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수, 제주와 자치 이야기] (15) 원희룡 정치적 책임 회피, 오영훈 주민투표 요청해야

2015년 5월 일본의 인기 정치인이던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이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본인이 추진하던 오사카 지방자치 체제 개편 방안(오사카시를 폐지하고 5개의 특별구로 분할하는 방안)이 주민투표에서 부결되었기 때문이다. 

표 차이는 크지 않았다. 66.83%의 투표율에 찬성이 49.6%, 반대가 50.45%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정치적 책임을 지고 정계 은퇴를 선언했던 것이다. 

갈등을 일으킨 정치인의 정치적 책임은?

이 사례는 두 가지를 보여준다. 

첫째, 지역 문제에 대한 최종적인 결정권은 주민에게 있다는 것이다. 엘리트가 마음대로 결정할 성질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회는 중요한 현안에 대해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그에 따라야 할 정치적 책무가 있다. 중앙정부도 마찬가지다. 일본에서는 국가사업인 원전유치 여부에 대해서도 주민투표가 이뤄지면 그 결과를 존중한 사례가 있다. 법적 구속력이 없는 ‘자문적’ 성격의 주민투표였지만, 중앙정부도 이를 존중한 것이다.

둘째, 지역정치인이 자신이 주장해왔던 핵심정책을 관철시키려고 노력할 수는 있지만, 민심이 그것을 거부하면 갈등을 일으킨 것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하시모토 도루 전 시장이 깔끔하게 사퇴한 것은 시사점이 크다. 

그렇다면 제주의 상황은 어떤가? 제주2공항을 둘러싼 갈등을 증폭시켜온 것은 원희룡 전 도지사와 국토교통부다. 게다가 원희룡 전 도지사는 이제 제주2공항 사업의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 장관을 맡고 있다. 그런데 원희룡 전 도지사는 도지사 시절이나, 장관이 된 지금이나 지역 내에서의 갈등만 부추길 뿐 정치적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제주의소리
민주주의를 하고 지방자치를 하는 국가에서 이런 상황까지 만든 일차적인 책임은 원희룡 전 도지사와 국토교통부에 있다. ⓒ제주의소리

정치적 합의에 의한 여론조사조차 무시

그동안 제주 제2공항을 둘러싸고 민심을 수렴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2021년 2월 제주도와 제주도의회가 합의하여 도민의견 수렴을 위한 여론조사를 진행했다. 단순한 여론조사가 아니라 제주특별자치도의 대의기구와 집행기구가 합의해서 한 여론조사였다. 

또한 제주 제2공항은 그 성격상 전체 제주도민의 의견에 따를 수밖에 없다. 제주 전체의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성산읍 주민들의 의견도 조사할 수 있지만, 최종적인 판단은 전체 도민의 의견에 따를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그리고 정치적 합의에 의해 이뤄진 여론조사에서 전체 제주도민은 반대의견이 우세한 것으로 드러났다. 두 여론조사 기관에서 조사했는데, 한국갤럽의 조사에서는 찬성 44.1%-반대 47.0%로, 엠브레인퍼블릭 조사에서는 찬성 43.8%-반대 51.1%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드러난 도민의견에 따라 제2공항 문제는 정리가 되었어야 한다. 그런데 원희룡 전 도지사는 정치적 합의에 의해 이뤄졌던 여론조사 결과를 무시하고, 제2공항을 강행하려 했다. 이제는 장관이 되어서 무리하게 사업을 밀어붙이고 있다. 그에 밀린 환경부는 지난 3월 6일 결국 ‘조건부 협의’를 해줬다.

전체 도민의 의견 물어야

이처럼 지금까지 진행된 과정은 제주도민의 의견을 수렴하여 갈등을 해결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원희룡 전 도지사나 국토교통부가 제주 내의 갈등을 부추기면서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해 온 과정이었다. 그 결과 제주 내에서의 갈등은 더 커지고 있다.

민주주의를 하고 지방자치를 하는 국가에서 이런 상황까지 만든 일차적인 책임은 원희룡 전 도지사와 국토교통부에 있다.

이런 상황을 풀려면, 결국 원칙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제2공항에 대한 제주도민의 총의를 모으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르는 수밖에 없다. 제주의 문제는 소수 엘리트나 중앙정부 관료들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주민투표법에 따르면, 국가사업에 대한 주민투표는 중앙정부가 요구해야 한다. 그렇다면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국토교통부에 ‘주민투표 요구’를 할 것을 요청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국토교통부가 끝내 ‘주민투표 요구’를 하지 않겠다면, 오영훈 도지사는 ‘제주특별자치도 숙의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주민참여 기본조례’에 따라 주민의견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주민의견조사는 주민투표에 준하는 방법으로 실시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주민의견조사를 하기 전에 제주도지사와 제주도의회는 도민의견에 따를 것을 정치적으로 약속하고, 그것을 철저하게 이행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제주2공항을 둘러싼 갈등을 풀어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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