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 대표한 며느리 “아들 대신 제가 모십니다” 눈물로 감사 인사

고 김한홍의 며느리 백여옥씨가 봉안에 앞서 유해에 이름표를 붙이면서 “아들 대신 제가 대신 모십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고 김한홍의 며느리 백여옥씨가 봉안에 앞서 유해에 이름표를 붙이면서 “아들 대신 제가 대신 모십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제주4.3 광풍에 휘말려 행방불명된 고(故) 김한홍(金翰弘, 1923년생)이 74년만에 고향 제주 품으로 돌아왔다. 그의 유족들은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다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한국전쟁 발발 전 제주를 덮친 4.3으로 수천명의 도민들이 전국 각지 형무소에 끌려갔다. 서대문, 인천, 광주, 대구, 목포, 마산, 부산, 전주, 대전 등 지역으로 끌려간 도민들 중 극히 일부만이 극적으로 목숨을 건졌을 뿐 대부분 총살당했거나 행방불명됐다.

대전형무소에는 4.3에 휘말린 200여명의 제주도민들이 끌려갔으며, 각종 문헌에 따르면 대전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7월 사이 대전형무소 수감자들은 대전 골령골 등에서 집단 총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까지 대전 골령골에서 발굴된 유해만 1400구가 넘으며, 제주4.3평화재단과 제주도는 ‘도외지역 발굴유해 4.3희생자 유전자 감식 시범사업’을 통해 4.3 유족과 신원확인 작업을 벌이고 있다. 

2021년 대전 골령골 1학살지 A구역에서 발굴된 유해 70구 중 1구가 최근 고 김한홍으로 확인되면서 5일 제주4.3평화공원 평화교육센터에서 4.3희생자 신원확인 보고회가 열렸다. 

어제(4일) 세종에서 제례와 화장 등 절차가 이뤄졌고, 오늘(5일) 항공편을 통해 고 김항홍이 제주를 떠난지 74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 김한홍은 제주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발견된 첫 4.3 피해자 유해다. 

고 김한홍 유해 신원확인 보고회에서 눈물을 훔치는 유족들. ⓒ제주의소리
고 김한홍 유해 신원확인 보고회에서 눈물을 훔치는 유족들. ⓒ제주의소리

고 김한홍은 조천읍에서 농사와 목축을 병행한 선량한 주민이었다. 4.3때 단일 사건으로는 가장 많은 400여명이 목숨을 잃은 이른바 ‘북촌리 학살사건’이 발생하자, 젊은 남자는 무조건 군경에 죽는다는 말에 고 김한홍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숨어 지냈다. 

군경은 해안가로 내려오면 목숨을 살려주겠다는 회유책을 썼고, 군경은 철썩같이 믿은 고 김한홍을 제주 주정공장으로 끌고갔다. 주정공장에서 허위 자백을 강요하는 각종 가혹행위가 벌어졌고, 고문에 못이겨 목숨을 잃은 도민들도 상당했다는 역사는 이미 밝혀진 진실이다. 

1949년 당시 만 26세의 고 김한홍은 주정공장에서 어머니와 면회한 뒤 어린 아들을 남겨둔 채 행방불명됐다. 

수십년의 세월이 지난 1990년대 국가기록원에서 발견된 수형인명부에는 고 김한홍의 이름이 포함돼 있다. 

적법한 절차를 찾기 힘들 정도로 허무맹랑((虛無孟浪)한 2차 군법회의(군사재판)에 회부된 고 김한홍은 수형인명부에 국방경비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 7년을 받았으며, 복형장소는 대전형무소로 기재됐다. 

마을에서 농사를 짓던 선량한 주민이 4.3 광풍으로 1949년경 제주에서 남로당원을 돕거나 국방경비대의 정보를 남로당에 제공한 간첩 취급을 받았다. 

그의 유족들은 고 김한홍의 명예회복을 위해 직접 변호사를 선임해 재심을 청구했으며, 올해 8월29일 제주지방법원은 ‘고 김한홍은 무죄’라며 70여년에 걸친 고 김한홍의 억울한 옥살이에 종지부를 찍었다.  

고 김한홍 유족들이 헌화, 분향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고 김한홍 유족들이 헌화, 분향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고 김한홍의 아들이 3년전 병환으로 생사를 달리하면서 며느리와 손자 등이 유족으로 남아 있다. 

5일 신원확인 보고회에서 유족을 대표한 며느리 백여옥(82)씨는 유해에 ‘故 김한홍’ 이름표를 붙이면서 “아들 대신 제가 대신 모십니다”라고 말했다. 

인사말에 나선 백씨는 “감사하다는 말을 더 이상 할 수 없을 정도로 감사하다. 저와 남편은 모두 고아다. 시아버지(고 김한홍)처럼 저도 4.3으로 가족을 잃었다. 외가는 북촌에서 무려 11명이 죽었다. 4.3만 생각하면 피눈물이 난다. 남편이 살아있었다면 얼마나 기뻐했을지 생각하니 억울하다는 생각도 든다”며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한 마음을 눈물로 전했다. 

추도사에 나선 김창범 제주4.3희생자유족회 회장은 “영령 영전에 깊은 애도와 함께 명복을 빈다. 그 원통함을 거둬 영면하길 기원한다. 발굴된 고 김한홍님 유해에는 그 어떤 이념, 사상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고희범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은 “유해를 너무 늦게 찾아 죄송하다. 고 김한홍님 유해 발굴로 골령골에서 학살된 다른 4.3 희생자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대전 뿐만 아니라 대구, 전주 등 지역에서도 희생자들을 찾겠다”고 약속했다. 

왼쪽부터 고 김한홍 유해에 헌화 분향중인 고희범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김창범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 김성중 제주도 행정부지사, 김경학 제주도의장. ⓒ제주의소리
왼쪽부터 고 김한홍 유해에 헌화 분향중인 고희범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김창범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 김성중 제주도 행정부지사, 김경학 제주도의장. ⓒ제주의소리
5일 오전 제주국제공항으로 도착한 고 김한홍의 유해를 옮기는 유족들. / 제주도청 제공
5일 오전 제주국제공항으로 도착한 고 김한홍의 유해를 옮기는 유족들. / 제주도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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