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년 수학 교육 최수일, 예비 중학생 학부모 대상 강연
“수학은 기계 아닌 감정...과도한 선행학습 병으로 봐야”

 

 

98이라고 대답한 우리 아이, 상위 10%?

‘18×5=98?’

만약 어떤 초등학생이 18 곱하기 5의 답을 98로 답했다면 어떨까. 비록 학생이 틀린 답을 말했지만, 수학교육연구소 최수일 소장은 오답을 혼내기 보다는 오히려 칭찬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제주도교육청 민간위탁 사업으로 [제주의소리]가 주관한 ‘2023 학부모아카데미’가 18일 오전 10시 제주시학생문화원 소극장에서 열렸다. 이번 강연은 최수일 소장을 강사로 초청해 ‘예비 중학생, 수학 공부는 어떻게 해야하는가’를 주제로 진행됐다.

98이라고 대답한 우리 아이, 상위 10%?

최수일 소장은 서울대 수학교육과 학사, 연세대 교육대학원 석사, 서울대 대학원 수학교육과 박사 학위를 받은 수학 전문가다. 1984년부터 27년간 중·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쳤고, 퇴임과 함께 12년 동안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등 교육단체 활동에 매진해왔다.

이날 강연은 이른 시간에도 불구하고, 자녀의 중학교 진학을 앞둔 초등학교 5~6학년 학부모들이 자리를 상당수 채우면서 눈길을 끌었다.

최수일 소장은 초등학생들이 수학 능력을 키우기 위한 구체적인 노하우부터, 학생들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폭넓은 조언까지 전달했다. 그러면서 수학 능력의 핵심은 “절차만 알기 보다는 개념을 스스로 터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8일 ‘2023 학부모아카데미’는 최수일 소장을 초청해 ‘예비 중학생, 수학 공부는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해 진행했다. ⓒ제주의소리
18일 ‘2023 학부모아카데미’는 최수일 소장을 초청해 ‘예비 중학생, 수학 공부는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해 진행했다. ⓒ제주의소리

문제 풀이만 익숙해진 아이, 이유를 찾는 아이...관건은 학부모

최수일 소장은 학부모들에게 문제(18×5)를 제시하면서, 어떤 초등학생이 답을 98로 말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최수일 소장은 “이 학생은 18에서 2를 더한 20에 5를 곱해서 100을 만들고나서, 2에서 5를 곱한 10을 빼서 90으로 계산하려고 했다. 그런데 마무리에서 실수하면서 10이 아닌 2만 빼서 98로 답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비록 결과 값이 틀렸어도 스스로 생각하는 감, 짐작, 추리하는 과정이 가능하다면 그건 수학을 자기주도로 학습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18x5를 기존에 배우던 곱셈 방식대로 외워서 빨리 90이란 답을 도출하고 싶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전자는 개념적인 학습이라면 두 번째는 절차적인 학습이다. 이 두 가지 학습은 나중에 큰 차이를 보인다”고 강조했다. 

최수일 소장에 따르면, 절차적인 학습은 ‘왜’라는 이유를 찾는 과정은 크게 신경쓰지 않고 푸는 방법만 익히는 것이다. 개념적인 학습은 반대의 경우다. 비록 속도는 느릴 수 있으나 과정을 이해하는데 방점을 둔다. 절차적인 학습은 문제 풀이 노하우만 외우는데 급급하지만, 개념적인 학습은 그림 등을 적극 활용하면서 증명하는 단계까지 체득한다. 왜 곱셈에서 끝에 ‘0’을 더 붙여나가는지, 왜 사각의 합은 360도인지, 분수를 배울 때 왜 똑같이 나눠야 하는 답을 궁금해 하고 이해하는 것.  

최수일 소장은 “여러분의 자녀가 수학 문제를 빨리 풀길 원하느냐? 그러면 아이에게 반드시 악영향을 끼친다. 단순히 문제 푸는 자체에만 매달리면서 형식에만 익숙해지면 어느 단계에 가서는 점점 풀기가 어려워진다. 개념이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고 말했다.

특히 자녀 수학 공부에서 학부모가 말하면 안될 세 가지 단어가 있는데, 다름 아닌 ‘빨리, 많이, 점수’라고 꼽았다.

최수일 소장은 “이 세 가지가 엄마, 아빠 입에서 나오는 순간, 아이는 자연스레 절차적인 학습으로 가버린다. 생각하는 힘이 사라진다. 여러분의 말에 따라, 자녀의 자기주도 학습 여부가 결정된다. 수학 점수가 궁금해도 몇 개 틀렸냐, 왜 틀렸냐, 왜 실수했냐고 물어보지 마라. 한국 아이들이 수학을 싫어하는 원인의 대다수는 학부모에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학교에서 개념 정리에 도움이 되는 방식의 문제를 내고 싶어도, 결과에 대해 따지고 항의하는 일부 학부모들의 민원에 시달린다. 그렇기에 교사들도 그냥 오답만 따지는 문제만 낸다. 결국 아이들이 그런 교육이 익숙해지는 악순환”이라고 꼬집었다.

개념으로 학습하는 아이, 자기의 삶도 스스로 찾아간다

최수일 소장은 “절차적인 학습자는 공식을 외워서 문제는 풀 줄 안다. 그러나 왜 그런지는 설명할 수 없다”면서 보다 큰 틀에서 개념이 중요한 이유를 설명했다.

최수일 소장은 “초등학교 때 점수가 높아도 중학교 들어가면 낮아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보다 못해 학원을 보내면 대부분 점수는 오른다. 왜 그럴까? 학원은 오직 점수 향상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중1 때 점수를 회복하면 학부모 입장에서는 학원을 잠깐만 보내고 그만 보내고 싶어 한다. 그래서 중 2때부터 학원을 그만두려 하면, 이제는 자녀가 반대한다. 왜냐, 학원에 가서 시키는대로 문제 풀고 외우기만 하면 점수가 나오는데, 갑자기 혼자 하라고 하니 아이들은 어떻게 할 수 있겠냐. 부모가 생각하는 자기주도는 학원에 다녀와도 복습하는 모습인데, 자녀 입장에서는 학원은 선행학습이고 학교는 현행학습이다. 그러니 자녀는 ‘나 학원에서 공부했는데 집에서 또 해야 하냐’고 불만을 토로하기 마련이다. 결국 중학교 내내 학원을 보내면서 어찌어찌 상위권으로 졸업을 하고 고등학생이 되면 일단 표면상으로는 성공이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 운명이 갈리게 된다”고 풀어냈다.

최수일 소장은 “고등학교 성적 상위 10%는 중학교 때 상위 5% 아이들이 차지한다. 나머지 5%는 중위권이 차지한다. 그런데 5%를 차지하는 중위권 아이들 가운데서도 학원 학습에 익숙한 경우인지, 혹은 자기주도 학습이 가능한 경우인지로 나뉜다. 만약 학원의 큰 도움 없이 자기주도로 중학교 때 70~80점 정도를 유지했다면, 그 학생은 고등학교 때 반드시 상위 10%로 간다. 장담한다. 그것이 자기주도의 힘이다”면서 “그러니까 여러분이 자녀를 학원에 보내는 순간 자기주도는 포기해야 한다. 아이들은 학원을 너무 좋아한다. 왜냐? 학원 시스템이 너무 편하기 때문이다. 옆에서 선생님이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주며 문제를 풀기 때문이다. 그런데 편한 방법을 선호하는 건 잘못된 것이 아니다. 인간의 뇌는 고생하지 않고 편한 방법을 찾기 마련이다. 그러나 좋아하는 것을 하면 몸이 힘들어도 기꺼이 감수하기 마련이다. 게임은 밤새워 하면서 몸이 축나도 재미있으니까 계속한다. 자녀가 수학을 하지 않는다? 수학이 본인에게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수학을 좋아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수일 소장은 자신이 실제로 상담했던 서울 사교육 과열 지역의 어느 학부모 사례를 들었다. 그 지역은 빠르면 초등학교 6학년, 늦어도 중학교 초반에 고등학교 수학 과정을 모두 배울 만큼 선행학습의 열기가 높은 지역이다. 학부모의 사교육에 따르면서 아주 높은 성적을 유지해온 자녀가 어느 날 학부모에게 “엄마, 나 이거(수학 공부) 다 끝나면 뭐해”라고 물었다. 그 물음에 학부모는 “끝나면 스스로 공부해야지”라고 답했다. 하지만 자녀는 “수학 다 배웠으면 그만 배우고 싶다. 수학하기 싫다”고 자신의 힘듦을 토로했다. 

최수일 소장은 “만약 위 사례에서 등장하는 학생이 사춘기에 이런 반응을 보였다면 그 가정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과도한 선행학습은 병이라고 봐야 한다”고 돌직구를 던졌다.

학부모아카데미 현장 모습. ⓒ제주의소리
학부모아카데미 현장 모습. ⓒ제주의소리

조급한 선행 학습은 NO...차근차근 복습 통해 개념 다져야

최수일 소장은 “수능 수학 문제들은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수학 개념까지 혼합돼 있다”면서 초등학교 단계부터 수학 개념을 탄탄하게 쌓아가는 과정을 중요시했다.

특히 “적지 않은 학생과 학부모들은 공식을 많이 암기하면 수학문제를 잘 풀 수 있다고 믿는데 그건 잘못됐다”면서 문제 풀이보다 개념 이해를 통한 증명이 관건이라고 꼽았다.

최수일 소장은 “문제 정답을 맞췄다면 다음 문제로 넘어가지 말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녀가 제대로 알고 풀었는지를 정리하라”면서 본인이 제작한 ‘수학개념 문제풀이 노트’를 소개했다.

최수일 소장은 네이버 카페 ‘최수일 박사의 수학교육연구소’( https://cafe.naver.com/matheduri )를 운영하면서, 수학으로 고민하는 학부모들과 소통하고 있다. 카페에서는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수학 개념정리 노트를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최수일 소장이 제작해 배포하는 수학개념노트. / 사진=최수일의 수학교육연구소 카페
최수일 소장이 제작해 배포하는 수학개념노트. / 사진=최수일의 수학교육연구소 카페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모두 사용 가능하다. / 사진=최수일의 수학교육연구소 카페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모두 사용 가능하다. / 사진=최수일의 수학교육연구소 카페

최수일 소장은 “개념적인 학습이 자리매김하면 연결 능력, 응용 능력, 장기 기억화라는 장점을 얻을 수 있다”면서 “무엇보다 수학을 좋아하게 된다. 수학을 개념적으로 좋아하면 필연적으로 감정이 뒤따른다. 신기하고 기쁘고 보람찬 감정들이다. 이런 감정과 마주하면 수학을 좋아하기 마련이다. 수학은 기계처럼 푸는 게 아니라 감정으로 공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중학교 입학을 앞둔 초등학교 6학년이 겨울방학 동안 수학 공부를 어떻게 해야하는지 묻는 질문에는 “5~6학년 때 배운 수학 개념을 ‘개념노트’를 활용해 쭉 정리하길 추천한다. 최소한 6학년 2학기 것만이라도 정리하면 좋겠다. 그 과정이 끝나면 선행학습을 해도 된다. 그리고 자기주도 선행학습을 하려면 중학교 교과서를 사용하라. 학원에 선행학습을 맡기면 자기주도 학습이 깨진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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