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인류 진보와 발 맞춘 인격체 범위...인간 생존 위해 생태법인 필요

“고래에게 수족관은 감옥입니다. 좁은 수조에 갇혀 냉동 생선만 먹으며 휴일도 없이 일 년 내내 쇼를 해야 하는 노예제도예요. 평균수명 40년 돌고래들이 수족관에서는 4년밖에 살지 못합니다.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에 가면 삼팔이, 춘삼이, 복순이가 아기돌고래들과 함께 헤엄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수족관에서 돌고래쇼를 하다가 대법원 판결에 의해 제주바다로 돌아간 남방큰돌고래들입니다. 언젠가는 꼭 보러 갈 겁니다.”

모 방송국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이 대사는 시청자에게 많은 울림을 주었고, 그 이후로 대중들도 남방큰돌고래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제주에서는 남방큰돌고래를 곰수웨기, 곰새기, 곰세기, 곰수기, 수웨기, 수애기 등으로 불러왔다. 어린 시절 잊히지 않는 한 장면이 있다. 아마도 열 살 되던 해 여름날이었을 것이다. 강정포구와 월평포구 사이에 있는 안강정에서 바다를 바라보는데 수없이 많은 곰수웨기들이 나란히 열 지어 이동하고 있었다. 수평선 오른쪽에서 왼쪽까지 곰수웨기가 뛰어오르며 헤엄치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할 만큼 기억되는 장관이었다.

생태법인 제도는 생소한 개념이지만 생태위기 시대에 인간 생존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우리가 동물복지를 논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인간복지를 보다 더 강화하기 위해서다. 사진은 남방큰돌고래.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생태법인 제도는 생소한 개념이지만 생태위기 시대에 인간 생존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우리가 동물복지를 논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인간복지를 보다 더 강화하기 위해서다. 사진은 남방큰돌고래.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남방큰돌고래의 정확한 개체 수는 아직 다 밝혀지지 않았지만, 오스트레일리아 해안에 1600~2000마리, 일본 남부 지역에 400마리, 탄자니아 잔지바르에 130~180마리, 우리나라 제주도 근해에 110마리 정도가 사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남방큰돌고래는 참돌고랫과에 속하는 종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 연안에만 서식하고 있어서 ‘제주남방큰돌고래’라고 부르고 있다.

대부분의 돌고래는 영특해서 70~90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학습과 기억능력이 뛰어나고 교감능력도 높다. 그들을 수족관에 가둬놓고 훈련시켜 돌고래쇼를 하는 것은 그만큼 지능이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제주바다를 자유롭게 맘껏 헤엄치던 그들이 붙잡혀 수족관에 갇혀 냉동 물고기를 받아먹으며 관광객을 위해 재주를 부리는 것은 노예 같은 삶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유를 갈구하는 무고한 존재를 구속하고, 고통을 예민하게 느끼는 무고한 존재에게 심한 고통을 가하며, 죽음을 두려워하는 무고한 존재를 죽이는 것은 악이다. 어른 돌고래는 인간의 신생아나 유아보다 훨씬 더 영민하다. 인간이 인간다운 것은 자의식, 자기통제, 시간개념, 타자와 관계 맺는 능력, 호기심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능력을 가진 존재를 ‘인격체(person)’라 한다. 우리는 그들을 단순한 도구나 자원이 아니라 그 자체로 존엄한 존재로 대우해야 한다.

과거 역사를 볼 때 인간이라 해서 다 인격체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인류 진보의 역사는 인격체의 범위를 확장해온 것과 함께 한다. 예전에 노예, 포로, 여성, 어린이, 흑인들은 인간(human)의 일원이면서도 인격체로 대우받지 못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수많은 투쟁을 거쳐 지금은 그들도 인격을 가진 존재로 인정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신생아와 식물인간 같은 인격체가 아닌 인간(impersonal human)들도 존엄한 존재로 대우한다.

제주남방큰돌고래는 인간은 아니지만 인격체의 기준에 거의 부합한다. 그들은 우리와 생김새가 다르고 말이 다를 뿐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고통과 스트레스에 예민하고, 자의식이 있으며, 부부애와 모성애를 느끼며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여러 사례들이 있다. 머지않아 인지과학이 더 발전한다면 그들의 언어도 해독될 날이 올 것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인간은 아니지만 인격체(nonhuman person)라 할 수 있다.

해양동물학계와 동물보호단체의 ‘불법포획 돌고래 방사운동’과 대법원의 판결로 좁은 수족관 갇혀 있던 제주남방큰돌고래들이 십 수 년 만에 다시 자신들의 고향인 제주바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제돌, 춘삼, 삼팔, 복순, 태산, 금등, 대포, 비봉이가 그들이다. 이들 가운데 몇몇은 소재파악이 안 되고 있지만, 나머지는 다른 무리들과 함께 제주연안을 헤엄치고 있고 암컷들은 번식에 성공하기도 하였다.

과거 제주연안에는 남방큰돌고래가 1천마리 이상 있었으나 현재 110마리로 감소했다고 한다. 세계자연보전연맹은 이들을 가까운 장래에 멸종 가능성이 높은 ‘준위협종’으로 분류했으며, 우리나라 해양수산부에서는 ‘해양보호생물’로 지정하였다. 그리고 문화재청에서는 제주남방큰돌고래가 ‘천연기념물’로서 지정될 만하다고 보고 있으나 행정상 문제로 해양수산부와 조율이 안 되어 지정이 미뤄지고 있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그들의 서식지 보호이다. 해양수산부의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0년까지 4년 동안 제주남방큰돌고래가 31마리 폐사되었다. 그리고 제주남방큰돌고래 보호단체인 핫핑크돌핀스에 따르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드라마 이후 관광선, 제트스키, 모터보트들이 돌고래들을 더 가까이서 보려고 쫓아다니는 바람에 그들의 사냥과 번식활동이 방해되고 등지느러미가 잘리는 부상을 입는 경우도 있다.

진희종 제주대 강사는 2020년 생태법인(eco legal person)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미래세대는 물론 인간 이외의 존재들 가운데 생태적 가치가 중요한 대상에 대하여 법적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제주남방큰돌고래에 이 제도를 먼저 적용할 것을 주장한다. 그리고 법조계에서는 이미 외국에서 자연의 권리가 인정된 여러 사례들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하다고 호응하고 있다. 

오영훈 제주지사는 지난해 10월 도민보고회에서 제주도의 최대 자산이자 경쟁력인 생태자연환경을 잘 지켜나가기 위해 ‘생태법인’의 제도화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제주특별자치제도추진단에서는 지난 3월말 생태법인 제도화 워킹그룹을 구성하였다. 동물행동학자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를 비롯한 학계, 법조계, 해양동물 연구자와 보호단체가 함께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생태법인 조례 제정안과 특별법 개정안을 마련하고 그에 대한 공론화를 추진한다고 한다. 

생태법인 제도는 생소한 개념이지만 생태위기 시대에 인간 생존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우리가 동물복지를 논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인간복지를 보다 더 강화하기 위해서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 자부하지만 생태적으로는 지구상에서 매우 취약한 생명체이다. 인간은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을 마시고 오염되지 않은 땅과 바다에서 생산된 식품을 먹어야 살 수 있다. 돌고래가 살 수 없는 생태환경에서는 인간도 생존할 수 없다.

제주남방큰돌고래 생태법인 제도화 논의를 계기로 도민의 생태복지가 더욱 튼실하게 다져지고, 생태적으로 중요한 제주의 여러 장소, 생명종, 개체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안도 점차적으로 마련해 나가야 할 것이다. / 윤용택 논설위원, 제주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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