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아동들...그 후] ③ 위기임신보호출산법 7월 시행 앞둬

2021년, 출생신고 없이 성인 나이까지 자란 제주지역 세 자매 사연은 전국적으로 파장을 남겼다. 이후 정부와 지자체가 ‘출생 미신고 아동’ 문제를 들여다보고, 제주에서는 베이비박스 조례 논란까지 번지는 등 사안은 계속 진행 중이다. [제주의소리]는 출생 미신고 아동 조사 상황과 관련 조례, 현장으로부터 듣는 대책 등을 세 차례에 걸쳐 모아본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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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제주시 한경면 청수리에 있는 애서원에서 만난 임애덕 원장이 위기임신보호출산법에 대한 견해를 이야기하고 있다.ⓒ제주의소리

“‘터질 게 터졌구나’ 싶었죠. 데이터를 추적해 왔지만, 이렇게 많은 아이가 버려졌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 했어요.”

지난 8일 제주시 한경면 청수리에 있는 미혼모보호시설 애서원에서 만난 임애덕 원장은 지난해 7월 전국적으로 보도된 출생 미신고 아동 실태를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시설을 통해 다양한 임산부, 미혼모를 수도 없이 접하며 어느 정도 예견은 했으나, 사태가 이만큼 심각할 줄은 몰랐다.

그는 입양특례법이 이번 사태의 도화선이 됐다고 지목했다.

2012년 개정된 입양특례법은 ▲친생부모의 출생신고 의무화 ▲7일간 입양 숙려기간 ▲가정법원의 입양 허가 등을 골자로 한다.

개정 이후 임산부의 출생기록이 남으면서 ‘비밀 출산’이 어려워졌고, 반대로 ‘입양인의 알 권리’는 강화됐다.

남들에게 알리지 않고 출산해 하루빨리 아이를 입양 보내고 싶은 위기 임산부에게 이 법은 당장이라도 끊어내고 싶은 족쇄로 다가왔을 것이다. 법이 되레 유기를 부추겼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위기 임산부들은 법 테두리 밖인 베이비박스를 찾았다. 실제 개정안 시행 이후 베이비박스를 통해 보호된 아이는 크게 늘었다. 서울 A교회 베이비박스의 연도별 입소수는 2011년 35명에서 2012년 79명, 2013명 252명 등 큰 폭으로 증가했다.

임 원장은 “이미 우리나라는 복지국가로 성장해 영아원, 보육원, 위탁가정 등 다양한 보호 주체가 있을 뿐 아니라 위기 임산부를 보호, 지원하는 수많은 기관이 있다. 그런데도 왜 아이들이 베이비박스에 유기돼야 하나”라고 꼬집었다.

반대로 다양한 보호기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미혼모 시설은 양육과 입양 등 아기장래를 고민해야하는 힘든시기를 보내는 공간이라 심리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하지만 입양을 확정하고 입소한 미혼모도 막상 아이 울음소리를 듣고, 모성애를 느끼다 보면 흔들리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아이를 직접 키워야겠다고 용기를 갖는 미혼모도 적지 않다. 입양 결정이 확고한 이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위기 임산부에게 베이비박스는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아이와 친부모가 분리돼야만 하는 긴급한 상황일 경우에는 신속한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고 제언했다.

임 원장은 “입양 등 행정절차가 복잡해지다 보니 친부모가 아이를 유기하거나 해치는, 있어선 안 될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이런 드문 사례에서는 아이를 먼저 보호하기 위해 신속하게 영아원, 보육원으로 인계할 수 있어야 한다. 숙려기간 등 행정절차는 뒷순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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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제주시 한경면 청수리에 있는 애서원에서 만난 임애덕 원장이 위기임신보호출산법에 대한 견해를 이야기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그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발 빠르게 위기 임산부·영아를 위한 지원책이 마련된 점은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국회는 출생 미신고 아동 문제가 떠오른 지 3개월 만인 지난해 10월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 내용 등이 담긴 ‘위기 임신 및 보호출산 지원과 아동 보호에 관한 특별법(위기임신보호출산법)’을 통과시켰다.

출생통보제는 의료기관이 아동 출생 사실을 의무적으로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하도록 하는 제도, 보호출산제는 위기 임산부가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출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로 오는 7월19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법이 시행되면 위기 임산부를 위한 지역상담기관이 설치돼 경제적·사회적·심리적 어려움으로 출산과 양육에 관해 고민하는 임산부들이 다양한 상담과 서비스를 연계받을 수 있다.

이와 함께 특별법을 뒷받침할 조례안이 전국 최초로 제주에서 제정됐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제주도의회는 지난해 7월 제주도정의 위기 임산부·영아에 대한 책임을 강화한 ‘제주도 위기임산부 및 위기영아 보호·상담 지원 조례’를 가결·공포했다.

임 원장은 “이전부터 필요성이 제기돼 왔지만 마련되지 않았던 두 제도가 이번 사태를 겪으며 아주 빠르게 제정됐다. 물론 병원 밖 출산의 경우 여전히 출생신고 사각지대에 있다는 한계와 익명 출산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지만 시행령 등 하위 법령을 토대로 구멍을 메꿀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고 이야기했다.

마지막으로 임 원장은 “여성의 자기 결정권과 아이에 대한 생명권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갓 태어난 아이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수십년의 긴 시간이 필요하다보니 그동안 아이의 생명권, 알 권리가 중시돼온 부분이 있다. 사회와 국가가 아이들을 보호하고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누구에게서 태어났든지 간에 국가가 양육까지 모두 도맡을 수 있을 때 여성의 자기 결정권과 아이의 생명권이 조화롭게 보장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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