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학술대회 개최, 첫 날 양정심·김동현·허호준 등 발표
“제주4.3 연구거리 아직 많아...신진 연구자들 끈기 있게” 당부

“제주대 4.3융합전공 과정은 이대로 가면 망합니다.”

‘제주대학교 일반대학원 4.3융합전공 과정’(4.3융합전공 과정)이 지난해 시작된 가운데, 교육과정 개설 이후 처음으로 열린 학술대회에서 따끔한 충고가 나왔다. 각기 매진해온 4.3 연구 활동을 아우르지 않고, 국립대라는 완고하고 따뜻한 울타리 안에서 머무른다면 4.3융합전공 과정은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아직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역사적 과제들이 많이 남아있는 만큼, 후배 연구자들이 힘써줄 것을 당부했다.

‘4.3융합전공 과정 제1회 학술대회’가 19일부터 20일까지 열린다. ⓒ제주의소리
‘4.3융합전공 과정 제1회 학술대회’가 19일부터 20일까지 열린다. ⓒ제주의소리

제주대는 19~20일 제주상공회의소 5층 국제회의장에서 ‘4.3융합전공 과정 제1회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제주대 일반대학원은 2023학년도 2학기부터 4.3융합전공 과정을 신설·운영하고 있다. 4.3융합전공은 제주도, 제주도의회,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와 협약을 맺고 5년간 예산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석·박사 양성 과정이다.

첫 날은 ‘학제간 융합연구의 궤적과 미래’를 다루고, 둘째 날은 ‘대학원생, 신진연구자 세션’으로 진행한다.

19일 일정은 앞서 4.3 연구의 길을 걸어간 선배 연구자들 중심으로 진행했다. 발표자는 양정심 4.3평화재단 조사연구실장, 김동현 제주민예총 이사장, 허호준 제주4.3연구소 이사, 고성만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가 나섰다. 

다음 토론은 박찬식(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 관장), 김인석(제주도의회 전문위원), 허상수(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 강호진(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집행위원장), 김삼용(제주도 4.3지원과장), 홍일심(제주도교육청 민주시민교육과 장학관) 등이 참여했다.

양정심 실장의 발표. ⓒ제주의소리
양정심 실장의 발표. ⓒ제주의소리

양정심 “단 하나의 문제의식으로 긴 호흡으로”

‘제1호 4.3 박사학위’로 알려진 양정심 실장은 먼저 2005년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제주4.3항쟁 연구)을 간략히 소개했다. 그는 “당과 대중의 관계에 주목해 남로당 제주도당과 제주도민의 관계, 연대를 담은 항쟁의 성격을 고찰했다”면서 “항쟁 지도부의 낙관성과 이후의 항쟁 과정에서의 무책임성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항쟁 지도부와 5.10 단선저지 투쟁 속에서 보여줬던 하급당원들과 제주도민의 헌신성은 구별돼 평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정심 실장은 학계 안에서 4.3연구 흐름을 짚었다. 존 메릴(John Merril)에서 시작해 양한권·박명림의 4.3 석사논문, 그리고 양정심, 허호준, 권귀숙, 김동윤, 현혜경, 김동현, 고성만 등에 이르기까지 분야별 연구자들이 “연구사적 위치를 가진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최근 4.3연구는 논문의 양은 많아졌지만 눈에 띄는 연구는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면서 “후배 4.3 연구자들이 단 하나의 문제의식으로 10년 이상 파고들면 우뚝 설 것”이라고 격려했다.

김동현 “국립 제주대, 4.3 연구에 진심으로 대했나?”

김동현 이사장은 “4.3융합전공 과정은 이렇게 가면 망한다”고 돌직구를 던졌다. 지역 거점대학이자 각 분야 인재들을 양성해온 제주대가 과연 4.3에 대해 진심으로 대했는지 돌아보라는 의미다.

김동현 이사장은 “제주대는 그동안 대학 바깥에서 4.3을 연구해온 사람들의 목소리를 단 한 번이라도 귀 기울인 적이 있었나. 학위 과정에서, 수업 개설 과정에서, 그런 사람들을 참여시켜서 그들이 연구하고 경험한 노하우들을 교육과정에 어떻게 반영시킬지 대학에서 논의를 해본적이 있느냐. 노력은 했을 수 있지만 내부 구성원의 반발인지 몰라도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김동현 이사장. ⓒ제주의소리
김동현 이사장. ⓒ제주의소리

특히 제주도와 JDC가 4.3융합전공에 5년 간 재정을 지원하는 바탕을 두고 “만약 5년 뒤에 더 이상 지원하지 않으면 그 다음은 어떻게 할 것이냐. 계획이 있느냐”고 물으며 “역설적으로 지원이 이뤄지기 전까지 제주대는 무엇을 했느냐”고 일침을 가했다.

김동현 이사장은 “몇 해 전 4.3과 해방기 연구자를 양성했어야 할 사회적 책무를 제주대가 방기했다는 내용으로 칼럼을 썼는데, 모 학과가 ‘명예훼손’을 운운하며 법적조치를 취하겠다고 메일을 보냈다. 부끄럽고 창피하고 치졸한 일”이라고 일갈했다.

김동현 이사장은 “4.3 연구의 제도화가 4.3 연구의 또 다른 차별과 배제의 논리가 돼서는 안된다. 우리 같이 하자. 혼자 하지 말고 많은 분들의 연구 성과와 연구 노하우들을 공유하는 논의 기구, 자문 기구를 만들어서, 4.3학을 10년 이후에 어떻게 키울 것인지 함께 고민하자”며 “제주대 전임 교수들만의 논의 구조 속에서 자기들만의 생각과 방향성을 가지고 4.3융합전공 과정을 운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허호준 “제주인들은 4.3을 잊지 않고 있으며, 잊지 않을 것”

허호준 이사는 김동현 이사장 발표에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이라고 공감을 보내면서 “최근까지 제주4.3 연구는 정부의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발간을 넘는 실체 연구로 확대되지 않았다”고 한계를 지적했다. 그러면서 “연구의 다양성을 위해서도 실체 연구가 필요하다”면서 “지역사를 넘어 세계사 속으로 편입을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허호준 이사는 그리스내전, 대만2.28 사례가 제주4.3과 동시대에 벌어질 뿐만 아니라 상당부분 닮아있다고 설명했다.

그리스 근현대사에 대해서는 “오스만터키의 400여년에 걸친 통치, 1830년 독립 이후 강대국의 후견, 발칸전쟁과 제1·2차세계대전 등 끊임없는 전쟁과 독재정권의 통치, 나치독일의 1941년 4월 그리스 점령, 이에 맞선 가열찬 그리스인들의 민족해방투쟁 전개, 점령시기인 1943년부터 시작된 그리스의 좌·우파 간 무력충돌, 1946년 3월부터 1949년 10월까지 진행된 최종 내전과 빨치산의 패퇴”라고 설명했다. 

그리스와 제주 모두 ▲백색테러와 무장봉기 대의명분 축적 ▲정부군의 초기 군사적 동원 실패와 미국의 우려 ▲좌익의 초기 공세와 군·경 및 우익의 무차별 보복과 학살, 좌익의 테러 ▲미군의 표면적 불개입 지시 ▲미국 군사고문단의 자문과 개입이란 공통된 군사적 동원 과정이 나타난다고 꼽았다. 대만2.28 역시 마찬가지.

허호준 이사는 4.3 관련 미공개 최신 자료를 공개하면서 사료 발굴의 필요성, 구술 채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허호준 이사의 발표. ⓒ제주의소리
허호준 이사의 발표. ⓒ제주의소리

‘현재 남한의 최대 관심 지역은 제주’라고 언급한 1948년 4월 23일 미국 제24군단 참모회의 보고서, 소비에트 잠수함에 대해 보고했지만 결과적으로 잠수함은 허위임이 밝혀진 GHQ(연합군최고사령부) 1949년 1월 8일 정보 보고서, 미군이 파악한 일본 밀항 현황 자료, GHQ의 우편물 검열 내용 등이다. 

허호준 이사는 “아직 4.3연구 과제는 많이 남아있다. 저항의 전통,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의 유산, 당시 국내 정치지도자들의 반응, 4.3이 지역정치와 국내정치에 끼친 영향, 미군정·GHQ·워싱턴의 제주도와 4.3에 대한 인식과 대응, 미국의 대한정치와 4.3의 상관관계 등을 꼽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허호준 이사는 UN통일한국위원회 호주 대표가 1957년 7월 제주도를 시찰한 뒤 쓴 보고서의 일부분(제주인들은 4.3을 잊지 않고 있으며, 잊지 않을 것이다)으로 마무리했다.

고성만 “23년째 변화 없는 사건과 희생자 정의”

고성만 교수는 4.3특별법 개정, 보상, 재심, 가족관계 문제 해결 등 하나둘 성과가 보이는 상황에서 ‘4.3 해결 이후의 사회’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4.3 연구는 이러한 전환기를 어떻게 관찰하고 기록하며 질문을 가다듬어야 할지, 도래할 ‘해결’의 시대에 던져야 할 연구 질문을 고민하는 데 있다.”

고성만 교수는 “개정 4.3특별법에서 규정하는 ‘사건’과 ‘희생자’의 정의는 23년째 변화가 없으며, 보상금을 비롯한 앞으로의 해결 프로그램 역시 ‘소요사태’ 라는 인식적 토대 위에 법률의 적용 대상을 ‘희생자’로 협소화시키게 됐다”고 제도적 한계를 지적했다.

또한 “보상금부터 의료지원금, 생활지원금, 트라우마 치유사업, 기념사업 등의 적용 대상 역시 모두 ‘희생자’ 혹은 ‘유족’으로 국한된다. 희생자와 비희생자 간의 기울어진 운동장은 고착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고성만 교수는 “화해와 상생의 당사자와 애도의 공동체를 ‘희생자·유족’으로 제한해 버리는 현실을 4.3연구가 도외시하고 비판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면, 마을과 가정 깊숙이 침투하는 글로벌 이슈는 포착되지 못할 것이며 공포와 혐오, 배제의 감정 체계는 4.3의 상흔 위에서 재생산되어 버릴지 모른다”며 보다 넓은 범위에서 4.3 피해자를 다뤄야 하는 점을 지적했다.

고성만 교수의 발표. ⓒ제주의소리
고성만 교수의 발표. ⓒ제주의소리

2028년 4.3 80주년 이상 바라보며 ‘미래화’ 전략 필요

토론에서 박찬식 관장은 “4.3융합전공 과정은 국립기관(제주대)이 지방정부, 공기관의 지원을 받아 추진하는 의미 있는 사례다. 그렇기에 4.3융합전공 과정은 앞으로 지역사회를 위해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허상수 위원은 “4.3 피해 유족 가운데 보상금 수령 이후 그 일부를 모아 유족복지기금을 조성하자는 의견이 제시되는데, 보상금 출연으로 확보된 기금 가운데 일부는 ‘4월 3일 대사건’의 연구와 교육 활동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도록 논의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강호진 위원장은 “현재 4.3운동 단체들의 재정구조를 보면, 민주노총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를 제외한 4.3기념사업위원회를 포함해 ‘관치재정’ 구조에 대부분 머물러 있다”면서 “2028년 4.3 80주년을 예상해보면 4.3을 직접 체험한 세대의 존재가 귀해질 수 밖에 없는 조건에서 다음세대를 위한 전략 마련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홍일심 장학관은 “학교 급별로 4.3교육을 위한 시수를 일정하게 확보할 수 있도록 ‘4.3교육 교육과정 개발’을 ‘4.3평화·인권교육 활성화 조례’에 명시한다면 학교 현장에서 4.3교육은 지금보다 훨씬 많이 이뤄질 것”이라며 “초·중등용 제주도 지역사 교재가 개발돼 보급될 필요가 있다. 4.3평화·인권교육을 장학사 1명이 담당하기 보다 4.3평화인권교육 전담팀을 구성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특히 "현직에 있는 4.3지원단이나 전문가과정을 이수한 교사들 중 심도있는 4.3교육을 연구하고자 하는 분들이 있는데, 교원대학원이나 타 대학 대학원 역사전공을 하기가 학교 일정 때문에 어렵다. 4.3융합전공 분야가 좀 더 확대돼 일반대학원 만이 아니라 초-중등 교육대학원과도 연계돼 운영한다면 좀 더 많은 교사들이 대학원에 진학해 4.3을 연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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