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붙은 제주4.3 명예회복과 배보상] (상) 특별·직권·유족 청구재심

2021년 3월23일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4.3특별법)’이 전면개정돼 같은 해 6월24일 시행됐다. 4.3특별법 전면개정 이후 첫 특별재심 사건이 2021년 12월1일 시작돼 검찰의 항고 논란을 거쳐 2022년 3월29일 ‘무죄’가 선고됐다. 후손들은 무죄 판결문을 제사상, 차례상에 올려 희생자의 명예 회복을 고했다. [제주의소리]는 2023년 설 명절을 맞아 1년 정도 진행된 제주4.3 특별·직권재심, 배보상 같은 후속절차의 성과와 과제 등을 두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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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관련 재심을 전담하는 제주지방법원 4-1부, 4-2부 재판부가 격주로 4.3 관련 재심 사건을 다루고 있다. 공판이 열리는 날이면 제주지법 201호 법정은 웃음과 울음이 교차하고, 무죄 선고가 나온 뒤에는 기쁨의 함성이 터져나오곤 한다. 

특별재심은 국무총리 소속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이하 4.3중앙위원회)’에서 희생자로 결정된 4.3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다. 4.3 희생자라면 형사소송법과 군사법원법 등 조항에도 불구하고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일반 재심에 비해 청구 기준이 대폭 완화돼 진행 절차가 쉽다. 

직권재심은 제1~2차 군법회의에 회부된 피해자 2530명을 대상으로, 검사 ‘직권’으로 청구되는 재심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희생자로 선정된 4.3 피해자는 모두 특별재심 대상이며, 직권재심은 군사재판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다. 직권재심 대상자 겸 특별재심 대상자가 있을 수 있고, 직권재심 대상자임에도 특별재심 대상자가 아닐 수도 있다. 더러는 특별재심이나 직권재심에 모두 해당하지 않는 4.3 피해자가 있을 수 있다. 

굳이 따지자면 4.3 관련 재심은 직권재심과 ‘유족 청구재심’ 2가지로 나뉜다. 유족 청구재심은 유족들이 직접 변호사를 선임해서 재심을 청구하는 경우다.

2가지(직권재심·유족 청구재심) 분류 중 희생자로 결정된 4.3 피해자는 일반 형소법에 따른 재심보다 다소 절차가 완화된 특별재심 혜택을 받는 셈이다. 

2023년 1월21일 기준 직권재심으로 명예가 회복된 4.3 피해자는 22차까지 611명(박화춘 포함)에 이른다. ‘제주4.3사건 직권재심 권고 합동수행단(단장 이제관, 합동수행단)’은 격주에 30명씩 직권재심을 청구하고 있다. 

또 같은 기간 총 10건의 유족 청구재심으로 126명이 명예를 회복했다. 

4.3특별법 전면개정에 따른 특별·직권 재심이 본격화되고 약 1년간 명예회복된 4.3 피해자 총 737명 중 736명이 특별재심 혜택을 받았다. 1명은 직권재심 대상임에도 평생 4.3 피해 사실을 숨긴 1927년생 박화춘 할머니 사례다. 

계속되는 역사적인 순간 속에도 오점은 있었다. 검찰의 ‘항고’로 인한 ‘사상검증’ 논란이다.

지난해 3월10일 검찰은 4.3희생자유족회가 지원·청구해 재판부가 재심 청구 사유가 있다고 인정해 개시를 결정한 특별재심 2건(총 14명)에 대해 항고했다. 재심 개시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취지다. 

당시 검찰은 “희생자에 대한 심사자료가 없는 상태에서 이뤄져 재심 심리 과정에서 법령상 필요한 절차를 충실히 갖춰 재심의 절차적 완결성과 정당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항고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검찰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도민사회에서는 전면 개정된 4.3특별법에 따른 특별재심 취지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거셌다. 

해당 사건을 넘겨 받은 광주고법은 검찰의 항고를 요목조목 반박한 뒤 기각했다. 검찰이 재항고를 포기하면서 검찰의 ‘항고’ 논란은 마무리됐지만, 검찰이 4.3특별법의 취지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다는 도민사회의 불안이 커졌다. 

불안감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재차 불거진 것이 ‘사상검증’ 논란이다. 이미 퀴퀴하게 묵어 수십년에 걸쳐 제주도민사회를 괴롭힌 ‘4.3 흔들기’의 단골 메뉴 중 하나다. 

검찰은 재심이 청구된 4.3 ‘희생자’ 4명을 문제 삼았다. 4.3폄훼 단체의 주장을 그대로 읊으면서 ‘이런 얘기도 있더라’는 의견을 내세웠다. 

정부가 발간한 4.3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제주4.3은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인 1947년 3월1일 기점으로 1954년 9월21일까지 이어진 사건이다. 

심지어 정부 수립 이전에 ‘남로당’에 가입한 전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 남로당은 좌파, 중도좌파, 중도우파, 우파 등 정치적 지향점이 다양한 정당 중 하나였다. 

제주4.3 당시 무장대를 주도한 남로당 당원은 30여명 정도로 추정된다. 이마저도 4.3 학자들마다 다소 견해가 다르다. 

사상검증 논란에 당시 검찰은 “보편적인 국민 모두가 공감할 만큼의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절차”라고 해명했다.

논란을 거쳐 결국 재심 청구인 전원의 명예회복이 이뤄졌고, 검찰은 일반재판 피해자까지 직권재심을 확대했다. 지난해 12월 처음으로 일반재판 직권재심(10명)을 청구해 4.3 명예회복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일반재판 직권재심은 제주지검이 직접 담당하고 있다. 

명예회복 작업이 탄력받고 있지만 여전히 도민사회가 염려하는 부분도 있다. 유족 청구재심은 차치하더라도 정상궤도에 올라 속도가 붙은 직권재심 절차가 마지막까지 순탄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최근 일반재판 4.3 희생자까지 직권재심을 확대한 검찰이 광주고검 산하 합동수행단을 제주지검 산하로 격하하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됐다. 

이원화된 재심 절차를 일원화해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에는 모두가 공감한다. 다만, “합동수행단이나 제주지검이 재심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을 귓등으로 듣고 넘길 일이 아니다. 

4.3 유족이나 단체 모두 직권재심 관련 인력 충원이 없이는 일반재판과 군사재판 직권재심 모두 속도를 더 내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차라리 군사재판 직권재심을 빠르게 마무리한 뒤 일반재판 직권재심에 속도를 내는 방안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는 합동수행단의 지위 격하 논란에 대한 4.3 유족, 단체의 비판과 궤를 같이한다. 소속 문제를 떠나 합동수행단이 제주지검 산하로 소속이 변경되면 합동수행단이 직권재심 업무에만 몰두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다. 

75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4.3 피해 당사자는 물론 유족들도 고령이라서 하루라도 빨리 명예를 회복시키는 일이 시급하다. 제주4.3 재심을 전담하는 ‘검사(檢事)’ 인력 충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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