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데믹 이후 더 힘든 소상공인들]① 부푼 꿈 안고 창업, 코로나 직격탄에 ‘폐업’
정부·지자체 지원금 단절, 대출이자 상승…시름시름 제주 소상공인 폐업 속출 

유례없던 코로나19가 불러온 고물가-고환율-고금리 ‘3고’ 여파로 제주지역 소상공인들이 무너지고 있는 가운데 곳곳에서 들려오는 비명이 심상찮다.

제주 지역경제 뿌리인 소상공인들의 폐업 릴레이가 잇따르며 빨간불이 켜진 상황이다. 3년이 채 안 되는 코로나19로 촉발된 경제 위기는 힘없는 소상공인들에게 더 가혹했다.

수십 년을 이어오던 가게는 짧지만 굵은 3년간의 타격으로 문을 닫게 됐고, 부푼 꿈으로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으나 곧바로 맞닥뜨린 코로나 직격탄을 맞아 빚더미가 쌓인 일도 부지기수다.

코로나19가 한창일 때는 정부와 지자체 지원금으로 근근이 버텨왔다. 하지만 위기단계가 하향 조정되는 등 ‘엔데믹’이 찾아오며 지원금이 줄어들거나 중단되자 위기는 현실이 됐다. 

제주신용보증재단에 따르면 올해, 8월까지 신보재단 이용 업체 중 폐업한 곳만 1166곳에 이른다. 폐업 업체 수는 2020년 618곳, 2021년 723곳, 2022년 965곳으로 꾸준히 늘어 올해는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벌써 1100여 곳을 돌파한 상황이다. 

지역 소상공인들이 도미노처럼 연달아 무너지고 있는 가운데 다가온 추석 명절이 마냥 반갑지 않은 지금. [제주의소리]가 코로나가 한창인 시기, 운영 중인 태권도장을 폐업하게 된 박현수(가명, 40대)씨를 만나 사연을 들어봤다. 

추석을 앞둔 26일 오후 취재 기자와 만난 박현수 씨. 코로나19 여파로 시작된 어려움을 어떻게든 극복하려 노력했던 그는 결국 평생 꿈이었던 태권도장 문을 닫고 생계를 위해 투잡을 뛰고 있다. 힘들었던 당시 상황을 덤덤하게 말한 그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제주의소리
추석을 앞둔 26일 오후 취재 기자와 만난 박현수 씨. 코로나19 여파로 시작된 어려움을 어떻게든 극복하려 노력했던 그는 결국 평생 꿈이었던 태권도장 문을 닫고 생계를 위해 투잡을 뛰고 있다. 힘들었던 당시 상황을 덤덤하게 말한 그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제주의소리

“부모님은 아직도 코로나 때문에 대출을 받은 줄 모르고 계세요. 기사가 나간 뒤 제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시면 가슴 아파하시겠죠. 아이들은 점점 커가고 대출금은 갚아야 하니 결국 태권도장을 폐업하고 투잡을 뛸 수밖에 없었어요.”

태권도장을 차려 아이들에게 운동을 가르치는 일은 평생 꿈이었다. 낮에는 남의 도장에서 80만원 남짓한 생계를 잇기엔 턱 없는 월급을 받으며 사범 일을 하고, 저녁에는 다른 일을 하면서까지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그다. 

그런 박현수 씨는 2020년 코로나19 여파로 닥친 경제 위기를 온몸으로 막아서며 버텨왔지만, 끝끝내 꿈을 접어야만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역경의 파도가 물밀 듯 들이닥치면서다. 

누가 어디서 어떻게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게 됐는지 모두가 알만큼 공포감이 심했던 시기,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가나 태권도장은 그야말로 초토화됐다. 박씨의 도장도 코로나가 확산되던 해, 절반 가까운 아이들이 그만두게 됐다. 

임대료와 인건비, 물품 구입비 등 도장을 운영하기 위한 비용은 계속 투입되는데 코로나 여파로 관원들이 계속 줄자 박씨는 결국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도장을 이어가야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은행 빚을 졌다. 

대출과 함께 재난지원금을 비롯한 정부 지원을 받은 덕분에 겨우 도장을 계속 운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점차 지원은 중단됐고 어려움은 늘어갔다. 

도장 방역 사진을 찍어 부모님들에게 매일같이 보내고 오래된 시설도 손을 봤지만, 아이들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그 와중에 무릎을 다쳐 수술을 받게 돼 아이들을 가르치지 못하고, 함께 일하던 사범마저 일을 그만두게 됐다. 

태권도장을 운영할 사람이 없어져 몇 달간 도장을 비운 채로 임대료만 내게 된 상황에서 박씨는 어떻게든 해보고자 사범 채용을 시도했지만, 지원자는 없었다. 최저시급보다 한참 많은 월급을 제시해도 마찬가지였다.

부족한 운영비를 메우기 위해 오전에는 다른 곳에서 아르바이트도 했던 그다. 금방 지나갈 수도 있으니 계속해보자는 마음으로 2년을 더 버텼지만, 결국 지난해 봄 폐업을 택했다. 

제주신용보증재단을 이용 중인 업체 중 폐업 업체 수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순대위변제건수도 지난해 589건 대비 올해 1228건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제주의소리
제주신용보증재단을 이용 중인 업체 중 폐업 업체 수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순대위변제건수도 지난해 589건 대비 올해 1228건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제주의소리

개업을 위해 빌린 돈과 코로나 시기를 버티기 위한 대출금을 한 번에 갚아야만 했던 그는 폐업하고 신용보증재단의 브릿지보증을 통해 분할 상환 방식으로 빚을 갚아나가고 있다. 일시상환이라는 벼랑 끝에서 겨우 한숨 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살아남았다 해도 빚은 계속해서 갚아나가야 했기에 그는 투잡을 뛸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아이들을 키우려니 생활비도 더 필요했다. 

아직 초등학교에 진학하지 않은 두 자녀를 키우고 있는 박씨는 곤히 자는 아이들 모습을 두 눈에 담고 아침 일찍 나와 양어장에 사료를 납품하고, 오후에는 보험을 판매하며 상환비용과 생활비를 벌고 있다. 

무릎 수술로 연골이 없는 성치 않은 몸 상태로 20kg 사료 수십 포대를 1.25톤 트럭에 싣고 내리는 일이 고될 만 한데도 그는 긍정적이었다. 힘들다면 힘들 수 있지만, 생각하기 나름이라며 괜찮다고 말하는 그다. 

박씨는 “어릴 때부터 태권도장을 운영하고 싶어 사범 일을 하면서 안 해본 일이 없었다. 도장 출근 전 새벽 3시에 골프장 잔디를 깎기도 했고 편의점 알바도 했다”며 “그렇게 문을 연 도장을 폐업할 땐 씁쓸한 마음에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빚도 갚고 아이들도 먹여 살리려니 어쩔 수 없이 폐업하고 투잡을 뛰게 됐다”며 “무릎이 안 좋으니 의사가 앉아서 일할 수 있는 사무일을 하라는데 몸 쓰는 일이 익숙해 그쪽 일만 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모님은 코로나 때문에 대출을 받고 힘들었던 사실을 잘 모르신다. 몸이 안 좋으니 몸 쓰는 일을 하지 말라고만 하시는 상황”이라며 “퇴행성 관절염이 빨리 올 수 있다는데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지 않나. 나중에 좋은 약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애써 웃어 보였다.

코로나19가 많은 것을 무너뜨리고 바꿔놓았지만, 희망을 놓지 않은 이들이 많다. 우리 사회가 이들에게 희망의 다리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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