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제주4.3희생자 신원확인 보고회 현장. ⓒ제주의소리
20일 제주4.3희생자 신원확인 보고회 현장. ⓒ제주의소리

70여년만에 신원이 확인된 제주4.3 유해 2구가 가족 품으로 돌아갔다. 

20일 오후 2시30분부터 제주4.3평화공원 평화교육센터에서 ‘4.3희생자 신원확인 보고회’가 진행됐다.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2위. 2007년과 2009년 각각 제주국제공항 남북활주로 서북쪽에서 발굴된 유해로, 직계를 포함해 방계까지 이어진 광범위한 채혈을 통해 신원이 확인됐다. 

1909년생 고(故) 강문후는 안덕면 동광리에 살다 1948년 소개령으로 해안가인 안덕면 화순리로 이주했다. 

1950년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제주에서는 대대적인 예비검속이 이뤄졌고, 강문후는 같은 해 7월쯤 이유도 모른 채 모슬포경찰서 안덕지서로 끌려간 뒤 행방불명됐다. 

4.3 때 강문후 당사자 뿐만 아니라 그의 모친과 형수도 희생됐고, 딸도 행방불명됐다. 

고 이한성(1923년생)은 제주읍 화북리에 살다 1949년 2차 군법회의에 회부돼 사형 선고를 받은 4.3 피해자다. 사형 집행 기록이 없어 최근까지도 이한성은 행방불명으로 정리돼 왔다. 

강기수씨가 아버지(강문후) 유해에 이름표를 붙이고 있다. ⓒ제주의소리
강기수씨가 아버지(강문후) 유해에 이름표를 붙이고 있다. ⓒ제주의소리

이한성은 1947년 관덕정에서 진행된 3.1절 기념행사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4.3피해자가 됐다. 이한성이 행방불명된 이후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 역시 4.3 광풍에 휘말려 희생됐고, 이한성의 형도 행방불명으로 남아있다. 

이한성의 경우 2023년 9월26일 제39차 군사재판 직권재심을 통해 억울한 누명을 풀었다. 

강문후와 이한성의 유해는 2007년과 2009년 각각 제주국제공항 남북활주로에서 발굴됐다. 

유전자 감식을 주도한 서울대학교 법의학연구소 이승덕 교수는 “새로운 유족들의 채혈 참여로 유해의 신원을 추가로 확인했다. 신원을 찾은 사람보다 찾지 못한 사람이 더 많다. 70여년된 유해에서 유전정보를 얻으려 노력중인데, 유전정보가 있음에도 신원을 확인 못하는 유해도 있다. 4.3 유가족들의 많은 채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원이 확인된 강문후의 아들 강기수씨는 아버지의 유해를 찾게 된 기쁨에 관련 기관 관계자들을 향해 큰 절을 올리기도 했다. 

김창범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은 “삼가 명복을 빈다. 부디 원통함을 거둬 해원하고, 영면하길 바란다. 75년 통곡의 세월을 지낸 유족들에게도 위로의 말을 전한다”고 말했다.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제주도정은 끝까지 유해발굴 사업에 최선을 다해 모두 가족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제주도의회 김경학 의장은 “아직도 270여구의 유해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다. 온전한 진실이 밝혀질 때 4.3의 완전한 해결도 가능하다. 늦기전에 많은 희생자들의 억울함이 해소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추도했다.  

김광수 제주도교육감은 “더 많은 이들이 하루 빨리 고향으로 돌아와 안식할 수 있길 바란다. 평화인권 교육을 강화해 화해와 상생의 정신으로 승화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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