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수, 제주와 자치 이야기] (16) 제2공항 주민투표, 결단의 문제

지난 글에서 제주 제2공항 관련 주민투표 실시 필요성에 대해 얘기한 바 있다. 제주의 문제는 소수 엘리트나 중앙정부 관료들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고, 지금처럼 갈등이 심해지는 상황에서는 주민들의 총의를 모으는 것이 문제를 푸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한국에서는 그런 사례들이 있다. 특히 2014년 강원도 삼척시의 사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4년 삼척시장의 결단

2010년 당시 삼척시장이 원전 유치 신청을 하면서, 강원도 삼척시에서는 원전을 둘러싼 갈등이 다시 불붙었다. 삼척의 경우에는 주민들이 원전에 반대해 왔는데, 당시의 삼척시장이 독단적으로 원전 유치신청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2012년에는 시장 주민소환까지 추진됐지만, 투표율이 3분의 1에 미달하는 바람에 무산되기도 했다. 

그러나 2014년 지방선거에서 ‘원전 백지화’를 내세운 김양호 후보가 원전 유치 신청한 전임시장을 누르고 당선됐다. 그리고 김양호 시장은 중앙정부가 삼척 원전 백지화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주민투표를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원전 확대를 추진하던 박근혜 정권은 주민투표 불가 입장이었다. 

2014년 9월 원전 유치 관련 삼척시에서 주민투표가 진행됐다. / 사진=오마이뉴스
2014년 9월 원전 유치 관련 삼척시에서 주민투표가 진행됐다. / 사진=오마이뉴스

박근혜 정권은 “원전은 국가사업이므로 중앙정부가 ‘주민투표 요구’를 해야 주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지방자치단체의 뜻만으로 주민투표법에 따른 주민투표를 실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삼척시는 주민투표법과 무관하게 자체 주민투표를 실시하기로 하고, ‘삼척원전 유치찬반 주민투표관리위원회’를 구성해서 주민투표를 실시했다. 2014년 10월 9일 실시된 주민투표에서는 67.9%의 투표율에 투표자의 84.9%가 반대표를 던졌다. 삼척시민의 뜻은 ‘원전 유치 반대’라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법원도 인정한 지방자치의 근본 취지 

이렇게 삼척시민들의 민심이 확인되었지만, 박근혜 정권은 뒤끝이 있었다. 

박근혜 정권의 검찰은 주민투표관리위원회가 주민투표 자금을 모금한 것을 두고 기부금품모집법 위반으로 기소했고, 삼척시장에 대해서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로 기소했다. 

삼척시장이 직권을 남용해서 공무원과 이장, 통장들에게 지시하여 주민투표 실무를 처리하도록 했다는 것이 기소의 요지였다. 그러나 1·2심 법원은 삼척시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고, 대법원에서도 무죄가 확정됐다.

당시 법원은 주민투표법과 무관하게 실시된 자체 주민투표가 ‘불법 주민투표’인지 여부에 대해 “투표는 주민들에 의한 일종의 직접적, 집합적, 자발적 의사표현이라고 볼 수 있는데, 법률상 명문의 규정 없이 이와 같은 방식의 의사표현을 금지할 만큼 뚜렷한 이유는 없다”고 밝혔다. 따라서 주민투표법에 따른 주민투표가 아니더라도 ‘투표’의 형식으로 주민들의 총의를 모으는 것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법원은 국가정책이라고 하더라도, 그에 대한 주민의 의견을 조사·수렴하는 행위는 지방자치단체의 사무에 속한다고 판단하고, “이 사건 투표를 통한 주민들의 의견수렴은 주민들의 의사를 가능한 전체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확인하기 위한 실효적인 수단이 될 수 있었던 점, 주민들의 의견이 전원개발사업 실시계획에 어떠한 법적인 효력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전원개발사업자와 중앙정부가 해당 지역주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지대한 전원개발사업을 실시함에 있어서 현실적으로 그들이 의견을 신중히 고려할 수밖에 없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삼척시장) 등이 이 사건 투표를 관리하고 실시한 행위에 직무행위의 필요성과 상당성이 없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서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던 것이다. 

이런 법원의 판단은 비록 국가사업이라고 할지라도, 지방자치단체장이 주민들의 의견을 ‘투표’ 형식으로 모으는 것은 적법하다고 본 것이다.

문제는 2014년 삼척시장이 했던 결단을 2023년 오영훈 도지사가 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문제는 2014년 삼척시장이 했던 결단을 2023년 오영훈 도지사가 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2023년 제주는?

2014년 삼척의 경험을 보면, 오영훈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주민투표법에 따르면, 국가사업에 대한 주민투표는 중앙정부가 요구해야 실시할 수 있으므로, 일단 오영훈 도지사는 국토교통부에 ‘주민투표 요구’를 할 것을 요청할 필요가 있다. 

이는 국토교통부에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러나 국토교통부가 끝내 ‘주민투표 요구’를 하지 않겠다면, 오영훈 도지사는 ‘제주특별자치도 숙의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주민참여 기본조례’에 따라 주민의견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주민의견조사는 주민투표에 준하는 방법으로 실시하면 된다. 

위에서 본 판례에 따르면, 이는 전적으로 적법한 것이다.  문제는 2014년 삼척시장이 했던 결단을 2023년 오영훈 도지사가 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 하승수

1992년 공인회계사 시험, 1995년 사법고시까지 합격한 엘리트지만,  정작 그는 편한 길을 택하지 않았다. 변호사 일을 하면서 참여연대 실행위원과 납세자운동본부 실행위원장,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등 시민운동가로서의 삶을 살았다.

2006년부터 약 4년간 국립 제주대학교 법학부와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로 강단에 서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 이후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과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을 맡으며 시민운동에 매진했다. 2012년 녹색당 창당에도 참여했다.

지금은 세금도둑 잡아라 공동대표와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에서 풀뿌리 지방자치를 향한 '하승수, 제주와 자치이야기'를 매월 한차례 만날 수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