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도민연대 동행 취재] 전주형무소 학살사건 희생지 순례

형무소를 둘러싼 야산에서는 귀를 찢을 듯한 총격 소리가 쉬지 않고 울려 퍼졌다.

군인은 수감자를 일렬로 세운 뒤 스스로 구덩이를 파게 하고 총구를 그들을 향해 겨눴다. 총소리는 허공을 맴돌다 픽픽 쓰러져 가는 사람들과 함께 사라졌다.

그 누구도 이곳에서 대학살이 자행되는지 알지 못했다. 군인들은 민가로부터 멀리 떨어진 야산에 올라 만행을 저질렀다. 주민들은 그저 발에 밟히는 유골들을 보며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고 짐작할 뿐이었다.

ⓒ제주의소리
4.3도민연대는 2일 전주형무소 학살사건 희생지로 추정되는 전주시 덕진구 인후동 일대를 찾았다. ⓒ제주의소리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이하 4.3도민연대)는 2일 전라북도 전주시 일대에서 한국전쟁 직후 전주형무소 수감자들의 희생지역을 순례했다. 4.3도민연대는 지난 1일부터 3일까지 2박3일간 4.3 희생자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순례를 진행하고 있다.

형무소 간수 증언에 의하면 1950년 7월4일부터 16일까지 형무소 인근 공동묘지에서 7사단 3연대와 5사단 15연대 헌병대에게 재소자 1500여명이 학살됐다. 당시 전주형무소 재소자는 1900여명으로 전해진다.

학살된 1500여 명 중에는 4.3 당시 영문도 모른 채 끌려온 수많은 제주사람이 포함됐다. 이들은 누구라할 거 없이 뒤엉켜 군인들에 의해 학살됐다.

70여 년이 흐른 현재 학살터는 황방산, 건지산, 전주농고 야산 기슭 등 당시 전주형무소를 둘러쌌던 야산들로 추정되고 있다. 애통하게도 현재는 도시개발로 인해 각종 건물과 관공서, 학교 등이 들어서 있어 유해 발굴에 어려움이 많다.

ⓒ제주의소리
4.3도민연대는 2일 전주형무소 학살사건 희생지로 추정되는 전주시 덕진구 인후동 일대를 찾았다. ⓒ제주의소리

이날 찾은 전주시 덕진구 인후동 일대. 평평하게 뻗은 대 도로변에 한국전력공사 전북본부와 고층 아파트가 우뚝 서 있었다. 이곳 역시 대학살이 자행된 곳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당시 전주형무소에서 전주농고를 거쳐 직선으로 약 2㎞ 남짓한 거리로, 본래 야산이 있었다. 참상의 흔적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이곳에서 4.3 유족들과 순례 참가자들은 야산 대신 빽빽이 들어선 고층 건물들을 올려다봤다.

약 10분을 달려 옛 전주농고 야산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현재 전주생명과학고등학교와 전주동북초등학교 사이에 있는 곳으로, 당시 전주형무소와 직선거리로 약 1㎞ 떨어져 있다. 4.3도민연대에 따르면 이곳에서는 1950년 7월4일부터 14일까지 수시로 학살이 자행됐다고 한다.

전주동북초등학교에서 바라본 전주생명과학고(옛 전주농고) 서쪽 산기슭. 한국전쟁 이후 주민들은 이곳에 유골들이 발에 차일 정도로 많았다고 증언했다. ⓒ제주의소리
전주동북초등학교에서 바라본 전주생명과학고(옛 전주농고) 서쪽 산기슭. 한국전쟁 이후 주민들은 이곳에 유골들이 발에 차일 정도로 많았다고 증언했다. ⓒ제주의소리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학살터는 전주농고 동쪽 산기슭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전주시가 2019년 진행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사건 조사에서 주민들이 현재 생명과학고(전주농고)에서 전주동북초로 가로질러 갈 때 유골들이 발에 차일 정도로 많았다고 증언한 것으로 볼 때 전주농고 서쪽 전주동북초 사이에서 학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서도 전주형무소 학살사건에 대한 어떠한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

다음으로 찾은 전주시 덕진구 산정동 소리개재. 유해발굴단은 증언자의 구술, 증언지역에 대한 고지형 분석을 통해 소리개재에서도 전주형무소 학살사건 희생자들의 유해가 매장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이에 2019년과 2020년 두 차례에 걸쳐 유해 발굴 작업이 이뤄졌으나 안타깝게도 유해와 유품은 발견되지 않았다. 

2일 찾은 전주시 덕진구 산정동 소리개재. 전주형무소 학살사건 안내표지판 뒤로 국도대체우회도로 공사가 한창이다. ⓒ제주의소리
2일 찾은 전주시 덕진구 산정동 소리개재. 전주형무소 학살사건 안내표지판 뒤로 국도대체우회도로 공사가 한창이다. ⓒ제주의소리

소리개재에는 이날 찾은 희생지 가운데 유일하게 전주형무소 학살사건 안내표지판이 설치돼 있었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4일부터 7월20일까지 전주형무소 재소자 중 여순사건 연루혐의자 및 좌익사상범 1500여명(당시 전주형무소 교도관 증언)이 인민군 남하 시 인민군에게 동조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이곳을 비롯해 완산구 효자동 공동묘지, 황방산, 건지산, 전주농고 동쪽문 야산기슭, (구) 완주군청 자리, 현 전주한전자리 등으로 끌려와 국군 제7사단 3연대 및 해병대에 의해 적법절차 없이 집단 학살돼 고귀한 생명들이 억울하게 희생됐습니다’-안내표지판 中

‘집단희생 유해매장 추정지이므로 함부로 훼손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는 문구가 무색하게도 이곳에서는 국도대체우회도로 건설공사가 한창이었다. 돌을 싣은 덤프트럭과 굴삭기가 수시로 도로를 오갔으며 공사 테이프가 둘러진 표지판 앞에도 쪼개진 돌들이 무더기로 쌓여있었다.

4.3도민연대는 2일 전주형무소 학살사건 학살터로 꼽히는 전주시 덕진구 산정동 소리개재를 찾았다.ⓒ제주의소리
4.3도민연대는 2일 전주형무소 학살사건 학살터로 꼽히는 전주시 덕진구 산정동 소리개재를 찾았다.ⓒ제주의소리

양동윤 4.3도민연대 대표는 “4.3유적지는 전국에 산재해 있지만, 도시개발로 인해 4.3유적지의 역사적인 사실마저도 잊혀지고 있다. 4.3특별법에 의해 희생자 신고가 진행되고 최근에는 보상 절차도 이뤄지고 있다. 누명을 썼던 이들도 재심을 통해 명예회복이 이뤄지고 있음에도 희생자들이 어떻게 희생됐는 지에 대한 것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점이 많아 아쉽다”고 쓴소리를 냈다.

이어 “전주형무소를 비롯한 학살지가 여러 곳에 있음에도 국민적 관심이 부족하다. 소리개재만하더라도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 수감자가 학살된 기록 자체는 존재하지만 유해 발굴이 미진한 상태다. 밝혀지지 않은 희생 사실에 대한 관심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