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단체 부활안 두고 이례적 대치, '미흡한 연구용역-의회 역학구조' 등 영향

더불어민주당 오영훈 제주도정의 핵심 공약 '제주형 행정체제 개편'에 민주당 다수당인 제주도의회의 수장이 노골적인 견제구를 날리는 이례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제주도 역시 즉각 반박에 나서는 등 흔치 않은 양상을 보이며 뒷말이 무성하다.

김경학 제주도의회 의장은 지난 22일 오후 제420회 임시회 폐회사를 통해 오영훈 도정의 행정체제 개편에 대한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행정체제 개편을 위한 의견수렴이 부실하게 진행됨은 물론, 관련 연구가 특정모형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의혹까지 거침없이 내비쳤다. 

김 의장은 "행개위와 도민참여단 내부에서는 용역진이 특정모형에 대한 당위성과 장점만 얘기하고, 기타 모형에 대해서는 부정적 이야기만 한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오 지사가 강조해 온 '기초자치단체 부활'을 위한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주장이다.

현 도정의 중추적인 정책이라 할 수 있는 행정체제 개편에 제동을 거는 모양새는 같은 정당에 소속된 의장 스스로에게도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제주도 역시 득달같이 해명자료를 내고 "용역진이 특정 모형에 대해서 당위성과 장점만 이야기하고 기타 모형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이야기만 한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맞섰다. 

제주도가 의장의 폐회사를 두고 '사실과 다르다'며 전면 반박한 것 역시 다소 이례적인 장면이다.

이와 관련 제주도 관계자는 [제주의소리]와의 통화에서 "의장의 입장에 반기를 든 것은 아니다"라며 "임시회 폐회식이 공적인 자리인만큼 잘못 알려질 수 있는 내용은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 미흡한 용역에 부정적 기류...지역구 개편 등 역학관계 우려도 상존

성공적인 행정체제 개편을 위해서는 민의를 대변하는 제주도의회의 적극적인 협조 역시 필수적이다. 오 지사와 같은 민주당 소속 의원이 과반을 훌쩍 넘어서는 구성 상 제주도의회는 행정체제 개편의 핵심적인 파트너가 될 것으로 예상됐다.

다만, 최근에 이르러서는 도의회 내부적으로도 행정체제 개편에 대한 편치 않은 흐름이 감지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 이유는 당초 기대와 달리 용역의 과정이 마뜩치 않다는데 있다.

한국지방자치학회 등 3개 기관에 의뢰한 행정체제 개편 용역에 투입된 예산은 15억원이다. 통상적인 연구용역 예산의 규모를 생각한다면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일례로 제주 최상위 법정계획인 '제3차 제주국제자유도시종합계획' 용역비도 12억원 수준이었다. 

이중 여론조사, 공론화위원회 등을 운영하는 비용이 약 9억여원으로, 전체 용역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하더라도 순수 연구용역비로만 들이는 예산도 5억여억원에 이른다.

행정체제 개편은 곧 생활권의 개편을 뜻한다. 행정체제 개편의 결과는 곧 현재 나뉘어져있는 제주도의원 지역구에도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각 의원들 역시 직접적인 이해당사자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용역진은 새로운 행정구역안을 압축하고 선호도 등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전체 도의원 45명 중 불과 16명의 의견만 수렴한 것으로 전해졌다. 면담을 진행한 의원들조차 가볍게 주고받은 사담이 마치 공론인 것처럼 포장된 것에 대해 당혹감을 표출했다는 후문이다.

결국 당초 이달 중 진행될 예정이었던 '행정구역 연구용역 중간보고회'는 행정체제개편위원회의 내부 지적에 부딪히며 관련 일정이 죄다 미뤄졌다.

이를 두고 제주도의회 A의원은 "용역진이 절반도 되지 않는 의원들과 이야기를 나눈 것을 두고 '의회의 의견을 반영했다'고 표현했더라. 얼마나 의회를 얕봤으면 이런 얄팍한 의견수렴 절차를 진행했는지 모르겠다"며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또 다른 행정자치위원회 소속 B의원은 "올해 초부터 꾸준히 용역진에 요구했던 내용도 중간보고서에 반영되지 않았다"며 "이대로라면 의회가 '도정의 거수기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위기의식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라고 우려를 표출했다.

기초단체 부활로 인해 광역의원 정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반대 기류가 형성됐다는 일각의 의견도 있다.

익명의 C의원은 "기초단체가 부활하면 광역 선거구가 통폐합되면서 의원 정수도 절반은 줄어들텐데, 기초의원으로 전향하는 것을 누가 굳이 원하겠나"라며 "이해관계에 걸친 도의원으로서 어느정도 입장을 초월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소신을 피력했다.

◇ 김경학 "아무도 견제하지 않는 행정체제 개편...신중하고 면밀히 검토해야"

결과적으로 앞선 김 의장의 직설적인 폐회사 역시 의회 내부 분위기가 반영됐다는 해석이 뒤따른다. 

김 의장은 [제주의소리]와의 통화에서 "기초자치단체 부활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 또한 기초단체 시절을 겪었던 사람"이라고 전제하면서도 "다만, 앞으로 생길 수 있는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해서도 소상하게 알리고, 도민이 판단할 수 있도록 열어둬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의장은 "지금의 흐름을 보면 기초단체가 도입만 되면 시민참여가 강화되고, 민주성과 책임성이 강화된다고 하지만, 기초단체 시절에도 '제왕적 시장, 제왕적 군수'에 대한 지적은 줄곧 제기돼 왔다"며 "기초단체 도입 시 선출직 공직자 자리야 늘어나겠지만 '시민의 삶이 나아진다'고 할 근거는 뚜렷하지 않다"고 신중론을 견지했다.

특히 기초단체 간 경쟁을 부추겨야 한다는 오영훈 지사의 지론에 대해서는 "과거 세입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군 단위에서 팔아먹은 부지가 지금의 대규모 골프장이 되고, 유원지가 됐다. 이걸 생산적인 경쟁이라 볼 수 있겠나"라며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문제들을 누구 하나 한 마디도 꺼내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지금의 문제는 아무도 견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과거 권위주의 시대와 다를 바 없어진다"며 "정치적 이해관계를 배제하고 무조건 2026년을 목표로 진행한다면 문제가 커질 것이다. 제주의 미래를 담보해야 할 계획이라면 더 신중하고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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