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스승 최정숙을 떠올리다] 下
제주에서 시작된 희망의 밀알, 지속가능한 기반 마련
최우수 졸업생 테디안-신씨아 제주에서 새로운 도전 중

제주 출신의 항일 여성독립운동가로서 민족교육과 인술을 펼쳤던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교육감을 지낸 최정숙 선생. 그의 선한 영향력이 국경을 초월해 아프리카에까지 미치고 있다. ‘최정숙을기리는모임’은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부룬디에 최정숙초등학교와 최정숙여자고등학교를 설립하며 새로운 희망을 전하고 있다. 가난을 벗어나 여성들이 홀로서기를 돕는 최정숙여성센터도 건립될 예정이다. [제주의소리]는 5월 15일 '스승의 날'을 맞아 최정숙 선생의 뜻과 최정숙을기리는모임의 선행적 행보 등에 대해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편집자주]

아프리카 부룬디 소녀들이 제주로 오게 된 이유는?

최정숙을 기리는 모임은 브룬디 무진다 지역에 지은 학교가 지속가능하길 원했다. 스쿨팜(학교농장)을 함께 조성한 이유다. 

부화장, 양계장과 함께 부룬디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팜유공장을 만들었는데 양질의 기름이 나오고 비누도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구축했다. 주민들이 수익도 올리며 학교 운영 비용을 얻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현재 부룬디에는 기술훈련 거점 역할을 할 최정숙여성센터가 지어지는 중이다. 미처 학교를 다니지 못한 여성들에게 직업훈련을 제공하게 된다. 제빵, 재봉틀, 컴퓨터, 교양 프로그램, 한국어 교육이 진행될 예정이다. 갈 곳이 없는 여성들이 편하게 쉬고, 배우고, 이야기를 나누며 꿈을 키울 수 있는 공간으로 꾸린다는 구상이다.

무진다 지역에는 학교와 함께 병아리 부화장과 양계장, 양계 사료공장, 팜유공장 등도 함께 지어졌다. 지속가능한 운영 비용을 마련하고 지역 주민들의 소득을 높이기 위한 결정이다. 최정숙을 기리는 모임의 황옥선 회장(전원유치원장)이 거액을 쾌척하면서 부화장과 사료공장이 현실화됐다. 건물 간판에는 '전원'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사진=한국희망재단
무진다 지역에는 학교와 함께 병아리 부화장과 양계장, 양계 사료공장, 팜유공장 등도 함께 지어졌다. 지속가능한 운영 비용을 마련하고 지역 주민들의 소득을 높이기 위한 결정이다. 최정숙을 기리는 모임의 황옥선 회장(전원유치원장)이 거액을 쾌척하면서 부화장과 사료공장이 현실화됐다. 건물 간판에는 '전원'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사진=한국희망재단

초등학교와 고등학교에 이어 여성센터를 짓는 것은 가난하고 소외된 여성을 위해서다. 고효숙 최정숙을 기리는 모임 운영위원장은 부룬디의 학교를 방문했을 때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나와서 반겨주는데, 어린 엄마들도 나온 거예요. 그들이 학교에 다니는 또래들을 보면서 부러워하는 모습을 봤는데 너무 안타까웠어요. 최정숙 선생님은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 여성들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결혼을 하고 제도적인 학교교육을 받을 수 없게 된 여성들도 같이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몇 명이 돈을 모으기 시작하면서 시작된 선행은 한 마을을 살리는 거대한 프로젝트로 발전했다. 한국희망재단, 제주도의 ODA(공적개발원조)사업과 연계되면서 힘을 얻었다.

제주도교육청은 책과 교육기자재를 지원했고, 올 여름 부룬디 현지 교사와 교육부 직원들이 제주에서 진행할 연수에도 협력 의사를 밝혔다. 한 대학의 학과에서는 ‘봉사활동으로 도움을 주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최정숙 선생이 30대 후반 나이에 진학했던 모교인 고려대 의대는 최정숙여고 최우수 졸업생의 항공편과 어학연수비를 지원하기도 했다. 

최정숙여고를 통해 부룬디 무진다 지역 여성들은 새로운 교육의 기회를 얻었다. /사진 제공=최정숙을 기리는 모임. ⓒ제주의소리
최정숙여고를 통해 부룬디 무진다 지역 여성들은 새로운 교육의 기회를 얻었다. /사진 제공=최정숙을 기리는 모임. ⓒ제주의소리

국가평생교육진흥원과 협력해 아프리카 최초의 여자과학기술원인 최정숙여자과학기술원을 설립하는 계획도 현실화되고 있다. 모임의 후원자 수는 730명을 넘어섰다.

“최정숙 선생님은 민족을 사랑했고 제주를 사랑한 사랑의 실천자셨습니다. 선생님이 하셨던 일들을 이어가는 것이 그분을 통해 교육의 혜택을 받은 제주 여성으로 해야 할 일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누구나 낙오되지 않고 다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셨어요. 최정숙 선생님이 베풀고자 했던 것을 저희 부룬디에서 실천하고 있는 셈이죠. 저희는 앞으로도 그 분의 순수한 마음을 따라가고 싶습니다”

제주에서 싹트는 또다른 희망

최정숙여고의 1회 졸업생인 시자 신씨아(22)와 다이사바 테디안(21)은 1년 8개월째 제주에 머물면서 제빵기술, 재봉기술, 한국어, 컴퓨터 등을 학습하고 있다. 제주관광대에서 수업을 들으며 베이커리에서 경험을 쌓고 있는데, 테디언은 제빵기능사를 단기간에 취득했고 씬시아는 제빵기능사와 제과기능사까지 합격했다.

이들이 여러 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우려고 하는 이유는 이들이 내년 부룬디로 돌아가서 맡을 임무가 막중하기 때문이다. 2024년 완공되는 최정숙여성센터 운영을 이들이 이끌게 된다.

지난 3월 최정숙을 기리는 모임이 유관순상을 수상했을 때, 시상식장에는 테디안과 신씨아도 동행했다. 최정숙여고 1회 졸업생인 이들은 제주에서 연수를 받고 있다. ⓒ제주의소리
지난 3월 최정숙을 기리는 모임이 유관순상을 수상했을 때, 시상식장에는 테디안과 신씨아도 동행했다. 최정숙여고 1회 졸업생인 이들은 제주에서 연수를 받고 있다. ⓒ제주의소리

테디안은 “부룬디에서는 일찍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생활이 힘든 여성들이 많이 있다”며 “한국에서 받은 경험들을 부룬디에서 나누고, 배운 것을 열심히 가르쳐줄 것”이라고 말했다.

신씨아는 “부룬디에 돌아가서 한국말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며 “여성센터가 생기는 것은 너무 좋은 일이다. 제과제빵 기술도 열심히 배워서 여성센터에서 여성들에게 기술을 가르쳐주면 그들도 발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씨아의 한국어 받아쓰기 연습지.  대한민국 제주도에서의 짧은 수학 기간이었지만 학업에 대한 그녀의 열정과 진심이 느껴지는 한글 받아쓰기다. ⓒ제주의소리
신씨아의 한국어 받아쓰기 연습지.  대한민국 제주도에서의 짧은 수학 기간이었지만 학업에 대한 그녀의 열정과 진심이 느껴지는 한글 받아쓰기다. ⓒ제주의소리

이미 한국말이 능숙해진 두 명의 최정숙여고 졸업생은 “좋은 기회를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거듭 고마움을 전했다.

수십년 전 제주와 대한민국 곳곳에 뿌린 최정숙 선생의 사랑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 2023년 아프리카 부룬디에서 새롭게 꽃피고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