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훈 제주도지사가 제2공항 기본계획 고시를 앞두고 도민사회가 요구해 온 주민투표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반발을 사고 있다. 도민의견 제출 시기를 늦춰서라도 보다 충분한 숙의를 거쳐야 한다는 주장이다.

제주 제2공항 강행저지 비상도민회의는 28일 오전 11시 제주도청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도민 대표의 자격을 의심케 하는 오영훈 지사의 태도에 대해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밝혔다.

비상도민회의는 "오 지사는 개별 의견 없이 주민의견 수렴 결과 '이런 의견도 있고, 저런 의견도 있다'는 식으로 전달만 한다고 한다"며 "제주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업이고,  8년째 이어지고 있는 쟁정 현안에 대해 아무 의견도 없는 도지사가 왜 필요한가"라고 성토했다.

특히 전날(27일) 오 지사가 제주도청 출입기자단과 가진 간담회 과정에서 '국토부에 제2공항에 대한 주민투표를 요구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 "선거공약으로 제시했던 도민의 자기결정권을 포기하겠다는 얘기"라고 비판했다.

비상도민회의는 "주민투표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 국토부 장관이 안 한다고 해서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이유는 구차한 변명"이라며 "엄연히 주민투표법 제8조에 국가시설의 설치에 대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주민투표에 부칠 수 있게됐다. 제2공항 문제야말로 주주민투표를 해야 할 필요성이 어떤 경우보다 큰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대다수 도민이 찬반을 넘어 제2공항 추진 여부를 도민 스스로 결정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동안의 여론조사뿐 아니라 이번 주민의견 수렴에서도 주민투표 실시 요구가 가장 많았다는 것을 도지사도 인정하지 않았는가"라고 물었다.

실제 제주도는 지난 3월 9일부터 5월 31일까지 4회에 걸친 도민경청회와 온·오프라인 의견수렴을 통해 총 2만5746명이 의견을 받았고, 이중 '주민투표 실시' 의견은 1만3060명(50.7%) '건설 추진' 의견은 9334명(36.3%), '건설 반대' 의견은 3283명(12.8%) 기타 69명(0.3%)으로 집계됐다.

비상도민회의는 "법으로 할 수 있게 돼 있는 것을 하느냐, 못 하느냐는 정치에 달린 문제"라며 "갈등 해결의 절차로서 주민투표의 필요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다수 도민이 요구하고 있는 지금, 도지사가 할 일은 도민의 의지를 결집하고 대변해 국토부에 주민투표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관철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토부 장관이 반대하니 안 된다고 지레 포기하는 것은 무능의 고백이고 도민의 대표에게 거는 기대를 저버리는 처사"라며 "그동안 국토부도 제주도민의 뜻을 존중하고 일방적으로 강행하지 않겠다고 수차 약속했는데, 왜 그 약속을 지키라고 당당하게 요구하지 못하는가"라고 몰아세웠다.

비상도민회의는 "도지사가 서 있어야 할 자리는 찬성과 반대 사이가 아니라 국토부와 제주도민 사이다. 기계적인 중립이나 균형을 구실로 이쪽저쪽 눈치나 보면서 국토부의 결정에 맡겨버리고 그 꽁무니나 따라가는 들러리가 될 것인가"라고 힐난하며 "오 지사는 도민의 듯을 받들어 강단 있게 자기결정권을 관철해 제주의 자존을 지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강원보 신산리장은 "오 지사가 주민투표는 하지 않겠다면서 도민결정권을 운운하고 있는데, 과연 주민투표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도민결정권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이 무엇인가, 그에 대한 로드맵이라도 밝혀야 하는데 그런게 전혀 없지 않나"라고 비판했다.

강 이장은 "아직 늦지 않았다. 다음 주 국토부에 의견서를 제출한다고 하는데, 이를 늦추고, 본인이 약속한대로 도민의 결정권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을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우진 전국농민회총연맹 제주도연맹 사무처장은 "2015년부터 시작된 갈등을 야기한 것은 제주도지사였다. 이제 공항이 필요없다는 도민들의 의견조차 무시하고,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주민투표마저 거부하고 있다"며 "도지사의 책무를 저버리는 행태에 끝까지 투쟁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