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특집] (3) 윤석열 대통령 4.3복지 확충-하드웨어 구축 공약 이행 주목

서슬 퍼런 공권력에도 진실을 감출 수는 없었다. 제주4·3의 참상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수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2003년 故노무현 대통령이 국가 원수로는 처음으로 공권력에 의한 무력탄압에 공개 사과했다. 이후 4·3은 화해와 상생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 발걸음에 역사 왜곡과 노골적인 폄훼가 다시 등장했다. 공동체를 흔들려는 시도에도 4·3을 기억하고 아픔을 치유하려는 지역사회의 노력은 굳건하다. 제75주년 4·3추념식을 맞아 4·3에 대한 책무와 과제를 되짚어보는 시간을 갖는다. [편집자 주]  

 

"4.3의 아픔을 치유하고 상흔을 돌보는 것은 4.3을 기억하는 바로 우리의 책임이며, 화해와 상생, 그리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대한민국의 몫입니다. 4.3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의 온전한 명예 회복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생존 희생자들의 아픔과 힘든 시간을 이겨내 온 유가족들의 삶과 아픔도  국가가 책임 있게 어루만질 것입니다." -제74주년 4.3희생자추념식 추념사

"4.3문제는 대한민국이 인권을 중시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냐 아니냐를 결정 짓는 문제이기 때문에, 대한민국 국격과 헌법정신을 위해서도 과감하게 토하겠습니다. 우리 (4.3)유가족과 도민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아, 윤석열 정부는 정말 다르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2022년 3월 8일 대통령선거 직전 마지막 제주 총력 유세전

전 국민적인 바람으로 4.3의 봄을 앞당기면서 최근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과제는 정당과 정치적 이념을 가리지 않고 의미있는 진전을 보여왔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대선 후보 시절부터 4.3과 관련해서는 전향적인 입장을 누차 밝혀왔다. 대선 직후에 당선인 신분으로 제74주년 4.3추념식에 직접 참석한 것도 짙은 인상을 남겼다.

후보 시절 윤 대통령은 4.3해결을 위해 법률·제도·예산 등 다방면의 지원을 약속했다. 가족관계 특례조항 신설 등으로 합리적인 보상과 함께 내세웠던 공약은 △고령 유족 요양시설 △유족회 복지센터 △트라우마치유센터 등의 지원이었다.

제주사회 일각에선 너무 미시적인 접근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윤 대통령의 공약은 4.3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복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고령의 희생자·유족에 대한 복지는 더는 늦춰져서는 안될 시급한 과제다.

4.3희생자 및 유족들의 정신건강이 매우 심각한 상태라는 조사결과가 있다. 제주도 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의 4.3정신건강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4.3생존희생자의 경우 39.1%가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고위험군에 속했고, 41.8%가 전문의 상담이 필요한 우울증 증세를 보였다. 

높은 자살 경향성을 가진 이들도 5.5%에 달했고, 전체 72.7%는 고위험스트레스군으로 분류됐다. 1세대 유족으로 분류되는 1954년 이전 출생자는 이미 70세를 넘긴 초고령자들이다. 지난해 말 기준 1세대 4.3유족은 1만4900명대로 떨어졌다.

제주4.3트라우마센터는 여러모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4.3특별법)의 근거로 2020년 5월 개소해 운영중인 센터는 희생자와 유족들의 악화된 심리적 증상과 정신질환에 대한 치유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해 한 해에만 6400여회의 방문이 이뤄졌고, 전문의상담, 심리상담, 치유프로그램 등이 운영되며 정서적 지원에 힘을 썼다. 참여자들의 만족도 역시 높게 나타나며 성공적인 사례로 자리잡고 있다.

이전부터 4.3트라우마센터는 필요성은 숱하게 거론됐지만, 기구 독립과 상설화를 논하기까지는 매우 긴 시간이 필요했다.

제주4.3트라우마센터.
제주4.3트라우마센터.

센터 건립을 위한 4.3특별법 개정 작업은 정치권에 의해 번번히 막히다가 전임 문재인 정권이 '과거사 문제 해결'을 국정과제로 설정한 이후에야 속도가 붙었다.

다만 센터를 둘러싼 현실적인 과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현재 센터 운영은 엄연히 '시범 운영'에 그쳐있다. 제주사회는 트라우마센터의 국립센터 승격을 꾸준히 요구해 왔다.

윤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이 '트라우마치유센터 지원'이라고 뭉뚱그려 표현됐을 뿐 구체적이지 못했다는 점도 꾸준히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4.3트라우마센터는 접근도를 위한 고려라고는 해도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내 셋방살이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인건비도 넉넉치 못해 별도로 지방비를 지원받아 추가 인력을 운용하는 구조다.

현 시점에서 제주4.3트라우마센터는 광주국가트라우마센터의 분원 개념에 머물러 있다. 독립 기구로서 위상 강화 필요성은 없는지도 세세하게  검토돼야 한다.

윤 대통령의 공약 중 '고령 유족 요양시설'이나 '유족회 복지센터' 등에 있어서는 아직 실체가 없다. 4.3평화공원 조성사업의 완성이 연계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추측 정도만 남아있는 수준이다. 이미 4.3평화공원의 완성은 늦춰질대로 늦춰진 상태다.

특히 정권의 이념적 성향에 따라 사업도 멈췄다 나아가기를 반복한 것은 곱씹어봐야 할 아픈 역사다. 보수정권의 발목 잡기는 4.3홀대의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당초 4.3평화공원 조성사업은 2002년 국책사업으로 확정돼 2010년까지 3단계에 걸쳐 완성될 예정이었다. 2008년까지 592억원을 들여 1~2단계 사업을 진행하며 기념관, 위령탑, 위령재단, 추념광장, 사료관 등을 조성했다.

그러나, 2단계 사업이 끝나갈 무렵 이명박 정부가 사업계획 전면 수정을 요구하며 400억원 상당이었던 3단계 사업 예산을 120억원으로 줄었다.

최초 3단계 사업계획의 경우 4.3과 큰 관련이 없는 조형물들로 예산을 과다 책정했다는 도민사회 내부 판단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당해 예산을 반에 반토막 내고, 이마저도 집행하지 않는 등 정부의 행태는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연말 예산안 처리 때마다 끊임없는 전쟁을 치러야 했다. 예산안에 반영하지 않는 4.3사업 예산을 제주지역 국회의원들이 상임위나 예결위에서 되살리는 웃지 못할 촌극이 반복됐다.

그 결과 2014년 40억원, 2015년 35억원, 2016년 16억원이 예산이 반영되며 가까스로 사업비를 확보할 수 있었다.

제주4.3평화공원 활성화 사업 계획 조감도. 사진=제주특별자치도<br>
제주4.3평화공원 활성화 사업 계획 조감도. 사진=제주특별자치도

혹자는 지난 20년간 보수정당의 국회의원이 단 한명도 배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주의 정치적 편향성을 주장하지만, 이는 4.3에 대한 접근 방식과 태도의 차이 때문이라는 해석이 뒤따른다. 그만큼 보수정권에서 4.3은 엄혹한 시절을 보내야 했다.

현재 4.3평화공원은 사업비 258억원을 들여 하부대지에 4.3국제평화문화센터, 4.3트라우마치유센터, 빛의 통로 등을 조성하는 내용의 활성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새롭게 들어서는 시설은 앞서 조성된 4.3평화공원의 기존 방향성을 유지하면서 중복을 피하고 새로운 기능을 부여해 상호 보완기능을 유지하는데 목적을 뒀다.

4.3단체의 한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지만, 보수정권에서의 4.3홀대 이력과 최근 극우세력이 준동하는 흐름을 보면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국가트라우마센터와 관련해서 수상한 움직임이 있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있다"며 "어느 때보다 도민사회가 힘을 모아야 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끝>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