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제주포럼] 4.3연구소 주관 제주4,3모델 세계화...진실-화해-연대 세션

31일 오후 3시20분 사단법인 제주4.3연구소 주관으로 열린 '제주4.3모델의 세계화-진실, 화해, 연대' 세션. ⓒ제주의소리
31일 오후 3시20분 사단법인 제주4.3연구소 주관으로 열린 '제주4.3모델의 세계화-진실, 화해, 연대' 세션. ⓒ제주의소리

'제주4.3의 정의로운 해결'의 길목에서 중대한 과제로 남아있는 책임 소재 규명. 4.3발발의 직간적접인 요인으로 지목되는 미군정에 책임을 묻는 운동이 진행중인 가운데, 제주를 찾은 미국의 학자들은 보다 강경하게 자국을 겨냥한 자성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31일 오후 3시20분 '제18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이 진행중인 제주국제컨벤션센터 한라홀에서는 제주특별자치도가 주최하고 사단법인 제주4.3연구소가 주관한 '제주4.3모델의 세계화-진실, 화해, 연대' 세션이 마련됐다.

이날 세션은 제주4.3의 정의로운 해결의 과정에서 4.3 발발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미군정의 책임을 묻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찾는데 목적을 뒀다.

세션의 좌장은 문정인 연세대학교 명예특임교수가 맡았고, 발표·토론자로는 알렉시스 더든(Alexis DUDDEN) 미국 코네티컷대학교 교수, 이성윤 미국 터프츠대학교 교수, 진 리(Jean LEE) 미국 우드로윌슨센터 공공정책연구원, 허호준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등이 참석했다.

올해로 7년째 제주포럼에서 4.3세션을 주관한 제주4.3연구소의 김영범 이사장은 개회사에서 "4.3의 완전한 해결은 아직 오지 않았다. 몇가지 과제가 남아있는데, 미군정의 직접 개입에 상응하는 조치가 그 과제중 하나"라며 "충족되기 어려운 요구일지 모르지만 통로가 아예 막혀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김 이사장은 "제주의 진정한 평화는 가해자에 대한 책임 추궁과 이에 따른 합당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4.3의 완전한 해결에 서광이 비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축사를 통해 "4.3특별법 개정으로 희생자 보상 조치가 이뤄졌고, 직권재심을 통한 무죄 판결이 내려지는 등 우리는 4.3의 정의로운 해결의 길목에 서있다"며 "4.3의 아픔을 잊지 말아야 하지만, 그 아픔을 극복하는 과정은 제주도민이 땀으로 일군 승리의 역사로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전했다.

오 지사는 "4.3이 미군정 시기에 진행됐기 때문에 추가적인 진상조사를 통해 명확하게 문제의 소재를 밝히는 일도 결코 넘어갈 수 없는 일"이라며 "각 주체가 어떻게 책임을 다할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 "미군의 4.3개입 기록 명백...인권유린 실상 기록돼야 재발 방지 가능"

지난 30여년간 4.3의 진상규명, 특히 미국의 개입을 밝히는데 천착해 온 허호준 기자는 4.3역사의 기록을 제시하며 미군정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역설했다.

허 기자는 1957년 유엔 한국통일부흥위원단으로 방문했던 호주 대표가 본국에 보고한 문서에 4.3과 관련된 내용이 있음을 소개했다. 해당 문서에는 '한라산을 중심으로 한 게릴라의 활동을 뿌리 뽑기 위해 한국 정부가 채택한 방법은 극단적으로 가혹했다. 수많은 섬 사람들은 이를 잊지 않고 있으며 결코 잊지 않을 것' 이라고 명시됐다.

또 1948년 4월 8일 무장봉기 이후 미군정의 잇따른 제주도 방문, 제주도 사태의 조기 진압을 위한 주한미군의 작전, 미 해군 구축함의 제주도 해안 파견 등에 대한 미군의 문서 등을 미국의 4.3에 대한 개입을 명백히 보여주는 증거로 제시했다.

허 기자는 " 4.3은 오랜 기간 권위주의적 체제 하에서 경계와 망각의 대상이었지만 제주인들은 4.3을 잊지 않았다"며 "당시 미 대사관의 보고서에는 '대량 학살, 슬로터(slaughter), 익스큐션(execution)'과 같은 표현이 쓰인 바와 같이 집단학살 사건만 최소 26건에 달하고, 100명 이상 주민이 희생된 마을은 당시 165개 마을 중 30%인 49개 마을에 해당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4.3 문제의 해결이라는 것은 왜곡된 4.3의 역사적 진실을 바로잡고, 그 희생자와 유족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피해를 구제하는 일"이라며 "4.3과 미국의 관계를 언급하고 진상규명과 명예 회복을 위한 노력이 과거사 해결에 함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허 기자는 "가해자들을 처벌할 수는 없더라도 그들의 인권유린의 실상을 밝히고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미래의 재발 방지를 위해 필수적이다. 이러한 과제들은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서 반드시 풀어야 한다"며 "4.3의 과거사 문제해결 사례는 한국전쟁 이후 민간인 학살 문제를 해결하는데 중요한 선례가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31일 오후 3시20분 사단법인 제주4.3연구소 주관으로 열린 '제주4.3모델의 세계화-진실, 화해, 연대' 세션. ⓒ제주의소리<br>
31일 오후 3시20분 사단법인 제주4.3연구소 주관으로 열린 '제주4.3모델의 세계화-진실, 화해, 연대' 세션. ⓒ제주의소리

◇ "4.3 미군 책임 부정 못해...한-미 국민들이 지도자들에 책임 물어야"

제2회 제주4.3평화상 수상자인 브루스 커밍스 교수의 제자이며 국제사회에서 한국 위안부 피해 문제에 앞장서 온 알렉시스 더든 교수는 민주주의 국가로써 한국과 미국의 국민들이 4.3의 책임에 대해 직시하고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더든 교수는 "당시 제주에서 발생했던 공포의 통치와 관련해서는 부정의 여지가 없다. 1948년부터 1954년까지 제주에 발생한 상처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며 "특히 미군 지휘관들이 제주에서 일어나는 폭력을 알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 관리들이 범죄에 동의하고 심지어 명령까지 내렸다는 점에서 미국의 책임은 부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더든 교수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미군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독도앞바다 폭격사건,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 평양 폭격사건 등을 언급하며 "미국이 전적으로 후원한 범죄임에도 그에 대한 속죄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제주에서 발생한 사건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봤다.

더든 교수는 "1945년 이후의 모든 전쟁은 히로시마-나가사키에 투하한 핵전쟁에 대한 속죄의 성격을 갖는다. 미국의 잔학 행위는 미국의 아킬레스건이 됐다"며 "당시 미군은 무고한 사람들에게 가하는 학살이 나쁘다는 판단보다는 어떻게 통제를 해서 미군의 지위를 유지하는데 더 많은 관심이 있었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그러면서 "여기서 중요한 접근은 '어떠한 종류의 속죄, 화해, 사과를 요구하는가'다"라며 "피해자 생존자를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을지, 이 부분에 대해 직접 사과로 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어떤 패턴을 찾아가야 하는 것인지 점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더든 교수는 "가장 이상적인 화해는 미국 의회에서 의결을 통해 미국 국민들이 역사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라며 "민주주의 국가 시민들로서 한국과 미국의 국민들은 이런 책임을 요구할 수 있다. 지도자들이 다음 전쟁으로 우리를 몰아넣지 말고 역사를 반성하도록 요구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31일 오후 3시20분 사단법인 제주4.3연구소 주관으로 열린 '제주4.3모델의 세계화-진실, 화해, 연대' 세션. ⓒ제주의소리<br>
31일 오후 3시20분 사단법인 제주4.3연구소 주관으로 열린 '제주4.3모델의 세계화-진실, 화해, 연대' 세션. ⓒ제주의소리

◇ "바이든 대통령 4.3평화공원 참배 시 한미 동맹 새국면 맞을 것"

이성윤 교수는 대표적인 보수논객으로 미국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로 알려졌지만 인권 문제, 특히 4.3의 책임 소재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 앞장서 '미군의 책임'을 강조해 왔다.

이 교수는 "한반도가 1945년에 분단될 때 미국이 공식적으로 개입하며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다. 미국은 한국에서 관할권을 주장했고, 한국 내에서 힘을 행사했다"며 "심지어 대한민국의 공식적인 정부가 수립됐음에도 미군이 한국의 정세에 영향을 미쳐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의 국방력은 물론 경찰, 법정, 해상 영역까지 미국의 통제 아래 있었다는 점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익히 알려진 사실"이라며 "미군정은 제주에서 광범위하게 가해진 학살에 있어서도 계속해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렇다면 미국은 반드시 도덕적·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오바마 전 대통령이 미국대통령 최초로 일본 히로시마 평화공원을 방문한 사례를 언급하며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본인의 감정을 표출하고 가족들을 위로했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었다"며 "당시에는 재향군인, 2차대전 참전자들로부터 상당히 논란이 됐지만, 역사는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이 도덕적이고 정의로웠다고 평가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앞선 사례에 빚대 조 바이든 대통령의 4.3평화공원 참배를 촉구했다. 이 교수는 "만약 바이든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과 4.3평화공원을 참배한다면 한국과 미국의 동맹이 훨씬 격상돼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 것으로 확신한다"고 역설했다.

또 이 교수는 "더 나아가 미국 의회가 역사에 대해 인정하고, 4.3희생자들을 위한 법안을 마련한다면 그 행위는 영원히 도덕적이고 정의로운 것으로 기록될 것"이라며 "진정한 평화와 화해는 진리가 규명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점을 되새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 "4.3의 실태, 국제사회 알리며 대중 지지 확보 선행돼야"

AP통신 기자를 지내며 외국인 기자로는 최초로 평양에 지국을 개설하고 인도적 지원을 벌여온 진 리 연구원은 4.3에 대한 미국 정부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먼저  4.3이 무엇인지를 미국사회에 알려나가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현실적인 제언을 건넸다.

리 연구원은 "4.3은 우리가 직면하기 힘든 과거지만, 직접 대중들에게 효과적으로 진리를 밝히고 역사를 직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어떻게 하면 제주4.3을 한국 현대사의 비극만이 아닌 글로벌 맥락에서 접근할 수 있을지, 나아가 진실, 화해, 연대로 나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한국을 넘어 미국, 전세계에도 알려야 한다"고 당부했다.

리 연구원은 "다른 지역에서의 인지도가 없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노력이 이뤄질 수 없다. 단순 한국의 사건으로 치부될 뿐"이라며 "4.3은 제주만의 역사가 아닌 냉전의 역사다. 한국전쟁과 관련된 제주학살은 역사적 사건이라는 점에서 대중들의 지지를 확보하고 전세계적인 관심을 더 이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를 위해 미국의 교과서에 4.3내용을 포함시키는 등 교육 매스미디어로 전파하는 방안, 4.3과 관련한 미국학생-한국학생-이주민 간 경험과 입장을 연결하고 이를 복원하는 방안, TV드라마·다큐멘터리 등 콘텐츠로 접근하는 방안 등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리 연구원은 "오랜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우리는 제주4.3사건에 대해 모든 사람이 진실을 파악하고 연대할 수 있도록 모두 역사를 기록하고 전달하는 과정을 보존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더 큰 행동을 취할 수 있도록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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