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현의 ‘다른 내일’] (6) 애착과 사회적 자본의 선순환 구조

변화와 혁신을 넘어 전환이 필요한 시대이다. 어제와 같은 방식으로는 더 나은 내일을 만들 수 없다. 다른 내일을 위해서는 다른 생각, 다른 전략, 다른 시스템, 다른 실행이 필요하다. 현장에서 혁신을 실천하고 있는 김종현 대표와 함께 제주의 ‘다른 내일’을 독자와 함께 모색해 보는 코너를 마련했다. 격주로 만나볼 수 있다. / 편집자 주

평생에 걸쳐 영향을 미치는 애착

지난 칼럼에서 ‘애착 유형’이란 부모와의 반복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된 자기와 타인에 대한 인식 태도라고 설명한 바 있다. 안전형 애착은 자기, 타인,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수용한다. 불안정한 애착은 자기 부정이나 타인 부정의 특징을 가진다. 사람은 부모와의 애착을 통해, 사회적 관계와 사회 활동의 기본 원리들을 습득하게 된다. 

유아기에 형성된 애착 유형은 평생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 루마니아 보육원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1965년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집권하였다. 그는 강력한 출산 장려 정책을 펼쳤다. 피임과 낙태를 금지시키고, 가임 여성은 무조건 4명 이상 아이를 낳도록 했다. 이를 어길 경우 벌금을 내야 했다.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서는 태어난 아이를 보육원에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보육원 교사 한 명이 수 십명의 아이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아이를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명분 아래 아이들을 안아주지 않는 정책들도 시행했다.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 루마니아 보육원 사진들을 참고해 bing image creator로 그린 그림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 루마니아 보육원 사진들을 참고해 bing image creator로 그린 그림

보육원 아이들은 나중에 다양한 국가, 다양한 가정 환경으로 입양을 가게 되었다. 입양 후 성장한 환경은 다양했지만, 대다수의 아이들은 낮은 지능, 사회적 역량 부족, 폭력적 성향 등 공통적 특징이 발견되었다. 특히 만 3세 이후에 입양을 간 아이들의 경우는 그 상황이 더욱 심각하였다. 심리학자들은 루마니아 보육원 아동들을 연구하였다. 어릴 적 애착 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으면 개인의 인생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애착 유형을 변화시키는 방법

그렇다면 3세 미만에 부모와의 관계에서 형성된 불안정한 애착 유형은 변화할 수 없는 것일까? 심리학자들은 자신의 애착 유형을 인지하고, 변화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불안정형 애착도 안정형 애착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을 ‘획득된 안정형 애착’이라 부른다. 

‘불안정 애착 유형’에서 ‘획득된 안정형 애착유형’이 되려면, 무엇보다 자신의 애착 유형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수용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애착은 오랜 시간 반복된 경험 속에서 만들어진 것인 만큼, 애착 유형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하와이 카우아이 섬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애착을 안정화시키는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1955년 하와이 카우아이 섬은 최악의 빈곤지역으로 주민 상당수가 알콜 중독자와 정신질환자였다. 주민 833명 가운데 가정환경이 열악한 201명을 출생 때부터 40년간 추적연구하였다. 201명 중 3분의 2는 부모와 비슷하게 부정적인 인생을 살아갔다. 반면 3분의 1은 좋은 성장과 성공을 이루었다.

하와이 카우아이섬. 출처 : flickr
하와이 카우아이섬. 출처 : flickr

이러한 차이가 발생한 원인은 아이를 신뢰하는 사람의 존재 여부이다. 친인척이든, 마을 사람이든, 선생님이든, 이웃이든, 아이들과 사랑과 신뢰로 이어진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아이들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성장해 나갔다. 신뢰를 주는 친밀한 사회적 관계가 획득된 안정형 애착을 만든다. 자신과 타인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경험들이 누적되면, 애착 유형은 안정화될 수 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의 속담을 주목해야 한다. 아이의 운명은 가정 환경과 주양육자의 태도에서 많은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모든 책임을 가정으로 전가해서는 안된다. 더 중요한 것은 신뢰를 주는 친밀한 지역공동체이다. 

심리적 안전성과 신뢰가 창조적 활동에 미치는 영향 

심리적 안전성과 타인에 대한 신뢰는 창조적인 활동을 촉진시킨다. 구글은 경쟁력 있는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 일명 ‘아리스토텔레스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창조적인 성과를 만들어 냈던 180여개 팀을 분석하고, 그 팀들이 가지는 특징을 5가지를 찾아냈다.

구글의 아리스토텔레스 프로젝트. 성과가 높은 팀의 5가지 특징
구글의 아리스토텔레스 프로젝트. 성과가 높은 팀의 5가지 특징

그 중 첫 번째는 심리적 안전성이다. 자산의 솔직한 의견을 말하더라도, 무시당하거나 불이익 당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다. 두 번째는 상호의존성이다. 협력이 최고의 성과를 만들어 내며, 팀원 모두가 각자의 역할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믿음이다. 심리적 안전성과 상호의존성은 자신과 타인에 대한 신뢰를 의미한다. 자기 긍정, 타인 긍정의 태도를 가진 안정형 애착과도 긴밀한 연관이 있다. (구글은 이외에도 일의 체계와 명확성, 일의 의미, 일의 영향력이 창조적인 성과를 내는 팀의 특징으로 보았다.)

주려는 사람과 빼앗으려는 사람 

안정형 애착의 사람들은 협력적인 사회적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이기적이고, 타인을 착취하려는 경향의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조직과 사회의 심리적 안전성과 상호의존성을 훼손한다. 창조적인 사회를 방해하는 장애물이다.

심리학자인 미국의 애덤 그랜트는 “Give and Take”라는 책을 통해 사람을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타인의 성장을 지원하고 도움을 주는 이타적인 ‘기버(Giver)’, 주고 받는 것의 균형을 추구하는 ‘매처(matcher)’, 주는 것보다 더 많이 받거나 남의 것을 빼앗으려는 이기적인 ‘테이커(Taker)’로 분류하였다.

애덤 그랜트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스쿨 교수, 사진 출저 : 위키백과)는 ‘Give and Take’를 통해, 기버(조건없이 주는 사람)가 성공하는 시대가 왔다고 역설하고 있다.
애덤 그랜트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스쿨 교수, 사진 출저 : 위키백과)는 ‘Give and Take’를 통해, 기버(조건없이 주는 사람)가 성공하는 시대가 왔다고 역설하고 있다.

애덤 그랜트가 이야기하는 ‘테이커’는 심리학적 용어로는 ‘자기애성 인격장애’, ‘나르시시스트(Narcissist)’라고 한다. 심리학자들은 자기애성 인격장애의 원인 중 하나를 불안정 애착 유형에서 찾는다. 성인애착 유형 중에 회피형과 혼란형 성향이 너무 강해지면 ‘자기애성 인격장애’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테이커는 벌거벗은 임금님이 될 수도 있어

그렇다면, 테이커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우선 추구하는 목표로 구분할 수 있다. 테이커는 부, 권력, 쾌락, 경쟁에서 승리를 추구한다. 반대로 기버들은 세상에 대한 기여, 책임감, 약자에 대한 보살핌, 타인에 대한 공감을 추구한다. 

테이커를 판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약자’에 대한 태도이다. 애덤 그랜트는 ‘윗사람에겐 아부하고 아랫사람은 짓밟는다’는 네델란드 속담으로 테이커의 태도를 설명한다. 테이커는 강한 사람에게는 과잉된 애정 공세나 아첨을 일삼지만, 약한 사람은 무시하거나 자기 마음대로 통제하고 지배하려 한다. 테이커는 역량 있는 동료나 후배들을 위협으로 생각한다. 이익에 따라 편을 가르고 카르텔을 형성한다. 기버는 강자나 약자에 대해 일관된 태도를 보인다. 분야별로 잘하는 사람들에게 권한을 부여하고 존중한다. 그리고 동료와 후배들의 공정한 성장을 지원한다.

테이커의 최대 관심은 자신의 이익이다. 테이커는 타인에게는 엄격하지만, 자기 잘못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자기 성찰 능력이 부족하여, ‘내로남불’의 특성을 지닌다. 이익을 위해서는 절차와 규범을 무시하거나 편법에도 능숙하다. 테이커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자신을 우러러보는 말들이다. 힘이 있는 경우, 아첨꾼에 둘러싸여 자기오만에 빠질 수도 있다. 동화에 나오는 벌거벗은 임금님 같은 상황이 되는 것이다.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은 임금님. 출처 : Grand Comics Database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은 임금님. 출처 : Grand Comics Database

기버는 공동체의 이익과 상생에 관심이 있다. 자신과 타인에 대해 동일한 기준을 가지고 객관적으로 인식하려고 노력한다. 자신과 타인의 장점뿐만 아니라 단점도 인식하고 수용한다. 그렇다고 기버가 항상 호의적인 것은 아니다. 공동체의 이익에 위반되는 경우에는 누구보다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한다.  

테이커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기버의 성공이 많아져야

애덤그랜트는 성공한 사람들을 분석했더니 기버가 많았다. 반대로 실패한 사람들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기버가 많았다. 이 둘의 차이는 어디에서 발생할까? 테이커와의 관계 때문이다. 테이커를 만난 기버는 호구가 되어 많은 것을 빼앗기게 된다. 테이커를 만나지 않은 기버는 다른 기버와 매처를 통해, 베푼 만큼 보상을 받게 돼 성공으로 이어진다.

테이커의 영향력이 강한 사회에서는 사람들은 자신을 보호하려고 자기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상대에 대한 경계심으로 인해, 상생을 위한 협력이 발생하기 어렵다. 그러면 공동체 전체의 생산성이 하락하게 된다. 협력을 촉진하는 사회적 자본이 취약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애착의 불안정성이 개인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불안정 애착 유형이 많은 사회는 높은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회적 자본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테이커의 탄생을 막고, 테이커의 영향력을 차단해야 한다. 그리고 기버의 성공이 많아질 수 있는 사회적 규범과 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안정형 애착과 사회적 자본의 선순환 구조

진화론을 창시한 찰스 다윈은 “언제든 서로 돕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개체가 많은 종이 거의 모든 종을 누르고 승리를 차지할 것이다. 그것이 자연선택이다.”라고 이야기했다. 기버가 많은 사회가 창조적이고 번영하는 사회이다. 기버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자본이 필요하다. 사회적 자본이란 사회적 협력을 촉진시키는 신뢰있고 친밀한 사회적 관계와 그 관계를 형성하는 규범과 참여를 의미한다. 

애착이 창조적인 인간과 혁신적인 사회의 뿌리라고 하면, 사회적 자본은 비옥한 토지라고 할 수 있다. 건강한 뿌리가 좋은 토지와 양분을 만나면 좋은 성장으로 이어진다. 안정적인 애착은 인간 관계의 신뢰를 만든다. 신뢰있고 친밀한 공동체는 사회적 자본을 증진시킨다. 반대로 사회적 자본은 친밀한 공동체를 통해, 불안정한 애착을 안정형 애착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안정적인 애착과 사회적 자본이 선순환 과정을 통해서 동반 성장하는 것이다. 

지역 사회의 다른 내일을 꿈꾼다면, 우선 현재의 사회적 자본 수준을 냉정하게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회적 자본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 글쓴이 김종현은?

김종현의 이력은 다채롭다. 다채롭지만 맥락이 있다. 제주의 미래가치에 기여하는 것이 소명이라는 그답게, 그의 행보에는 ‘제주의 더 나은 내일’이라는 일관성이 엿보인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 천주교 사제가 꿈이던 그는 서울대 종교학과를 졸업했다. 인터넷포털 ‘Daum’에 입사해 검색 비즈니스팀장을 지내다 2003년 Daum의 제주 이전 실무 책임자가 돼 고향으로 돌아왔고, 넥슨의 지주회사인 ‘NXC’로 이직, 넥슨 관계사들의 제주 이전과 사회공헌을 담당하였다.
사회적기업 섬이다(閃異多)를 창업, ‘닐모리동동’, ‘우유부단’, ‘제주관덕정분식’ 등 제주가치에 기반한 창의적인 로컬푸드 브랜드들을 만들었다. 이후 청년들의 혁신 역량을 강화하고 취업과 창업을 지원하는 ‘제주더큰내일센터’를 기획, 초대 센터장으로 근무하였다.
현재 그는 사회적기업 섬이다의 대표이사로, 도시재생 로컬크리에이터, 청년활동 등 다양한 혁신 산업생태계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종현의 '다른 내일']

1. 서론 : 복잡적응계에서 혁신을 만드는 과정

김종현의 '다른 내일' (1) 정답은 없다. 그러나 정답을 찾는 방법은 있다. 
김종현의 '다른 내일' (2) 영웅은 없다. 다양하고 똑똑한 우리가 있다.
김종현의 '다른 내일' (3) 무질서에서 떠오르는 새로운 질서

2. 창조적인 사람, 혁신적인 사회

김종현의 ‘다른 내일’ (4) 통합적인 돌봄은 혁신적인 사회의 출발점 
김종현의 ‘다른 내일’ (5) 자기와 타인에 대한 신뢰를 만드는 ‘애착’
김종현의 '다른 내일; (6) 애착과 사회적 자본의 선순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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