날치기로 처리됐다. 

이후 강정마을 주민들은 소송으로 대응했다. 또 민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저지 실패에 대한 반성과 함께 절대보전지역 해제 동의 취소 의결을 이끌어내기도 했으나 이미 버스는 떠난 뒤였다. 

동의안 처리 당일, 야당 의원들은 ‘제주도의회 역사상 가장 부끄러운 날’로 규정했다. 

흑역사까지는 아니어도, 도의회가 자기결정권 포기 논란에 휩싸인 경우는 또 있다. 

2019년 7월 ‘보전지역 관리에 관한 조례’(보전지역조례) 개정안이 부결된 사례가 그것이다. 주민청구에 의해 발의된 조례 개정안은 보전지구(지하수자원, 생태계, 경관)의 각 1등급지역에 설치할 수 없는 시설에 항만과 공항을 추가한 게 핵심이다. 

각 1등급지역을 절대보전지역과 같은 수준으로 관리하자는 취지였다. 보전 가치가 거의 동등하므로 잣대를 통일시키자는 뜻이기도 했다. 

당초 의원 23명이 공동 발의자로 이름을 올리면서 호기롭게 출발했지만, 민주당의 분열로 의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했다.

일부에선 제주 제2공항 건설을 막기위한 꼼수라고 의심했지만, 대규모 기반시설 설치자체를 원천 봉쇄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전에 보전지역 해제 동의 절차를 밟으면 되기 때문이다. 환경파괴를 막기위한 유력한 방어 수단을 맥없이 놓아버렸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날에 목 놓아 우노라” 

표결 직후 ‘시일야방성대곡’으로 폐회사를 대신한 의장의 한마디가 진한 여운을 남겼다. 

3년 전 부결된 조례를 새삼 거론하는 것은 같은 내용의 조례 개정안이 다시 주민청구를 통해 발의되어서다. 주민 1000여명의 서명에 이어 조례발안심사위원회를 거쳐 지난 8월26일 환경도시위원회에 회부됐다.

그러나 석달 가까이 표류하면서 상임위 상정 여부도 결정하지 못했다. 진중한 것인지, 처리 이후 닥칠 파장을 우려한 정치적 부담 때문인지 여태껏 뜸을 들이고 있다.

도정을 감시, 견제하는 추상같은 모습을 언제 보았는가 싶다. 민의를 받드는 도의회 본연의 목소리가 그립다.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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