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제2공항 도민의견, 찬반 명시 없이 국토부 넘겨...주민투표 요구도 묵살

제2공항 문제는 쉽지 않을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또 쉬울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법과 제도의 시스템에서 충분히 자기 결정권을 견지하면서 풀 수 있다고 봅니다. 매 단계마다 전환의 시기가 있을 텐데, 그런 과정에서 국토교통부와 제도가 해법을 새롭게 낼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 6.1지방선거 당선자 인터뷰 중

제2공항 사업이 환경부의 전략환경영향평가를 통과하게 되면 국토부가 제2공항 사업을 고시하기 전에 제주도가 의견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도지사로서 도민들의 이익을 최우선 가치로 한 의견을 마련해 국토부에 전달하겠습니다. 제2공항에 대해서는 ‘도민이익과 도민의 자기결정권’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밝혀왔고, 이에 변함이 없습니다. - 2022년 당선 100일 [제주의소리]와의 추석대담 중

공항 인프라 확충 문제에 있어서는 도민과 충분한 협의를 거친다는 원칙, 도민의 자기결정권을 통한 최종 결정 원칙을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제2공항 건설 등의 갈등 사안에 대해서는 대승적 차원에서 차근차근 풀어나가겠습니다. - 2023년 계묘년 신년사 중

민선 8기 오영훈 제주도지사가 제주 제2공항을 접근하는 시각은 '도민 자기 결정권'이라는 한 단어에 모든게 함축돼 있다. 오 지사는 제주의 미래상을 좌우할 제2공항 사업은 제주도민의 손으로 직접 결정돼야 한다는 입장을 누차 밝혀왔다.

이는 제2공항 기본계획 고시를 앞두고, 제주도의 주재로 진행된 도민의견 수렴 절차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국토부 장관은 기본계획 수립 시 관할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의견을 들은 후 관계중앙행정기관의 장과 협의하여야 한다'는 공항시설법 시행령 조항에 따라 제주도는 도민들의 의중을 알기 위한 의견 수렴 절차를 밟았다.

지난 3월 9일부터 5월 31일까지 근 석 달에 걸쳐 진행된 의견 수렴은 제주도청 홈페이지와 각 읍면동주민센터를 통한 온오프라인 접수는 물론, 제2공항 예정 부지인 성산읍을 비롯해 제주의 동서남북에서 네 차례에 걸쳐 진행된 도민경청회까지 창구를 넓혔다.

수렴된 의견은 총 2만5746건으로, '주민투표 촉구' 서명이 1만3060건(54.0%)으로 가장 많았고, '건설 추진' 8292건(34.3%), '건설 반대' 2822건(11.7%) 순으로 집계됐다. 제주도는 주민 의견에 대한 분석을 이유로 들며 발표 시기를 미뤘고, 두 달이 지난 오늘에 이르서야 국토부에 관련 의견을 제출했다.

문제는 오 지사가 줄곧 강조해 온 '도민의 자기 결정권'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제주도는 "2만5746명의 주민 의견을 가감없이 국토부에 제출한다"는 명목하에 제주도의 명확한 입장은 명시하지 않았다. 

주민의견을 유형화 해 첨부한 '제주도의 의견'에는 "제주권 공항 인프라 확충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전제하며 그간 시민사회에서 제기했던 전략환경영향평가 및 기본계획안에 대한 공동 검증의 필요성 정도의 내용만 담겼다. 기본계획과 관련한 주민들의 이주대책 문제, 공항 소음 문제, 도시화에 따른 기반시설 확충 등의 의견도 모두 제2공항 건설을 전제한 수준의 요구였다.

애초에 제주도가 도민의견을 수합함에 있어 '찬반 의견'을 명확하게 명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돼 왔다. 지역 내에서도 찬반이 팽팽하게 맞선 상황에서 자칫 제주도의 의견 표출이 더 큰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결국 표심으로 심판 받게되는 도지사로서 제주도민 절반의 기대를 저버리는 선택을 하기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풀이된다.

그럼에도 찬반 의견 없이 여론조사 결과만을 넘긴 것은 사업 결정 권한을 국토부에 다시 넘겨주는 결과를 낳게 됐다. 제2공항 추진에 있어 '도민의 시간'을 공언했던 오영훈 도정으로서는 이 또한 부담을 지게 됐다.

특히, 오영훈 도정이 제주도민의 여망이 담긴 '주민투표 요구'조차 묵살한 것은 논란을 키운다. 오 지사가 반복적으로 강조해 온 도민 결정권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임에도 너무나 쉽게 포기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다. 

실제 제주도가 주도한 의견 수렴 결과에서도 과반수 이상이 주민투표를 요구했음은 물론, [제주의소리]와 제주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7월31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도 제2공항 주민투표 실시 동의 여부를 묻는 질문에 동의한다는 응답이 전체 76.6%(매우 동의한다 49.4%, 어느정도 동의한다 27.2%)로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 20.7%(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12.0%,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8.7%)를 크게 앞질렀다.

오 지사는 지난 27일 제주도청 출입기자단과 가진 간담회에서 도민사회의 주민투표 요구에 대해 "제2공항 사업은 국책사업이기 때문에 주민투표 대상에 포함되지 않고, 국토교통부 장관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진행할 수 있지만, 이미 국토부는 공개적으로 거부 의사를 표한 바 있다"며 주민투표를 요구하지 않는 이유를 들었다. 

주민투표법 제8조에 따르면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국가시설의 설치에 대해 필요하다고 인정될 시 해당 지방자치단체 장에게 주민투표 실시를 요구할 수 있다. 즉, 국토부가 '주민투표 실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 분명하니 요구조차 않겠다는 것이 오 지사의 설명이다.

반면, [제주의소리] 여론조사에서는 국토부가 주민투표를 수용하지 않을 시 제주도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50.3%가 "자체 주민투표를 통해서라도 제주도 의견을 결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이 밖에도 '공론조사로 제주도 의견을 결정해야 한다'는 응답도 29.9%로 뒤를 이으며 도민의 자기결정권을 중시해야 한다는 답변이 주를 이뤘다. '제주도 의견 없이 국토교통부에 일임해야 한다'는 답변은 13.8% 수준에 그쳤다.

공교롭게도 오 지사는 31일 오전 열린 '제2공항 의견 국토부 제출' 브리핑 시기와 맞물려 일주일 간의 해외 출장을 떠났다. 이번 결정에 있어 제주도정의 책임있는 답변을 얻기까지는 일주일을 기다리게 됐다.

도지사를 대신해 브리핑에 참석한 제주도 관계자는 "자기 결정권이 법정권한은 아니지 않나. 추진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문제라고는 해석하지 않았다"며 "섣불리 주민투표나 공론조사를 하게 됐을 때 갈등이 더 심화될 것을 우려해 최종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고 있다"고 대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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