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스승 최정숙을 떠올리다] 上
독립운동가이자 의료인, 헌신적인 교육자
평생 사랑 실천한 제주의 큰 바위 얼굴

제주 출신의 항일 여성독립운동가로서 민족교육과 인술을 펼쳤던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교육감을 지낸 최정숙 선생. 그의 선한 영향력이 국경을 초월해 아프리카에까지 미치고 있다. ‘최정숙을기리는모임’은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부룬디에 최정숙초등학교와 최정숙여자고등학교를 설립하며 새로운 희망을 전하고 있다. 가난을 벗어나 여성들이 홀로서기를 돕는 최정숙여성센터도 건립될 예정이다. [제주의소리]는 5월 15일 '스승의 날'을 맞아 최정숙 선생의 뜻과 최정숙을기리는모임의 선행적 행보 등에 대해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편집자주]

아프리카의 내륙국가 부룬디. 세계에서 1인당 총수입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 1993년부터 2006년까지 이어진 내전으로 30만명이 목숨을 잃은 곳. 이 부룬디의 수도 부줌부라에서 35km 떨어진 무진다 지역에는 최정숙여자고등학교와 최정숙초등학교가 있다. 

다음 달에는 빈곤여성들을 위한 훈련기관 최정숙여성센터 건립이 본격화된다. 궁핍한 경제적 상황과 조혼, 출산에 밀려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했던 부룬디 여성들에게는 놀라운 일이다.

이 변화를 이끈 것은 최정숙을 기리는 모임(회장 황옥선). 이들은 3.1운동에 참여했던 독립운동가이자, 제주 초대 교육감, 계몽 운동가, 지식인이었던 최정숙(1902~1977) 선생을 기리기 위해 모였다. 선생의 가르침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독립운동가이자 나눔의 의료인, 헌신적인 교육자였던 최정숙 선생.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독립운동가이자 나눔의 의료인, 헌신적인 교육자였던 최정숙 선생.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독립운동가에서 헌신적인 교육자로

최정숙 선생은 1902년 제주시 삼도리(현재의 삼도동)에서 태어났다. 제주 신성여학교와 경성사립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현 진명여고)를 거쳐 경성관립여자고등보통학교(현 경기여고) 사범과에 진학한 뒤 독립운동을 위한 ‘소녀결사대’에 참여했다.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에 동참했다가 붙잡혔고, 형무소에서 고문을 받으며 옥고를 치렀다. 죽음을 각오해 만세운동에 나가기 전 속옷에 이름, 학교, 고향, 부모 이름을 적어둔 것은 최정숙 선생의 결기를 보여준다.

가까스로 형무소를 나온 이후 제주에서 모교인 신성여학교가 폐교돼 배움의 기회를 잃은 여자아이들을 위해 야학을 열었고, 남녀공학인 명신학교도 세웠다. 고문 후유증을 치료하기 위해 잠시 제주를 떠나 목포 소화학원과 전주 해성학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 이 곳에서 민족혼을 심어주는 노래를 가르치고 예술제에 올렸다는 이유로 학교를 떠나는 일을 겪었다.

최정숙 선생의 사진.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최정숙 선생의 사진.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최정숙 선생은 1939년 30대 후반의 나이로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현 고려대 의대)에 진학했다. 경성 성모병원에서 근무하다 고향 제주로 돌아와 성당 건물을 빌려 정화의원을 열었다. 밤낮없이 도민들을 치료했는데, 가난한 환자들에게는 돈을 받지 않아 본인이 빚을 지며 병원을 운영했을 정도였다. 

일제강점기 폐교됐던 신성여학교를 1946년 재건해 신성여자중학원(신성여중의 전신)을 세웠고, 1953년에는 신성여자고등학교도 설립했다. 최정숙 선생은 12년간 교장을 맡으면서도 보수를 받지 않았다. 수업료를 내지 못할 정도로 가난한 제자들을 조용히 돕고, 여성문맹 퇴치와 여성교육 확대를 위해 뛰어다녔다. 최정숙 선생의 헌신적인 삶은 제주와 대한민국을 넘어 널리 알려졌고 1955년 교황 훈장을 받게 됐다.

1964년에는 제주도 초대 교육감에 선출되면서 전국 최초의 여성 교육감이 됐다. 교육감 재임 시기 여러 초·중·고등학교를 설립해 교육의 기회를 대폭 늘렸고, 공공도서관을 세웠다. 초등교사를 전문 양성하는 교육대학이 제주에 생긴 것도 이 시기다.

최정숙 선생은 1977년 눈을 감을 때까지 청빈한 삶을 살면서 사랑을 실천했다.

교육감 시절 최정숙 선생. 그는 제주 교육계의 등불 같은 존재로 여겨졌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교육감 시절 최정숙 선생. 그는 제주 교육계의 등불 같은 존재로 여겨졌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나눔과 사랑의 정신, 시대와 국경 초월하다

삼삼오오 뜻을 모은 제자들이 모이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최정숙 선생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뭉쳐 최정숙을 기리는 모임을 꾸렸고 선행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어려운 국가의 아이들을 위해서 학교를 만들어봤으면 좋겠다’는 소망으로 정성을 모았다. 최정숙 선생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합류하며 마음을 더했고, 어느새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2018년 부룬디 무진다 지역에 최정숙여자고등학교가 세워졌고, 2019년에는 초중등 통합과정인 최정숙초등학교가 설립됐다. 2024년에는 최정숙여성센터가 문을 열어 제빵기술부터 컴퓨터, 재봉기술, 한국어 교육 등을 제공하게 된다. 진학 대신 가사노동이나, 조혼, 임신으로 교육 기회가 단절된 처지에 놓였던 부룬디 여성들에게는 소중한 터전이다.

부룬디 무진다 지역에 세워진 최정숙여고. 학교 표지석 앞에서 최정숙을 기리는 모임 회원들과 주민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제공=최정숙을 기리는 모임 ⓒ제주의소리
부룬디 무진다 지역에 세워진 최정숙여고. 학교 표지석 앞에서 최정숙을 기리는 모임 회원들과 주민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제공=최정숙을 기리는 모임 ⓒ제주의소리

꾸준한 사회공헌으로 최정숙을 기리는 모임은 올해 3월 제22회 유관순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유관순상은 유관순 열사의 정신을 시대에 맞게 구현한 인물이나 단체에게 주는 상이다.

최정숙 선생의 제자였던 황옥선 최정숙을 기리는 모임 회장은 “최정숙 선생이 유관순 열사와 마찬가지로 독립운동을 하셨기에 이 상을 받은 것이 더욱 의미있다”며 “최정숙 선생님은 남과 더불어 다 같이 함께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꿈꾸셨다”고 말했다.

황 회장은 “교장 재직 당시 급여도 받지 않으셨고, 학교에 나오지 못하는 제자들을 독려하며 교육을 받게 해서 많은 사람이 도움을 받았다”며 “당시에는 그 분 밑에서 즐겁게 뛰어놀기만 했는데, 나이가 들어서야 우리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훌륭한 일을 하셨다는 점을 느끼고 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부룬디 무진다 지역에 세워진 최정숙초등학교의 모습. 내전으로 파괴된 학교를 재건했다. /사진 제공=최정숙을 기리는 모임. ⓒ제주의소리
부룬디 무진다 지역에 세워진 최정숙초등학교의 모습. 내전으로 파괴된 학교를 재건했다. /사진 제공=최정숙을 기리는 모임.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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