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왓 칼럼] ‘학교폭력 원스트라이크 아웃’에 담긴 사법체계의 폭력성

정순신 변호사 아들의 학교폭력 문제로 온 사회가 시끌시끌하다. 여기에 기름을 붓는 대통령의 언급도 있었다. “학교폭력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해서라도 학교폭력 문제를 엄단하겠다는 말이다. 검찰 출신다운 대통령의 법치주의 중심의 사고이다. 여러 정치적 논쟁은 차치하고, 불거진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 없이 가해자는 처벌, 피해자는 보호라는 단순한 논리만 제시하는 대통령의 언급은 그래서 단선적이라고 비판받는다. 문제는 그러한 단선적인 이야기를 그대로 실행하려고 이 정부 관계자들이 노력한다는 것이다. 학교폭력에 대한 진지한 검토 자체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결국 단순한 학교폭력 문제의 해결방식으로 ‘원스트라이크 아웃제’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액면 그대로 해석한다면, 아무리 어린 사람이라 할지라도 한번 학교폭력에 연루되면, 그대로 아웃이다. 태어나서 사회에 관해 공부하고, 사회에 점점 익숙해지며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사람이라는 특성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즉 태어나서 학교라는 곳에 들어가는 순간 단 한번의 잘못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완벽하지 않으면 법적으로 제거 대상이 된다. 그리고 그 주홍글씨는 이후 그 어린 사람의 평생을 지배할지도 모른다. 생애 처음부터 완벽함을 요구받는 것이다. 정의의 여신 디케가 들고 있는 저울과 칼은 어린 사람에게 실질적이고 엄청난 공포로 다가오고 있다. 디케가 어린 사람이든 성인이든 가리지 않으려고 눈을 가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서운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왼쪽)과 검찰 출신 정순신 변호사
윤석열 대통령(왼쪽)과 검찰 출신 정순신 변호사

지금 야구계의 월드컵으로 불리는 세계야구대회가 벌어지고 있다. 한 유망한 프로야구선수의 학교폭력 문제가 불거지고, 그는 결국 국가대표로 선발되지 못했다. 몇 해 전 프로배구에선 자매선수의 학교폭력 문제가 불거졌다. 언론 보도를 통해서 접한 그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의 SNS를 살펴보면, 확실히 그들의 태도에 문제가 많을 수 있다고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한국 배구계에서 거의 영구 추방되다시피 되었다. 스포츠계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연예계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무수히 많다.

이제 그들에게 있어서 학교폭력 문제는 그들 인생에서 절대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가 되었다. 무수한 정보가 켜켜이 쌓여있는 인터넷이 존재하는 한 그들의 삶, 어느 한순간에 그들의 과거는 폭로되고, 사회적 분위기가 맞물리게 되면 그들을 향한 비난이 거세질 수밖에 없다. 이를 피할 수 있을까? 그들의 행동을 옹호하자는 것이 아니라. 가학생들에게도 자신들의 잘못된 행위를 수정할 기회를 제대로 부여했었나? 그런 교육적 책임을 회피했다는 비난에서 학교와 부모, 그리고 우리 사회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필자는 2021년 3월 제주의소리 인권왓 칼럼 ‘스포츠인권과 학교폭력, 그리고 학생들의 교육권’(http://www.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326785)에서 학교폭력의 구조를 살펴보지 않고, 가해 학생 당사자에게만 책임을 떠넘기며, 그 가해 학생의 일생을 망쳐놓을 수 있는 구조를 비판했다. 또한 “18세 이하 아동이 …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 자유사회에서 책임있는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 준비”가 “교육의 목적임으로 삼아야 한다”는 유엔아동권리협약 29조 1항을 근거로 그러한 행위가 학생들에 대한 교육권 침해임을 주장했다. 

대구지방법원의 류영재 판사는 한겨레신문에 “학교폭력 ‘원스트라이크 아웃’?…지금보다 더 격한 소송 부를 것”(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82220.html)이라는 기고문을 올렸다. 그는 “유엔아동권리협약 일반논평 13호를 근거로 피해자 학생에 대한 두터운 보호와 일상 회복조치가 세밀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가해 학생도 또다른 폭력과 학대의 피해자일 수 있다. 성인사회 폭력을 모방하거나 왜곡된 교육의 결과일 수 있으므로, 처벌과 배제, 무관용의 원칙으로 접근해서 안된다(위 논편 8호, 13호, 24호)”라고도 말한다. 

대통령의 학교폭력에 대한 언급에 있어서 피해 학생은 보호의 대상이다. 그런데 정작 언급은 가해학생에게 맞춰져 있다. 즉 가해학생을 엄벌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중심인 것이다. 그런데 검찰주의자인 대통령 자신도 재판 중인 가해학생을 처벌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대통령이라고 해도 법적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피해 학생에 대한 피해회복 절차를 진행할 수 없다. 피해학생에 대해 세밀하고 두터운 보호와 피해회복 절차를 국제인권규범이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의 언급은 가해학생을 엄벌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법적 체계의 근본적 한계로 인해 오히려 피해학생을 방치하게 되는 결과로 향하고 있다. 

국회에서 정순신 변호사 아들의 학교폭력 기록 삭제에 대해 국회의원들의 질의가 쏟아졌다. 이에 대해 ‘빨갱이’라는 말이 학생들의 일상적인 말투였다는 민족사관고등학교장의 발언도 놀라운 일이지만, 학교폭력 기록 삭제의 근거를 제시하지 않으면서 관련 정보를 모르쇠로 일관하면서도 기록 삭제가 정당했다고 우겨대는 반포고등학교 교장의 발언이 놀라웠다. 정권에 가깝지 않은 일반 국민 자녀의 문제라면 과연 그렇게 대응할까? 사회적 비난을 무릅쓰면서도 억지 법 논리를 대고 정권의 치부를 감추려는 그들의 자세가 참으로 애처롭게 보인다. 

문제는 국회에서의 이러한 상황은 사회적 권력, 또는 사회적 방어 능력을 갖춘 집의 자녀들에게는 법적 처벌이 사실상 거의 무력화될 수 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는 것이다. 결국 법적 방어 능력이 약한 사회적 약자들만 강하게 처벌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또다시 법적 체계의 한계성이 드러난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법체계는 사회적 약자에게 더욱 큰 폭력으로 다가올 수 있다. 사회적 약자에게는 완벽하지 못할 권리, 교육받을 권리란 없다. 완벽하지 않으면 안된다. 왜? 한 번의 잘못이면 인생 아웃이 될지도 모른다.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교육적 방식이 더 적극적으로 모색돼야 한다. 교육의 과정, 교육기관에 덧씌워진 사법체계와 절차를 걷어내야 한다. 사법적 절차는 최소화하고, 가장 최종적으로 쓰이는 방식이 돼야 한다. 학교폭력의 현장에서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을 가장 근거리에서 지도하고 있는 교사들의 교육적 판단이 더욱 중요하게 고려돼야 하며, 보호와 처벌의 문제도 교육적 체계 안에서 판단하며, 교육적인 처벌 방식이 가장 우선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학교 선생님들을 비롯한 학부모들의 인식 전환과 적극적 대응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이를 위해서 대통령으로부터 모든 사회구성원이 교육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잘 깨닫고, 단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오늘 더 마음속 깊이 와닿는다. / 신강협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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