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연구소 학술대회, ‘침묵의 기억, 4.3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기조강연

“끊임없이 4.3을 기억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상기하는 차원을 넘어 미래를 위한 일입니다. 기억을 피하는 것은 폭력의 현장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역사를 되돌리지 않기 위해 우리 모두는 끊임없이 기억하고 계속해서 물음을 던져야 합니다.”

제주4.3에 대한 기억과 전승, 과거사 청산 등 여전히 쌓여있는 4.3의 과제를 풀어내기 위해 어떻게 연구해나갈 것인지 논의하는 학술대회가 열렸다.

광기 어린 국가의 잔인한 폭력에 셀 수 없는 도민들이 희생된 제주4.3. 특별법을 개정하고 배보상이 이뤄지는 등 해원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수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사단법인 제주4.3연구소는 4.3 제74주년을 맞아 25일 오후 2시부터 제주시 아스타호텔에서 ‘4.3연구의 진전을 위한 과제’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사단법인 제주4.3연구소는 4.3 제74주년을 맞아 25일 오후 2시부터 제주시 아스타호텔에서 ‘4.3연구의 진전을 위한 과제’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문창우 천주교 제주교구 교구장은 ‘침묵의 기억-4.3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를 주제로 기조강연을 진행했다. ⓒ제주의소리
사단법인 제주4.3연구소는 4.3 제74주년을 맞아 25일 오후 2시부터 제주시 아스타호텔에서 ‘4.3연구의 진전을 위한 과제’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문창우 천주교 제주교구 교구장은 ‘침묵의 기억-4.3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를 주제로 기조강연을 진행했다. ⓒ제주의소리

이날 학술대회에서 문창우 천주교 제주교구 교구장(주교)은 ‘침묵의 기억-4.3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를 주제로 기조강연에 나섰다. 

문 주교는 “이 땅에 태어나 사는 것만으로도 우리 모두는 피할 수 없이 74년 전 그날의 신음을 듣는 자리에 초대받은 것”이라며 “이를 망각한다면 우리조차도 언제든 폭력자로 변할 수 있는 소지를 안고 사는 것”이라고 운을 뗐다.

그는 “하느님은 아벨을 죽인 카인에게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다. 이는 형과 아우가 한 부모로부터 태어나 끊을 수 없는 피의 관계로 맺어져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질문”이라고 했다.

이어 “우리는 다시는 폭력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이처럼 ‘네 형제는 어디 있느냐’고 질문을 자주 던져야 한다”며 “폭력의 순간을 잊으려고만 할 때, 형제를 희생 제물로 삼으려는 폭력의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4.3을 기억하는 것은 희생자들을 희생자로만이 아니라 인간으로 기억하기 위해서”라면서 “우리가 4.3의 희생을 기억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 사회가 있는 자 중심이 아니라, 인내를 가지고 약한 자의 편에 서서 그들의 신음소리를 듣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진정 4.3정신을 살리기 원한다면 우리 마음 안에 꺼져가는 희생심의 불꽃을 다시 살려야 한다”며 “우리가 4.3을 잊거나 피한다면, 평화와 일치와 화해와 정의를 부르짖는 소리가 온 사회를 덮는데도 진정한 평화는 멀어질 것이고 이는 우리의 희생심이 사라지고 있음을 드러내는 표지일 것”이라고 피력했다.

문 주교는 4.3을 기억하기 위해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를 먼저 살피고 반성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오염된 언어로는 4.3을 올바로 기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언어가 오염돼있으면 희생 앞에 말다운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다고 했다. 

사단법인 제주4.3연구소는 4.3 제74주년을 맞아 25일 오후 2시부터 제주시 아스타호텔에서 ‘4.3연구의 진전을 위한 과제’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개회사 중인 허영선 제주4.3연구소장. ⓒ제주의소리
사단법인 제주4.3연구소는 4.3 제74주년을 맞아 25일 오후 2시부터 제주시 아스타호텔에서 ‘4.3연구의 진전을 위한 과제’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개회사 중인 허영선 제주4.3연구소장. ⓒ제주의소리

문 주교는 “희생자들 앞에서 그때의 일을 기억하고자 하는 우리의 염원이 진실이라면, 우리는 우리의 오염된 언어를 침묵시키는 법을 먼저 익혀야 한다”며 “침묵 속에서만 바르게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억은 침묵 속에서 이뤄지는 성찰”이라고 말했다. 

이어 저마다 내는 아우성 같은 소리 때문에 4.3의 희생과 죽음을 기억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어렵다며 듣기 위한 ‘침묵’을 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침묵의 근본은 들음에 있다. 가톨릭교회의 수도원에서나 피정 때에 침묵하는 것은 듣기 위해서”라면서 “침묵할 때 하늘의 음성이 들려오고, 조국을 향한 4.3영령들의 외침이 들려오고, 그들의 염원이 들려올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또 “우리가 4.3을 기억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침묵을 듣기 위해서”라면서 “지금 이 나라가 소통 불가능하게 보이는 것은 침묵의 소리를 듣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4.3을 기념하는 것은 4.3을 돌에 새겨 기념비적으로 찬양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매해 몇 주년을 따지며 기념행사로 반짝 기억하는 것은 어쩌면 4.3을 오히려 잊어가고 있다는 반증일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4.3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꺼리는 것은 모든 것을 정치, 경제논리로 흐려놓은 수준 낮은 사회 분위기 탓도 있지만, 4.3을 기억 속 과거의 한 조각으로 여기는 우리의 의식수준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문 주교는 “4.3이 역사의 기념물로 돌에 새겨진 기념일로만 기억될 때 우리의 미래는 닫혀버리는 것”이라면서 “이는 곧 4.3이 겪은 폭력이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음을 암시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기억하고 계속 물음을 던져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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